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다 보면 아기가 사람으로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이는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또 하나의 축복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맑은 느낌을 전해 주기도 한다.
그러한 아기의 성장에 대한 많은 변화중에
말을 하기 시작하게 되는 과정 또한
중요한 일이어서 늘 그 모습을 관심있게 보는데.....
주로 처음에 하는 말이 ‘맘마’, ‘엄마’, ‘아빠’ 정도가 된다.
물론 그 말이라는 것도 아직은 육성과는 거리가 있는
괴성이라고 해야 하지만 비교적 분명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아기는
내가 하는 말을 대충 따라할 줄도 알게 될만큼 자랐고
따라서 나는 동물들이 잔뜩 나와있는 그림책을 펼쳐주면서
그 동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곤 했다.
그런데 아기는 이상하게도 ‘호랑이’ ‘갈매기’ 등 받침있는 단어는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으며 ‘꿩’은 그래도 재미있는지
부지런히 따라했으나 ‘꼰’ 정도의 발음 밖에는 하지 못했다.
가만있자.... 받침없는 말도 있남?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 이웃나라 일본의 말은 받침이 없다.
역시 무식하기 그지없는 쪽바리들이 아닐 수 없다.
백제의 방언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언어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한데도
그들은 언어의 발전을 꾀하기는커녕 아직도 그 발전되지 않은 고대 언어를
자기 말로 알고 쓰고 있으니 말이다.
* * *
그러다가 아기가 조금 더 자랐다.
이 놈은 이제 어른말을 따라하는 데 재미가 붙었는지
아무말이나 따라한다.
그러다가 아기 엄마가 두발을 방바닥에 길게 펼치고 않아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모~올라~’라고 애교 스럽게 하는 것을
따라한 적이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아기가 하는 행동은 귀여웠지만
마누라는 망측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하는 아기의 발음이 어째 명확치 않았다.
‘몰라’라는 발음을 ‘모야’라고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모이야’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콜라’는 ‘코야’로 발음했던 것 같다.
가만있자?
이런말이 어디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 아마 내 상식으로는 스페인어권 계통의 말이
영문의 ‘L’자를 “ㄹ”로 읽지 않고 이렇게 읽는 것 같다.
세빌리야도 세비야로 읽고 사람 이름도 ‘아스프릴라’를 ‘아스프리아’로
읽고 있지 않는가?
그렇고 보니 그 나라말도 2살 수준에서나 할 수 있는
덜 진화된 말임이 분명하다.
* * *
아기가 조금 더 자랐다. 이젠 말하는 실력도 조금 더 늘었다.
그러니 아침에 출근할 때면 아주 귀엽게 ‘안녕!’이라며 손마저 흔든다.
아주 귀엽기 그지없는 모습인데 최근에 한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아기 엄마가 ‘빠이빠이’를 가르쳐준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빠이빠이’를 ‘빠빠이’라고 발음한다.
아직 그말이 어렵나 보다....라고 생각하려는데
갑자기 무언가 뒤통수를 강타한다.
빠빠이....? 이게 어디서 들어본 말인가?
우리가 통신하면서, 채팅하면서 쪽지보내면서
아주 흔하고 흔하게 쓰이는 말 아닌가?
참으로 서러운 일이다.
빠이빠이가 굳이 우리말이 아니라고 해도
그밖의 다른 언어들을 통신에서 쓰는 것을 보니
우리가 자랑하는 뛰어난 우리말이
세살박이 어린이나 하는 하급언어로 변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어느 누가 읽어도 같은 발음으로 읽히는,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과학적 구조를 가졌다는 뛰어난 우리의 언어가
인터넷에 의해서 이렇게 단순화되고 또 발전되기는커녕
한걸음씩 이렇게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언어가 가지는 문화적이고 문명적인 발전은 차치하고
기본 기능인 의사소통만 겨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거야말로 세종대왕님이 지하에서 뛰어 나오셔서
일갈을 하실 일이 아닌가?
통신 문화, 그리고 통신 언어.....
이거 아무래도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아하누가
이게 10년전 글인데.... 지금은 더하게 변했다. 언어의 사회성으로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다시 2024년. 그래도 언어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