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처음 겪어보는 일이 생깁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처음 겪는 일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국악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런 사람들은 아니고,
그저 국악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며 연습하고 또 공연하며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것 같구요.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이들의 큰 문제가 제대로 된 대본이 없는 점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마당놀이 심청전이나 흥부전 같은 것은
몇 년째, 아니 몇십년째 대사가 조금 바뀌는 정도에서 같은 대본으로
공연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잘 된 대본만 있으면 새로운 창극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중론이었습니다.
물론 몇 명의 국악인들이 한국 국악의 현 상황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정확한 사실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내가 아주 오래전에 문화체육관에서 마당놀이 심청전을 본적이 있고,
이후 20년이 지나 아이들 데리고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공연장에서
같은 심청전을 본적이 있는데 대본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더라구요.
아무튼 알게 된 몇 명의 국악인들이 내게 대본을 써줄 수 있냐고 부탁했습니다.
어디서 내 능력을 판단했는지, 아니면 그냥 던져 본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뭐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도 그런 걸 써본 적이 없는 내가 어렵지 않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한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식하면 용감한 겁니다.
아는 게 많아지면 더 겁나고 더 힘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들에게 설명을 했죠.
창극의 기본 개념과 대본작성의 기본 지식은 전혀! 없지만,
그냥 내 맘대로 쓰는게 더 신선하고 획기적이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내 의견에 충분히 공감했는지
그들은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며칠 동안 잠들기 전 시간을 이용해서 스토리와 기본 구성을 생각하고
그냥 휙!~ 써버렸습니다.
그래도 들국화와 나 게시판에 <뮤지컬 들국화>를 써본 경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름대로 대단한 작품이었는데, 여기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 창극 대본은 대충 휙 썼으니
아마 공연에 필요한 기본적인 구성도 안들어 갔을지 모르겠습니다.
공연도 되지 않는 대본을 썼으면 어떡하나 잠시 고민했는데,
이때 머리에 번쩍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외국의 어떤 디자이너였는데, 폭풍간지가 나는 자동차 디자인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걸 본 한 사람이,
디자인은 멋지지만 이게 어떻게 자동차로 만들어질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디자이너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그거야 엔지니어들의 몫이지!”
조금 무식하긴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정답입니다.
자꾸 디자이너가 엔지니어 일까지 걱정하니까 디자인이 과감해지지 못하는 겁니다.
연극 대본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용만 재밌으면 되고, 그걸 재밌게 하는 건 배우들의 몫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뻔뻔하게 내 직분에만 충실하여 완성된 대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남들은 몰라도 나한테는 무지 재밌는 겁니다.
그래서 또 생각했습니다.
‘나만 재밌으면 돼지!’
그래서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혼자 낄낄 웃다가 문득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는 있어서 그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당연히 우리나라도 저작권위원회라는 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몇 가지 절차를 거치고 양식을 작성하고 등록에 필요한 돈을 입금하니
심사에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심사랄 거나 있나요 뭐.
그리고 엊그제 저작권에 등록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거 진짜 별거 아닌 일인데도 ‘지적재산’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신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살다가 이런 일도 겪고 있으니까요.
올해는 그동안 안해봤던 일을 많이 해볼 생각입니다.
지금 벌려둔 일 중에 하나는 아마 이 세상에서 누구도 못해봤던 프로젝트인데,
조금이라도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저작권 문서는 모니터 캡춰도 안되게 막았습니다.
문서는 집으로 우편배달한다네요. 그래서 핸드폰으로 모니터만 찍었습니다.
살면서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일을 겪으니까 또 그 맛에 사는 가 봅니다.
아하누가
이왕 하는 김에 <뮤지컬 들국화>도 저작권 등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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