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인간을 추하게 만드는 집단이 두곳 있다.
하나는 잘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모인 국회가 바로 그곳이고,
또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는 예비군 훈련장이 바로 그곳이다.
국회라는 곳이야 내가 직접 본 적도 없고 참여해본 일도 없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예비군의 추악함과 비굴함은
가히 세계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가 심하다.
이는 현역 복무시절 쌓인 스트레스와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익명성이 그 바탕이 되어
인간의 지저분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그 정도에 대해선 일일이 실례를 들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에 예비군훈련에 간적이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어서 비와 훈련을 동시에 피해 다니며
예비군 특유의 땡땡이를 동료 예비군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야비한 자세로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중 갑자기 웅성거림이 있어 시선이 모아진 곳을 바라보니
같은 예비군 입장인 옆 중대 예비군들이
각개전투(개인이 하는 전투라는 뜻으로 뛰어다니고 기어다니는
힘든 훈련)를 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훈련을 받는 예비군들이
논산훈련소의 신병은 저리가라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여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철조망 통과> 같은 훈련도 비가 와서 젖은 땅을 아랑곳하지 않고
예비군들이 온몸을 적시고 던져가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조금 높은 곳의 먼 발치에서 보던 우리들은 매우 당황했다.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시조로 이 상황을 한탄했다.
예비군아 예비군아 좋은 일 하자스라
예비군이 훈련와서 시키는 일 열심하면
마소에 갓고깔씌여 밥먹이나 다르랴
하긴 예비군의 바른 자세라 함은 시키는 일 절대로 안하고
하지 말라는 일 목숨걸고 하는 것임이 분명한데도
저 예비군 무리들은 무슨 귀신이 씌였는지
아니면 예비군 훈련이 성과급 월급제로 바뀌었는지
그렇게도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그들을 바라보는 무리의 한사람으로서
이 나라의 미래와 국가 기강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고
정말 이런 일이 또 한번 더 생긴다면
이민이라도 갈 마음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처한 입장에 가장 어울리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주장이었다.
마찬가지로 예비군이 예비군답지 못하면 안되는데 말이다.
* * *
그날 저녁에 알게 된 일인데 그 혹독한 훈련을 받던 예비군 중대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이란 그 전날 막사로 찾아온 부대장이
간곡히 사정했기 때문이었다는 얘기였다.
이번 훈련은 대외 공개 훈련으로 이번 행사가
자신의 진급 -그는 대령이었고 곧 스타가 될 수도 있는 중요한 - 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자식뻘일 수도 있는 예비군들에게 시쳇말로 ‘무릎꿇고 싹싹’ 빌었다고 한다.
한번만, 딱 한번만 봐주라,
그 다음은 일정은 내가 책임지고 휴식을 보장하마,
딱 한번이다, 딱 한번.....
여기서 나는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 한가지를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경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철저하게 도와준다.
자신의 몸을 진흙덩이 같은 땅바닥에 던져가면서도 도와준다.
얼핏 생각에는 누구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서말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생면부지의 부대장을 도우려고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희생할까?
* * *
그 이후로 나는 어디에서든
우리 나라 사람들의 좋은 국민성을 얘기할 때면
꼭 이 얘길 빼놓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나라도 그랬을, 우리 나라 사람 누구라도 그랬을,
우리만의 아름다운 정서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하누가
예비군 훈련을 간 일도 이제는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 되었다.
2024년 현재, 지금은 두 아들이 예비군 훈련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