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엔 늦은 시간까지 일하느라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면 대중교통이 없으니 당연히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몹시 자연스러운 상황이지만 한가지 나의 특이한 체질은
이렇게 흔한 상황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다.
* * *
나는 차멀미를 한다.
시골 출신도 아니고 차를 많이 타지 않은 사람도 아닌데 약간은 촌스러운 차멀미를 한다.
비행기 멀미나 배멀미라면 상대적으로 조금 세련되어 보일 텐데 하필이면 차멀미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군에서 제대하고 집 앞에 지하철이 생겨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니
이상하게도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게 된다.
택시는 버스에 비해 흔들림이 없어 비교적 덜하지만 늦은 시간에 피곤한 채
택시를 탄다거나 또는 조금 지저분한 택시를 만나면 예의 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직접 운전을 하기도 하지만 운전할 때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미리 명령하고 예측하고 가기 때문에
스스로 운전하는 차에서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굳이 과학적인 근거를 들먹이지 않아도 모두들 이해하는 상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거리 이동시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술도 안 먹으니 매우 훌륭한 운전기사인 셈이다.
그날밤엔 피곤해서 그랬는지 멀미 증세가 왔다.
집까지의 거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지만 그래도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다.
아직 집에 도착하려면 반이나 남았는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토할 것 같다.
술을 먹어서 토하던 음식이 얹혀서 토하던 토하는 일은 매우 괴롭고,
그 중에서도 특히 괴로운 것이 울렁거려서 토하는 것일 게다.
문득 지금 여기서 토하면 어떤 내용물이 나올까 생각했다.
저녁으로 먹은 메뉴가 시뻘건 국물이 흥건한 갈치조림이었으니 그것이 적당히 소화되어
점심 때 먹은 복어매운탕과 잘 조화된다면
빨간 벽돌 빛의 고추장이 듬뿍 들어간 떡복이의 모양이 될 것이다.
농도는 매우 질펀거릴 것이며 파릇파릇한 음식에 곁들어진 양념들이 제 색깔만 내어준다면
비교적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의 와중에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으로는 몹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되어
다른 생각으로 급히 바꾸기로 했다.
얼마전 어떤 외국 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베트남 아가씨에게
답장이 왜 안 오는지 생각했다.
답장이 안 오는데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답답하니 또 토할 것 같다.
더 이상 생각의 전환으로 증세가 해소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의 이 상황을 가장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의 고민 끝에 이 상황을 가장 효과적으로 넘기며
집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은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탁월한 발상이라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시도하지도 않고도 시원한 기분에 멀미 증세가 사라진다면
그 또한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시원해진 속을 조금전에 생각했던 '오바이트의 내용물'로 되돌려
울렁거림을 강제로 지속시켰다.
그래야만 탁월한 발상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약간은 거만하게, 약간은 장난스럽게 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기사님. 여기서부터 내가 운전하면 안될까요? 요금도 나온대로 드리고
길도 내가 잘 알구요. 아저씨는 뒤에서 그냥 쉬기만 하면 됩니다."
그 탁월한 발상은 오직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기사 아저씨는 이내 허허 웃고 만다.
그저 웃기만 하고 그 다음 반응이 없음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그 탁월한 제안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탁월한 것은 언제나 나의 착각인가.
돌아오는 나머지 길에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베트남 처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안이 되어주고 있었다. 멀미 증세를 잊을만한 제법 효과적인 생각이다.
내일은 무조건 고맙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나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차멀미를 이기는데는 베트남 아가씨가 가장 효과적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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