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러하듯 일요일 아침이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
그런데 그 평범한 일정 가운데 커다란 사고가 생겼다.
후반전에 들어서서 경기가 한참 박진감을 더해갈 무렵
우리편 선수가 상대편 골문을 향해 강하게 슈팅한 공이 내 몸에 맞았다.
그 녀석은 우리 편 선수 중에서도 강한 슈팅으로 유명한 놈이다.
몸이라 해도 여기저기 다양한 부위가 있는데 하필이면 여자에겐 없는,
남자에게는 무척 중요한 신체의 특정 부위에 정확히 맞은 것이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이 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비로 인해 흥건히 젖어있는 운동장에 엎드려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이 정도의 고통과 정신상태라면 거의 기절 수준이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걱정스러운 듯 한마디씩 던졌고
그 소리는 땅에 엎드려 있는 - 반쯤 정신이 나간 - 내 귀에도 아른거리며 들려왔다.
'저러다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냐?'
'하필이면 거기로 막냐?'
'괜찮아, 애도 둘이나 있는데 뭐'
'더 강하게 단련될 지도 몰라'
마지막에 말한 두 놈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온몸의 아파오는 신체적 고통 때문에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찬 공을 내가 몸으로 막았다면
살신성인이라는 성어를 빗대어 팀에 공헌이라도 하지,
이건 도무지 우리 편이 찬 공을 내가 막은 꼴이 되었으니 여러모로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아프지만 일어났다. 걸음을 걷기도 힘들었지만 일어났다. 그냥 쪽팔려서 일어났다.
그리고 축구가 다시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불과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조금 전의 그 부위를 또 공에 맞았다. 그것도 아까 공을 찬 그녀석이다.
이번엔 완전히 기절했다.
흥건히 젖은 운동장에 드러누워 빙글빙글 도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또 경기가 중단되고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이번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귓가에 맴돌 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운동하러 나왔다가 병신이나 되지 않을까 단지 그 생각 뿐이었다.
잔인한 4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 운전하다 말고
잠시 신호대기 틈을 이용해 살짝 바지를 열고 들여다 보았다. 멍들었다.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멍이 들어본 적은 많지만 살다살다 이런 특수한 부위에
멍이 들어보긴 처음이다.
옆으로 지나가던 어느 운전자 아줌마가 쳐다본다. 보긴 뭘봐! 응큼한 아줌마 같으니라구!
* * *
집에 돌아와서도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걸으니 아내가 뭔일이냐 묻는다.
이러저러해서 여차저차한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니 아내가 대뜸 내게 묻는다.
"누가 공을 찾는데?"
"......?"
대부분 그런 얘기를 하면 아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와야 하는 물음은 '많이 다쳤냐' 나 '지금은 괜찮냐' 라는,
걱정이 앞선 물음이어야 정상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살살 하지' 또는 '조심하지 그랬냐'는, 약간의 질책성 물음이 나와야
정상적인 부부의 대화가 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호전적이며 전투 능력 또한 뛰어난 아내는
대뜸 부상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부터 물었다. 현덕이라고 말하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만약에 내가 현덕이라는 사실을 말했으면 현덕이는 우리집에 놀러와
제대로 된 밥을 먹기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맞췄다면
현덕이는 우리집에 올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혹시나 신체의 주요 부위가 단지 신체의 노화 현상으로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원인을 현덕에게서 찾을 것이며
그렇다면 아내는 현덕이를 찾아가 그에 상응하는 부위를 가위로 조금 자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망치로 때려 비슷하게 멍들게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러고 보니 탁월한 순간적 판단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봄이 오는 4월의 첫 일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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