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유머

기적

아하누가 2024. 7. 5. 01:12

 

1
점심식사를 앞두고 하루 일과중 가장 중요한, 절대적으로 중요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답지도 않은, 그러나 매우 중요한 이 고민을 하던 그때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얘기일까봐 무척 반가운 목소리로 반겼는데
친구는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갖은 오도방정을 다 떨어가며 말하고 있었습니다.

 

 

“야~ 내 말 좀 들어봐. 나 어제 차 사고나서 죽을 뻔 했다구~”

 

식사 생각으로 가득찼던 때라 배탈이나 설사가 나서 죽을 뻔 했다는 말로 생각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어이구!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구?”

 

친구말인즉 운전을 하다가 차를 축대에 박아버리는 커다란 사고가 났답니다.
차는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 이상하게도 다친 곳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빨리 부상자를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었답니다.
아직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듯 말끝 마다 긴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 친구에게
집에서 적정 많이 했겠다고 물으니 아내가 말했다는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참, 내..... 지금은 ‘청춘의 덧’ 보니까 나중에 얘기하자네. 허허.... 기가 막혀서.
아무튼 이건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어, 기적이라니까...기적.”  

 

그 이후 기적이란 단어가 계속 맴돌았습니다. 평소에 기적이란 것은
전설이나 성경에만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기적이란 단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물론 이은하 노래에 나오는 ‘멀리~ 기적이 우네....’는 당시 상황과 전혀 맞지 않으니
일부러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지
또는 그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2
오래전 군생활 시절, 못된 고참이 있어서 항상 마음 속으로 ‘다리나 부러져라’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그 고참이 작업중에 정말 다리가 부러져
병원으로 후송간 일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적이라고 우겨보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적치고는 스케일도 작고 내용 또한 좀 쩨쩨한 것 같았습니다.
정상적인 기적이라면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멀쩡한 사람이
다리부러진 걸 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죠.

다시 한번 기적과 비슷한 예전 일들을 기억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기억해냈다고 해서 그걸 로마 교황청에 보고해서
성인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은 아니었고 신문에 작은 얘깃거리로 실리길 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기억을 해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기적에 대한 불신을 버리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는다고 없었던 기적이 생겨날 리 또한 없었습니다.

 

 

 

3
그러다가 문득 몇 년 전에 있었던 한국과 일본과의 축구경기가 생각났습니다.
매우 중요한 경기였는데 우리나라가 1:0으로 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질 것만 같은 그 경기에서 동점골이 터지더니 종료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기적같은 역전골이 성공하여 극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낸 일이 생각났습니다.
하긴 그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그 기쁨이야말로 하기도 힘든 일이었죠. 그래서 그것을 기적이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억지로라도 기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한테야 기적이겠지만 경기에 진 일본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이겠습니까?
축구를 잘하는 한국에 아깝게 졌으니 기적이라고 생각한 일본인은
한 사람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아무리 우겨도 그것이 기적일 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기적에 대한 불신감만 더해진 채 하루를 마치게 됩니다.

 

 

 

4
어느날 아침.
출근하려고 골목길에 주차해둔 차를 후진하다가 뒤에 있던 자동차와 가볍게 부딪쳤습니다.
가벼운 접촉이어서 그냥 가려다 혹시나 해서 내려보니
약간 언덕진 곳에 비스듬히 주차된 까닭에 그차의 브레이크등이 깨져버렸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그런 일이 한번 생기면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잖습니까? 또한 하루종일 신경쓰여서 되는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말할 때나 돈이 중요한 게 아닌 것 처럼 말하지, 돈은 역시 돈입니다.
내 차는 프라이드인데 거기에 서 있던 차는 소나타였으니 이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중형차니까 적어도 몇만원은 할텐데 그 액수가 한 순간에 날려버릴 돈으로는
엄청나게 큰 액수 아닙니까?

 

한숨을 쉬다가 아주 간단하고도 좋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이른 아침이었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가는겁니다.
다른 말로는 도망이라고도 하지만 단지 자리를 피하는 거라 억지로 자위하며
이 상황을 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차에 타고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골목을 막 빠져나가려다 차를 세우고 잠시 머뭇거린 후
다시 후진으로 그 자리까지 돌아왔습니다. 물론 돌아오면서 또 부딪히진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가기에는 개운치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수리비를 물어주는게 낫지 그런 기분으로는 며칠간 아무 일도 못할 뿐 아니라
후유증만 커지고, 또한 동네 골목 지날 때마다 고개가 숙여지고 지나가는 소나타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경우는 음식점에서 밥 먹고 나와보니 신발이 바뀌어버린 기분과 비슷해서
하루종일 찜찜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결국 조그마한 메모지에 진술서와 흡사한 간략한 사고 경위와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를 적어 윈도우 브러쉬에 끼워두고 출근했습니다.
글씨를 적을 때도 혹시라도 번호를 잘못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글씨를 못 쓰는 행동도 잊지 않았고 윈도우 브러쉬에 메모지를 끼울 때도
되도록 살짝 끼워서 혹시라도 바람에 날려가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고 출근하니 마음은 제법 개운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소나타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브레이크등을 새로 교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메모지가 바람에 날려갔을 거라고 믿던 자그마한 바램은 산산히 깨어졌습니다.
또한 정직함에 감동한 차주인이 마치 조지 와싱턴의 아버지처럼
너그럽게 이해해줄지도 모른다는 뻔뻔한 생각 또한 사라져버리고
냉정한 현실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리비는 예상외로 싸게 나왔습니다. 예상금액의 반도 안되는 가격이었습니다.
그나마 몇푼 건졌다고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문제의 골목 그 자리에서 소나타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수리비를 계산해주려는데 이게 웬일…
어제는 분명히 소나타였던 차가 엑셀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두 눈을 씻고 보아도 분명한 엑셀이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신데렐라의 마차가 자정을 넘기면 호박으로 변한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소나타가 브레이크등이 깨지면 엑셀로 바뀐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이해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하다 문득 기적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기적이라는게 바닷물이 갈라지고 죽어가던 사람이 벌떡 일어난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 스스로에 대한 정직함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자신에게 찾아오리라는 확신도 생깁니다.
아마 기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조그만 씨앗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지요.
TV 드라마를 보고 있던 아내에게 이 얘기를 할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이 일이 혼자서만 알고 싶은 작은 기억으로 남게 되길 바라니까요.

여러분도 기적을 믿습니까? 

 

 

 

'명작유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끈한 농부  (0) 2024.07.05
2개의 돈가스  (2) 2024.07.05
더 나쁜 소식  (0) 2024.07.05
탈옥수의 항변  (0) 2024.07.05
아담과 이브  (0) 20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