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황당하겠지만,
무언가 먹는 행동을 통해서 그다지 큰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식도락이라 하여 음식을 먹는 일도 상당히 큰 즐거움이라 했고,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는 음식의 보급이 풍요롭게 되고
또한 생산 능력의 발달로 인해 계절과 관계없이 원하는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실제로 진정한 식도락의 세계가 열린 셈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먹는 일에 상당히 인색합니다.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또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더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위해 다른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특정한 음식을 먹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한다거나
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은 내게 있어 참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그저 음식이라는 것은, 내게 있어 단지 배만 채우면 된다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인식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음식에 대한 선택을 굳이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맛있는 음식보다는 차라리 건강한 쪽을 택할 것이고,
그것보다는 위생적으로 안전한 걸 택할 겁니다.
주변 친구들 중에 식도락가들은 이런 나를 매우 불쌍한 듯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음식을 먹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하는 그들의 모습이
가끔은 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내가 늘 생각하는 음식에 대한 관념입니다.
2.
어렸을 때는 편식이 심했습니다. 매우 심했습니다.
집안의 음식에 10가지 종류가 있다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고춧가루 없는 김치나 아니면 육류나 생선 정도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파, 마늘 같은 양념은 감히 생각도 못했고 당근이나 고추는 시도도 못했습니다.
가장 심한 건 된장찌개를 못 먹었다는 점입니다.
이건 좀 심각했죠.
그런 편식은 스무살이 넘어서 군대에 갈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군입대 전날 어머니께서 우셨습니다.
아들은 군대에 보내는 게 싫어서 우시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된장찌개도 못 먹는 우리 아들 굶어죽는다’는 것이 눈물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을 하듯 뻔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맞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모든 분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 장면!
첫날 식사부터 그 맛없는 된장국은 시쳇말로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식성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부터 10가지 음식 중에 8가지는 먹을 수 있게 된거죠.
남자들..... 군대 가야 합니다.
3.
군 제대 이후로도 편식은 없어졌지만 음식에 대한 욕심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그건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여전해서 음식에 대한 욕심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내게 있어 음식이라는 것은 맛을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주는 것뿐이었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음식을 먹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직장 다니면 흔히 고민되는 것 중에 하나가 점심식사 메뉴라는 건
대부분 직장인들이 공감할 겁니다.
그런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그냥 식사 때가 되면
어제 먹은 그 음식 먹는 데 매우 익숙하고 또한 자연스럽습니다.
대부분 같이 식사하는 동료들에 의해 메뉴가 바뀌지
내 의지로 메뉴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이렇게 음식에 대한 싱거운 관념은 여전히 지속됩니다.
4.
음식에 대한 평소 생각이 이러한 내게 조금은 특별한 인연이 만들어졌습니다.
조리사와 관련된 잡지 출판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아주 애매한 일거리가 하나 생깁니다.
잡지에 소개되는 조리장을 취재하려면
조리사가 최소 10명 이상 되는 대형 음식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내 돈 내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고급 음식점을 다니게 됩니다.
주로 하는 일은 조리사가 엄선해서 만든 음식을 촬영하고 취재하는 일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촬영도 취재도 아니고 주로 섭외입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국내에 유명한 대형 음식점이고,
취재대상인 조리장은 경력이 화려한, 그 분야의 전문가들입니다.
전직 청와대 조리사, 남북 정상회담 참여 조리사, 국제대회 수상자 등 전문가들이죠.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식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준비됩니다.
먹기 위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촬영을 위한 음식입니다.
내용보다는 데코레이션에 치중되어 있고,
사진에 의한 식감을 강조하게 위해 색상을 화려하게 구성한 음식입니다.
사진 찍고 취재하고 나면 취재진들에게 대접할 음식이 따로 준비됩니다.
이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요리가 준비됩니다.
그것도 평소에 보기는커녕 듣지도 못한 재료로 만든 음식들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나는 그냥 음식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평소 입에 맞지 않은 어색한 음식을 먹는 일은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여기에 더 결정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식탁 앞에 조리장이 부동자세로 서 있고 뒤로 실장급 두어명,
기타 조리사 서너명이 도열해 있습니다.
조리장은 내가 음식을 집으면 그 음식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하고
뒤에 서 있는 조리사들은 내가 젓가락이 어디로 몇 번을 움직이는 지 체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어야 합니다.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이 생긴 음식이라도 한번은 먹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하면 다들 행복한 소리한다고 놀리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정말 곤혹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세상이 공평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음식을, 맛을 즐기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는 내게 이런 기회가 온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이런 게 정말 공평한 게 아닌 가 싶습니다.
평생 먹어야 할 기기묘묘한 음식을 이 때 다 먹은 것 같습니다.
5.
어느 날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식도락을 즐기지 않는 체질을 가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과연 무엇일까?
간혹 이상한 설문을 만났을 때 이 대목에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적었던 건 ‘사과’ 또는 ‘샐러드’였는데,
지금은 입맛이 변했는지 그것도 그다지 매력이 없네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란 게 분명 있긴 있을테고
그것은 각자 저마다의 입맛으로 결정하는 거니까 내게도 분명 존재할 테지요.
얼마전 MBC-TV 놀러와 <들국화> 편에서 최성원이 말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초콜렛이라는 주장도 이해가 가고
또 이에 맞서 논쟁을 벌이게 되는 전인권의 ‘씀바귀론’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 내게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와사비(고추냉이) 섞은 간장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황당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제일 맛있더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만 먹기엔 좀 곤란한 음식이죠.
음식이라기보다 조미료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그게 맛있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와사비 간장을 맛나게 먹으려면 무언가 필요하게 됩니다.
어묵도 같이 먹어봤고 생선구이도 함께 먹어봤는데 맛이 좋습니다.
하지만 와사비 간장을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생선회랑 같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와사비 간장이고,
그걸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생선회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논리가 조금 이상하지만
나는 와사비 간장을 맛있게 먹으려고 생선회를 먹는 것만 같습니다.
그럼 혹시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도 있을까요?
저마다의 입맛이 각자 다르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인정한 음식 또한
분명히 있겠지요.
적어도 우리나라에만 국한해서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이 뭘까 생각하다가 결국 정답을 찾았습니다.
6.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TV프로그램도 바뀐 세상의 흐름에 맞춰 방영됩니다.
예전에 비해 사람들의 기호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진 것이죠.
당연히 삶의 목적과 행복의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TV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고,
이와 맥락은 같으나 다른 현상으로 인해 불량음식을 고발하는 프로그램 또한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방송을 통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찾으려면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보다
반대로 불량제조 음식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면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맛있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유심히 방송을 보다가 문득,
가장 사람들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는, 놀라운 판단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음식,
가장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은 바로 MSG였습니다.
대부분 방송이 MGS 없이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하기도 이상하지만, 아무튼!)은
MSG가 맞는 것 아닌가요?
7.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며 특히 요리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캘빈 트릴린(Calvin Trillin)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음식이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위안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면,
어떤 것을 먹느냐의 문제도 당연히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맛이 아닐 겁니다.
요리사의 정성도 중요하고, 자연의 섭리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필요하고
또 지혜도 필요할 겁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음식을 통해서 정신을 기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몸을 기르게 된다고 합니다.
세상이 너무 원초적인 자극에 익숙해져있듯,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다른 의미는 찾지 못한 채
오로지 입맛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요즘 세상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음식문화가 조금 더 세련되어지길 바랍니다.
음식은 맛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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