낙서

번개와 폭탄

아하누가 2024. 6. 19. 00:22



“야~ 은태야~ 이걸 어떻게 하지?”

 

 

용모 녀석한테 전화가 왔어. 통신에서 알게 된 여자를 만나기로 했는데
이런 경험 처음이라 걱정이 된다나 어쩐다나.
꽤 걱정하길래 나도 습관적으로 같이 걱정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상에 별 걱정을 다하고 있더라고.
그런 것도 걱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걱정말고 무조건 나가보라 했지.
근데 이 녀석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생긴 거는 더럽게 못생긴 녀석이 폭탄이 나올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야. 점점 더 어이가 없어지더군.
이 녀석하고 이런 쓰잘 데 없는 얘기를 하느니

차라리 세번이나 본 만화책을 또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도 이 녀석은 평소답지 않게 자꾸만 대책을 말해 달라는 거야.

 

“이 자식아~ 뭐하러 그런 걱정을 하냐?”

 

 

나는 아주 가볍게 얘기 해줬어.

만나기로 한 곳에 가서 여자가 앉아 있으면 일단 확인을 하고,

그 순간에 폭탄이다 싶으면 나는 본인이 아니고
이곳으로 지나는 길에

본인이 늦어진다는 연락을 전해드리러 왔다고 하면 될 것 아니냐고.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고 나와서

죽어라고 아무데로나 뛰어가면 되잖냐고.
녀석은 곰곰히 신중하게 듣다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직접 그런 연기를 할 자신이 없다는 거야.
그리고 어떻게 여자 혼자 앉혀두고 도망을 가냐고 묻더군.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하는 수 없이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어.

나야 어차피 당사자도 아니니까
부담없으니 뭔 거짓말을 못하겠어?

그리고 먼저 도망간다고 해도 폭탄은
그런 고생 좀 해도 되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했지 뭐~

 

 

            *          *          *

 

 

약속 장소에 오니 녀석은 긴장하고 있더군.

마침 옆으로 어린 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길래

내가 폭주족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혼잣말처럼 말했더니
이 녀석은 폭주족의 ‘폭’자만 듣고도 ‘폭탄’을 연상하며 섬뜩 놀라는 거야.
거 참 대단하더라구~

지 생긴 건 생각도 안하고 폭탄 가리기는....

 

 

시간이 가까와 오자 녀석은 계속 긴장하고 있더라구.
하는 수 없이 약속 장소인 까페의 후문쪽에 가서 진정을 시키고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지.

녀석은 계속 담배를 물고 있었어. 그리고는 내가 얼른 올라갔지.
까페안에 들어서서 대충 둘러보니

꼭 그사람일 것 같은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더라구.
그래서 확인을 했지.

 

 

“저~ 아하너냐 (당시 24세, 가명)님이신가요?”
“예...제가.......”

 

 

근데 말이야~ 번개 사상 그 사례와 유래를 찾을 수가 없는 괜찮은 여자였어.
이게 사실인가 싶더라구.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게 제대로 된 현상 같아.
맞아, 번개엔 이런 여자들이 나와야 해.
그리고 이 기회에 폭탄들은

번개에 못나오게 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해야 한다구.
번개자격증을 만들어서 자격을 취득 못한 여자들은 번개에 나오면
징역 3년 이하의 형을 내리는 그런 법률말야.

 

 


그래서 어쨌냐구? 이런 또 바보같은 질문하고 있네.
항상 글을 요만큼 읽을 때쯤 되면 바보같은 질문을 하더라.
뻔하지 뭐~ ‘제가 김용모라고 합니다’ 라고 말하곤 얼른 앉았지.
그리고 잠시 인사를 나누는 척하면서 온갖 잔머리를 핑핑 돌리고 있었어.
한 5분쯤 지났을까?

급하게 오느라고 몇군데 전화좀 하고 오겠다며 바쁜척도 할겸
갖은 예의를 다갖추며 점잖게 얘기했지.
그리고는 용모가 기다리고 있는데로 뛰어 갔어.
그리고는 가뿐 숨을 몰아쉬는 척하며

급하고도 비장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어.

 

“용모야~ 폭탄이다”

 

 

녀석은 긴 한숨을 쉬었어.
그러더니 달리 어쩔 수가 없지 않겠냐며 까페로 들어가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말렸지.
내가 알아서 돌려 보내겠다고 말이야.
녀석은 어찌 그럴 수가 있냐며 한사코 들어가서 인사라도 하겠다는 거야.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지. 안그러던 놈이 갑자기 왜 마음이 변했는지 몰라.
그래서 계속 큰 소리 쳤어. 너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
한번 맘 먹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등등...
내가 이 한몸 바쳐서 너를 위해 마무리하겠다고 그랬지.

 


녀석은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힘 없는 어깨로 당구장에 가 있겠다고 했어.
녀석, 무척이나 고마워 하더군.

오! 예~ 너 아마 오늘 나 기다리려면 밤새 당구쳐야 할꺼다.
너 당구 잘 치니까 좀 오래쳐도 돼지? 흐흐흐~

그때였어.

 


녀석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당구장으로 떠밀어 보내려고

까페입구쪽으로 걸어오는데
까페에서 여자 두명이 미친듯이 뛰어 내려오고 있더라구.
가만히 보니 한명은 좀전에 나랑 인사나눈 바로 그 번개의 주인공이었어.
두 사람은 뭐에 신이 들렸는지 아니면 까페에 인질극이 벌어졌는지
주위에 내가 있는지도 모르고 둘러보지도 않고

급하게 뛰듯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어.
우리가 서 있는 근처를 지나갈 때
그 여자의 친구인 듯한 여자와 오가는 얘기가 귀에 선명하게 들렸왔어.

 

 

“정말 그렇게 폭탄이야?”
“그렇다니까, 빨리 뛰어!!!!!!”

 

 

 

            *          *          *

 

 

 

그리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

그 친구는 지금 30대 중반이 되었는데아직 장가 못갔어~
어쩌면 그때가 가장 좋은 기회였는지도 몰라.
그래도 그걸 내탓으로 알지 않고 지 팔자로 아는 걸 보니

싸가지는 있는 친구야.
오늘은 이만 할래.다음에 생각나면 또 얘기 해줄께~

 

 

 

 

 

 

아하누가

그 친구는 올해 50이 되었는데 아직도 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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