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씩 읽었을만한 책인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가 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로 ‘명작’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이 동화 역시 동화 세계에 있어서는
명작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다니는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거야 어렸을 때의 생각이고
요즘 들어 아들 녀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다시 한번 읽어 보니 과연 이 글을 동화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명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진행시키며 문제점을 찾아보자.
* * *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남매가 살았다.
산골 마을에 살았는지 도시에 살았는지 그건 일단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그런 남매는 계모 밑에서 살았는데
계모는 성질도 더러워 남매를 키우기 귀찮다며
산속 깊은 곳에 아이들을 버리기로 한다.
무심코 읽어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야 말로 끔찍한 일이다.
요즘 들어 영화나 소설, 그리고 청소년들의 컴퓨터게임 내용이
난폭해진다는 보도를 자주 듣게 되지만
이 경우와 비교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닌듯 싶다.
(물론 계모인데다 성질까지 더러운 걸로 보아 상당한 미모를 갖추었거나 또는
굉장한 재력가인 듯 하므로 ‘이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평소 소신을 펼치며
마무리 할 수도 있으나 아들 녀석까지 등장하는 글임으로 애써 참는다.)
이 계모는 산에 아이들을 버리는데, 한번은 오빠 헨델의 기지로 빠져나오지만
두번째는 산속 깊숙이 버려지게 된다.
거기서 남매는 빵과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하게 되고
이번에는 계모보다 더 지독한 마귀할멈을 만난다.
이 부분은 글을 읽는 아이들의 정서에는 매우 치명적이다.
엄마가 교육상 할 수 없이 때릴 때 아이들은 그때의 엄마 모습으로
동화속의 마녀를 상상하게 되니 이 얼마나 비교육적인가.
또한 마귀할멈은 ‘누굴 먼저 잡아 먹을까?’ 또는 ‘살을 통통하게 찌워서
잡아 먹어야지’ 등 갖은 몬도가네식의 망언을 일삼으며
커다란 가마솥에 뜨거운 물을 끓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으니
이 또한 심상치 않은 장면이다.
아이들이 엄마가 라면 끓이려고 냄비에 물 끓일 때
필요 이상의 상상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잔인함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동생 그레텔은 마귀할멈이 물을 잘 끓었나 가마솥을 열어보는 순간,
힘껏 밀어 마귀할멈을 가마솥에 빠뜨리고 오빠와 함께 그곳을 탈출한다.
잔인하기 이를데 없다.
마귀할멈을 뒤에서 밀던 그레텔이 똥침을 한방 먹이고 밀었는지
안밀었는지는 물론 내용에 없다.
이처럼 잔인하며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 동화다.
어린이들은 물론 19세 이하 청소년이 보기에도
정서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다. 내용도 동화가 가지는 상식 이하로 허구적이다.
* * *
처음에 계모가 산속에 버렸을 때는 오빠 헨젤이
돌맹이를 떨어뜨리며 지나간 길을 표시해 두었다가
다시 그것을 찾으며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산속 깊이 아이들을 버리려는 계모가
겨우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놔두고 왔을리는 없다.
적어도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까지 갔을텐데,
그러면 헨젤은 짱돌을
허영호 대장의 등반 배낭 크기의 가방에 가득 채워서 집을 나섰나?
그 정도의 돌을 배낭에 채운다면 귀신잡는 해병대도 걷기 조차 힘들다.
그리고 산에는 원래 돌 많다.
짱돌에 일일이 야광 페인트를 칠해두기 전에는 구별할 수도 없다.
그리고 두번째 산속에 버려질 때는 빵을 조금씩 떨어뜨려 두었는데
새들이 집어먹는 바람에 길을 잃게 되었다.
그 사실로 보면 지능도 그리 뛰어나지 못한 아이들인데
궁금한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마귀할멈을 가마솥에 빠뜨린 후
어떤 방법으로 집까지 돌아왔느냐는 사실이다.
지도를 찾았나? 아니면 011 핸드폰이 액정화면으로 가르켜 줬나?
이건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애들 교육상 집으로 돌아 오려면 그냥 와야지
그곳에 있던 보물상자까지 들고 왔다고 하니 점점 더 내용이 발칙해진다.
집에 돌아왔더니 계모는 이미 죽어서 없고
아버지와 보물 팔아서 잘 살았다니
가정불화도 모자라 불로소득과 일확천금까지 모르는 새에 알게 하는
나쁜 동화가 아닐 수 없다.
동화도 심의등급을 정하고 이를 관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 * *
가만히 보니 우리들은, 아니 최소한 나라는 사람은
어떤 고정관념에 집요하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남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것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내가 가진 취향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남의 시각만 남아 있는 채로 접했으니 말이다.
정말 그전까진 <헨젤과 그레텔>이란 제목만 들어도
무척 아름다운 동화라는 관념에 푹 젖어 있었다.
막상 다시 읽어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좀 씁쓰레한 기분이다.
아마 내가 아이들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눈이 이미 늙어 버렸거나 또는
좀더 현실적이며 사악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일들은 비단 그것 하나에 지나지 않는게
또한 지금의 세상 일일게다.
해도 바뀌고 나이도 한살 더 먹었으니 이제는 세상의 일들을
자신만의 눈으로 자신있게 바라보아야겠다.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조금 더 냉철한 눈으로 바라봐야겠다.
단지 그것이 편협되고 독선적인 시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하누가
2013년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오류가 많지만 그냥 남겨두자. 이것도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인 걸.
2024년 현재, 원래 성인용 이야기인 원작이 공개됐다는데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