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라는 것은 주로 말이나 글을 통하여 남에게 웃음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익살스러운 표정 하나가 뛰어난 유머가 될 수 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 하나가 아주 멋진 유머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초.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유머리스트가 탄생을 알리는 보도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월드컵의 해 답게 세계 최고의 유머리스트가 탄생한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축구장.
2001년 9월 잉글랜드 에섹스 지역 아마추어팀인
윔폴 2000과 얼스 콜니간의 경기에
주심으로 나선 사람은 브라이언 새빌씨.
우편배달부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18년간 심판 경력을 가지고 있던 새빌씨는
무려 18:1이라는 큰 스코어 차이로 지고 있던 윔플 2000팀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경기중 자신이 직접 멋진 발리슛을 날려 윔플 2000팀의 추가골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경기를 공정하게 진행해야 할 심판이 공정한 경기 운영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직접 득점을 했다니 한마디로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또 다른 상식으로는
18대 1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지고 있는 경기였으니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웃음이라는 것은 똑같은 행동이라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런 상황이고 이런 사건이라면 누구나 다 웃어 넘어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간직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게 관대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축구심판 새빌씨는
지역 축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새빌씨는 ‘우발적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심판도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뿐’이라며 항변했다.
그리고 그는 축구는 히틀러식 제식훈련이 아니라는
자신의 축구관을 나타내고는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사표를 던지며 그가 한 말이 또한 걸작이다.
“협회가 도무지 유머 감각이라곤 없다!”
외신을 통해 한 단면만 알려졌지만
이 심판의 유머 감각은 보통 이상일 것이다.
아니, 아마도 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작 새빌씨가 하고 싶었던 말은
‘축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는 대명제였을 것이다.
규칙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누려야 할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가 유머 감각을 발휘해야 할 대상이
그의 유머 감각을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다.
아마 유머 감각이 뛰어난 협회였다면
새빌씨의 조치에 대해 이런 식의 발표를 했을 것이다.
“새빌 심판은 다음 경기에선 윔플 2000의 상대 팀에게 다이빙 헤딩슛을 시도하라!”
“새빌 심판은 향후 10년간 경기중에 득점하면 안된다.”
“새빌 심판은 스코어가 20골 이상 차이가 나기전에는 절대로 슈팅을 날려서는 안된다.
물론 어시시트도 안된다.”
* * *
유머라는 것은 자신의 뛰어난 감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머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앞서가는 유머 감각이 아니라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를 구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수준이 높고 뛰어난 유머라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유머란 사회의 척도요 사회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빌 심판은 이번 일로 세계의 화제가 되었으니
어쩌면 유머로 성공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수준 높은 유머를 구사하는 뛰어난 유머리스트였음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심판이 월드컵 결승전의 주심이 아니었던게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새빌 심판 또한 월드컵 결승전에서 심판을 보더라도
자신이 직접 골을 넣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남을 증명하니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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