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칼럼

젓가락

아하누가 2024. 1. 11. 16:44

오래전 자사의 자동차 판매를 위해 내한한 VOLVO사 기술담당자의 인터뷰를 신문에서 본적이 있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우리나라에 팔아먹은 자기네 회사 차에 대한 정비 및 수리 기술을 우리나라 실무자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자동차 고치는 일이니 얼핏 생각에도 그리 대단한 일 같지는 않았는데 역시 그 사람은 그저 그런 얘기로 인터뷰를 하더니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젓가락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므로 어렵지 않게 잘 할겁니다.”

 

 

한국사람들은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굳이 기능올림픽을 몇년씩이나 싹쓸이 했다는 얘기를 들추지 않아도 세계에서는 이미 인정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끔 외국에서 들어온 민속공예품을 보면 그 정교함이란 조악하기 이를 데 없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 뛰어난 손재주는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          *          *

 

 

나 역시 오래된 젓가락 문화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에 충분히 공감한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극동 지역의 3국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젓가락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나머지 2개국은 젓가락의 사용을 국수가락 떠먹는 정도의 기능밖에는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젓가락 다루는 솜씨는 거의 예술에 가깝다. 콩자반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이는 정확한 타이밍과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두젓가락의 정확한 교차능력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다. 이는 한국인의 정교한 손재주를 보여준다는 젓가락 솜씨를 극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보다 조금 더 고도의 난이도가 있다. 바로 김치 찢는 일이다.
이 기술은 젓가락질과 연관이 없을 것만 같은 새끼 손가락까지 필요로 하며 앞서 설명한 것에 고도의 균형감각까지 요구된다. 초보자들이 할 경우 종종 실수가 발생하여 뻘건 국물이 옷에 튀는 실수의 과정을 겪게 된다. 자기에게만 튀면 다행이지 앞사람에게도 튄다. 그러나 그 과정만 마치면 끝부분이 뾰족하지도 않은 나무젓가락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게 된다. 두사람이 합심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고수일수록 큰 김치도 잘 찢는다.

 

 

그 보다 더 난이도가 높은 젓가락질도 있다.
바로 도토리묵으로 대표되는 ‘묵’을 나무젓가락도 아닌 쇠젓가락을 집어 올리는 일로, 여기서부터는 손재주의 차원은 물론 예술의 경지도 이미 넘어서게 된다. 마찰력이라고 전혀 없는 쇠젓가락으로 경도와 강도가 느껴지지 않는 ‘묵’을 집는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해낸다. 여기에 필요한 기술은 앞서 설명한 ‘콩자반 집기’와 ‘김치 찢기’의 기능에 정밀한 힘조절 능력을 더 추가해야만 한다. 또한 무게중심에 대한 수학적 정리와 마찰관계와 같은 물리학적 지식은 물론이요 내공의 힘마저 필요로 한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경공술도 이에 바탕을 두고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 난이도의 젓가락질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 식구들끼리 둘러 앉은 식사 시간에 가끔 동생 녀석이 철없이 엄마에게 한마디 한다.

 

 

“엄마! 여기 음식에 머리카락 있어!”

 

 

그 순간 어머니는 손에 잡고 있던 젓가락으로 정확하게 머리카락만 잡아 올린다. 고추가루 하나 따라 올라가지 않는다. 이 얼마나 예술적인가?

물론 이 과정까지 마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노력한다면 날아가는 파리를 젓가락으로 생포할수도 있다. 이 기술마저 더 발전하면 식구들이 모인 식사시간에 파리가 날라다닐 경우 아버지께서 ‘막내야 왼쪽 마지막 다리를 잡아 보거라’ 라고 지시하시기도 하고, 때로 딸들은 ‘아버지! 저는 저놈을 고자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라며 날아가는 파리의 정확한 부분을 잡을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집안의 생태계 보호를 위해 애써 참고 있을 뿐이다.

 

 


그럴 때 한국인임이 좋다. 이러한 정교한 재주가 있으니 말이다.

 

 

*          *          *

 

 

요즘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젓가락을 잘 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포크와 나이프라는, 개인적으로는 무식한 식사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방식에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편한 것을 추구하려는 시대적 유행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젓가락 사용을 못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답답함 이상의 절실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젓가락을 열심히 사용하자. 두뇌 건강에도 좋고 2세에도 좋다.
어쩌면 젓가락은 우리의 선조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훌륭한 유산인지도 모른다.

 

 

 

 

 

 

 

 

아하누가

글을 쓸 당시에는 잘 쓴 글 같았는데.....ㅠㅠ

그래도 젓가락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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