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얘기

프리셀

아하누가 2024. 7. 5. 01:16


 

1.

컴퓨터에 윈도우를 설치하면 기본적으로 생기는 게임이 있습니다.
지뢰찾기도 있고 하트게임도 있고 또 카드 놀이도 있습니다.
이 게임들은 컴퓨터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그나마 컴퓨터랑 친해질 수 있는
유일한 접근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때 잠시 뿐이고 다른 것들을 할 줄 알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입니다.
즉 지금 컴퓨터를 만지는 사람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올챙이 시절에
그 게임을 했던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추억과 전설의 게임이며 또한 그냥 컴퓨터를 장식하고 있는 장식품의 하나인
그 게임을 아직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게 바로 우리 사무실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윈도우의 기본 게임 중에 ‘프리셀’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카드놀이와 비슷한 이 게임으로부터 사무실 사람들의 엽기행각이 시작됩니다.

 

 

 

2.

한 동료직원이 며칠 째 그 게임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추억을 더듬으려니 했는데 그 정도와 집착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여기저기서 빈정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빈정거림과 심한 야유 속에서도 그 직원은 너무도 열심히
그 게임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프리셀 게임에 얽힌 쓰라린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식구중에 빌 게이츠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며 생각을 해도 저렇듯 집요하게 몰두할 만한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던 어느날 다른 동료직원이 그 동료와 함께
프리셀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동조자 한사람이 늘어나자 금방 싫증이 날 것만 같은 그 단순한 게임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더욱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던 그 궁금증은 어렵잖게 풀렸습니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늘 하던 질문이지만 오늘은 반드시 원인을 알겠다는 말투로 누군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게임에 푹 빠져 있는 동료직원인 일명 프리셀맨은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응...이거? 그냥 하면 재미없는데. 잘 안풀릴 때가 있거든?
그러니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연승기록을 세우는거지.
그리고 그 기록을 스스로 깨는거야. 지금 최고 기록이 14연승이거든”

 

 

그 엉뚱한 대답을 듣고 처음엔 게임을 즐기는 발상이 몹시 아동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게임에 푹 빠져있는 동료직원을 지켜보면서 무슨 재미가 있는지 궁금해 하던 직원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그 게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프리셀맨이 설명한, 스스로 정해둔 기록에 도전한다는 사실은
곧 대단한 흥미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불과 며칠 사이에 사무실 전 직원이
그 게임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대부분 다른 컴퓨터로 일을 하고 윈도우가 깔려 있는 피씨는
불행히도 한대 뿐이어서 게임을 해야 하는 그 경쟁은 몹시도 치열해졌습니다.

 

 

 

3.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혹시 피씨방 가본 사람 있어? 난 한번도 못 가봤는데”
“나도 못 가봤지. 여기 아무도 못 가봤을 껄?”

 

대부분 인터넷은 사무실에서 하고 인터넷 게임을 할 일은 없는 사람들이니
피씨방에 갈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몇 사람은 피씨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해 하던 참이었습니다.

 

“요 앞에 피씨방 생겼는데 한번 구경갑시다!”

 

모두들 딱히 할 일도 다른 계획도 없었는지 아저씨 4명이 나란히 손을 잡고
회사 앞 피씨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힐끔힐끔 둘러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피씨방에서 미녀들이 나와서 춤을 추거나
대형 화면으로 야한 비디오를 틀어주지도 않으니
아저씨들에게 볼거리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각자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으려니 옆에 앉은 동료가 물었습니다.

 

“근데 여기서 뭐하는 거요?”
“뭐하긴. 그냥 인터넷 하는 거지...”

 

나란히 앉은 4명의 아저씨는 인터넷으로 평소 잘 가는 사이트  몇군데를 돌아보았지만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곧 심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동료가 아무 생각없이 문제의 게임인
프리셀을 시작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모두들 자신의 이마를 한대씩 쳤습니다.

 

‘이렇게 좋은 방법이?’

 

그리고 나머지 동료들도 본격적으로 프리셀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윈도우 보조프로그램에 게임이 없다며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자리를 옮겨 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4명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프리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PC방에 와서 PC로 무언가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안타까운 탄식 몇마디와 현재 몇승중이냐는 간단한 대화말고는
아무 말도 없이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한시간 가량 지나니 피씨방 아르바이트 학생이
뒤에서 계속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시간이 지나자 그 아르바이트 학생은 우리 일행의 뒤를 지나칠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 일행에게 ‘굳이 여기까지 오셔서 그런 게임 안해도 되요....’라고
막 말을 꺼낼 것만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돌아서서 ‘우리도 알아! 안다구!’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들릴만한 소리로
‘우리 이번 전국 프리셀대회에 준비하는 선수들이야!’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아저씨 4명은 나란히 앉아 몇시간동안 프리셀만 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은 이 기이한 장면을 보면서 피씨방의 다양한 용도에 대해
새로운 감동을 느꼈는지 아니면 컴맹들의 우매한 행동으로 보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 일행은 사무실에는 컴퓨터 한대뿐이어서 게임하기도 곤란했는데
여기는 컴퓨터가 많아 싸우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도 내가 그런 엽기적인 장면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4.

요즘은 가끔 피씨방에 갑니다. 시간의 한가로움을 누리고 싶을 때 가는데
가면 주로 바둑을 둡니다.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런 손님들이 많아져서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 컴퓨터가 많은 곳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소음이
몹시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술은 술집에서 마셔야 하고 일은 사무실에서 해야 하고
공부는 도서관에서 해야 하는 것처럼 인터넷도 피씨방에서 해야 제 맛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청소년들의 탈선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안좋은 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글쎄.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제법 괜찮은 곳인데 왜 부정적인 몇 사람의 시각 때문에

PC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쁜 선입견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나 부정적인 면은 당연히 있는 법, 조금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긍정적인 면은 더욱 발전하고 부정적인 면은 점점 고쳐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시나 행정당국의 담당자들이 PC방을 한번도 안가봤다거나 또는 한번 가더라도
이미 부정적인 마음의 벽을 잔뜩 쌓고 들린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긍정적인 면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노력이 몹시 아쉬운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조금은 씁슬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난 PC방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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