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어느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본 적이 있다.
들었다고 해야 정상인 사운드 트랙 앨범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들은 적은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 음반에 나온 노래 중 “The ROSE”로 유명한 가수
배트미들러의 곡이 있었는데
멜로디나 제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독특한 가사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영어로 ‘마사지’와 ‘메시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영어로 된 가사를 원문 그대로 읽었을 리는 절대 없고
한글로 해설되어 있던 것을 보았는데, 그 가사의 내용을 설명하면
대략 이렇다(이런 세세한 부분을 기억하는 나도 어지간하다).
아주 오래전 오토 티슬링이라는 사람이 한 오페라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아리아를 부르는 주인공 여배우의 가슴이 무척 컸다.
얼마나 컸는지 노래를 하고 몸을 움직이려면 그 커다란 가슴 때문에
마치 앞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오토 티슬링은 그녀를 위한 의상을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컵처럼 만든 옷감과 끈을 이용해 가슴을 받쳐주는 기능이 있는
의상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옆 동네 사는 ‘필립 디 브래지어’라는 사람이
그 아이디어를 훔쳐 이를 상업화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브래지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호소한다.
‘여러분은 브래지어를 기억하시나요? 아니면 오토 티슬링을 기억하시나요?’ 라면서.
물론 이 얘기가 정말 있었던 얘긴지 아니면 지어낸 얘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알고 있는
브래지어에 대한 기원일 것이라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 * *
예전에 영어회화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하루는 수업 내용이 가보고 싶은 나라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 남자 대학생이 ‘브라질’이라고 말한다는 것이 혀를 너무 굴린 나머지
‘브래지어’처럼 발음이 되는 바람에 토론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들
엄청난 혼돈 속에서 영어 토론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모두들 토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어설픈 영어 실력이어서
축구황제 펠레가 브라자 출신이 되기도 하고
브라자를 입어야 삼바 축제에 참가한다는
이상한 내용도 오가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같은 자리에 많은 여자들도 있어서 쉽게 웃을 수도,
또 웃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말을 꺼낸 당사자도 아닌 내가
몹시 진땀을 흘려야 했던 기억이 있다.
브래지어라는 옷 아닌 옷은 아무래도 남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는
엄청나게 높은 벽에 가로 막힌 여성들만의 성역이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 것도
그 때의 일이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자칫 그 단어를 잘못 말하면
변태성욕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심하면 엄청난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남자들에게는 아예 금기처럼 되어버린 물건이요 또한 단어 아닌가?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될 것 같다.
* * *
1999년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빈약한 남성이 입으면 떡 벌어진 가슴을 만들어 주는, 이른바 <슈퍼맨 티>가
나왔다고 한다.
어느 벤처기업이 개발한 것으로, 여성의 브래지어와 비슷한 모양의
압축 우레탄 특수 보형물을 남성용 티셔츠에 넣어 배영만 몸매를 가진 남자도
마치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아니면 적어도 송승헌이나 클론의 구준엽처럼
당당해보이는 가슴선을 자랑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옷이다.
이 옷은 특수 보형물이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사로 된 재질과 함께
바느질을 안쪽으로 덧대어 겉보기에는 표시가 안나게 제작된 것으로,
착용 후 거부감이 없고
세탁 후에도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니
이야말로 남성용 브래지어 아닌가?
사람의 외모가 그 사람이 가진 내면적 매력보다 몇배, 몇십배
심하게는 몇백배 이상 더 중요시 여겨지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어서
그 상품은 얼핏 좋은 아이디어 상품일 수도 있겠지만 괜시리 느낌이 개운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남자들이 귀거리를 하는 것도 아직 이해 못하는 입장이니
외모를 가꾸려는 노력과 연구가
본래의 좋은 느낌으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자만이라도 그저 생긴대로 살자고 외쳐보자니 그것도 현실을 외면한
나 하나만의 생각이 될까 또한 두렵다.
그저 생긴대로 맘 편하게 사는 세상 어디 없을까?
아하누가
2013년 지금, 근육맨으로 만들어주는 남성용 초대형 브래지어도 있다!
2024년 지금, 하나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