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병장 김병장의 군대이야기

구전군가 BEST 3

아하누가 2024. 6. 30. 01:22



군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군대에서 군가만 부르는 줄 알지만
군대에서도 회식시간을 통해 인기가요나 흘러간 트로트를 즐겨 부른다.
군대의 노래 중 특이한 것은 군가도 아니고 가요도 아닌
오직 군대에서만 애창되는 특별한 노래가 있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군가 아닌 군가, 즉 구전(口傳)군가다.
여기까지 읽고 순간적으로 몇 가지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군대생활을 제대로 한 이 땅의 자랑스러운 예비역임이 분명하다.

 

오로지 군대에서만 불리워졌던 수많은 노래를
국민투표나 그 흔한 설문조사 없이 단 한사람만의 시각으로 3곡만을 선정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 잠시 잊혀지고 있던
군대의 추억을 색다른 시각으로 되짚어본다.

이른바 구전군가의 BEST 3이다.

 

 

 

제 3위 소령 중령 대령은 짚차 도둑놈.....

명확한 제목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 바로 이 노래를
구전군가의 베스트를 선정하는 역사적 과정에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노래는 부대 회식시간에 단골로 불리며

회식이 가지는 특별한 즐거움을 증폭시키고
말단 사병의 설움을 자학함으로써 감정을 공유하는

구전군가의 스탠더드를 제시했다.
‘소령 중령 대령은 짚차 도둑놈, 소위 중위 대위는 권총 도둑놈,
하사 중사 상사는 총알 도둑놈,

불쌍하다 일이상병 건빵 도둑놈’이라는 노랫말은
절도를 미화하고 상사를 모욕하는 등

군법에 위배된 위험 수위의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계급과 생활환경에서 오는 심오한 차이를 점강법을 이용하여
감정의 교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영관급 장교로부터 시작되는 이 점강법적 표현은
군대의 최고 계급인 장군들의 심기를 절묘하게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향후 이 노래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군법적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된 영악함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절이 끝나고 가사의 내용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점강법식 멜로디의 환상적 추임새는 특정한 출연자가 한곡의 노래를 부르고
좌중은 손뼉만 치던 종전 군대회식의 스타일을
참여자 전원이 백보컬이 되는 새로운 회식문화로 전환시켰다.

이 노래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트로트 가수 김지애가 불러 히트시킨 <얄미운 사람>의 첫구절,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를 흥얼거리면 바로 생각날 것이다.

 

 

이 노래는 단지 구전군가의 스탠더드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 밝은 날이 돌아올 것이라는
신데렐라적 믿음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그래봐야 쫄따구는 쫄따구일 뿐이라는 현실직시의 결론을
자연스럽게 도출시킴으로써 사병으로 지내는 군대생활의 현명한 대처방안을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두 3절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1절 이후도 마찬가지로
소령 중령 대령으로 시작하여 일등병의 애환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가사가 이 건전한 감성의 교류 마당에 소개하기에

매우 직설적이고 뇌쇄적이어서 자세히 되집어볼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깝다.

 

이후 이 노래의 활발한 멜로디는 수많은 개사를 거듭하여
'지나가는 여대생을 붙잡아 놓고...' 로 시작하는 가사로
애달픈 청춘의 한 시대를 풍미하는 등
노래로 나타내는 진정한 감성표출의 의미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노래가 가진 애절함이란 가슴을 반쯤 드러낸 채 첨단 오디오 장비의 힘을 빌어
입만 방긋거리는 신세대 여가수의 재롱이 아니라
삶의 애환과 눈물의 의미가 담긴 가사의 구구절절함이야말로
노래가 우리에게 주어야 하는 진정한 애절함이라는 사실을
바로 이 노래를 통해 느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망각 본능에 의해 지금까지 철저히 외면당하고 무시당했던
이러한 노래들을 강력하고 노련한 내공에 의해

현대적 관점에서 되짚어보는 이 엄청난 역사는

이 보다 한 등급 공력이 업그레이드된 2위로 이어진다.

 

 

 

2위 : 영자야 내 동새애앵아

학계에 의해 무시되고 곡해되었던 구전군가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하는
이 역사적 순간에 두 번째로 소개하는 구전군가는
대한민국 전 사병들의 영원한 동생인 영자를 노래한 이른바 ‘영자송’이다.

앞에 소개된 ‘소령 중령 대령은 짚차 도둑놈...’ 에 비해
매우 명확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노래는 트로트 계열의 전통적 멜로디와
구성진 리듬으로 우리 정서에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영자는 단지 친동생만이 아니라
애인이요 친구인 군인들의 영원한 이성적 대상을 지칭한다.

 

‘영자야 내 동생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자알 있느~냐’ 라는 도입부의 가사 전개에서
‘몸 성히’를 거듭 강조한 것은 건강을 문안인사의 일순위로 하는
국민적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시작부터 노래가 표현하고자 하는 애절함을 엿볼 수 있다.
이 노래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태진아의 노래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1절 첫구절을 흥얼거리면 바로 연상될 것이다.
어떤 부분이 1절이고 어떤 부분이 후렴구인지 구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어지는 가사 ‘여기에 있는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란다’ 에서는
그동안 자신의 신분을 속여왔음을 고백한다.
고난도의 일제시대 신파극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야리한 감성이 코끝을 찔러 절로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이 노래는 설령 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슴이 짜릿한
애절함의 진수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 높은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애절함은 ‘여기에 있는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라‘ 라는 다음 가사에서

또 한번 반복된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가사는
이 노래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문제의 대목으로
구전군가가 지향해야 할 바를 명확히 제시한 이정표다.
여기에 있는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라 어디 어디에 근무하는 쫄따구라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처절한 분위기로 진실을 토로한다.
응축된 감정표현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로 이때 가사에 등장하는 어디어디에 해당하는 부분은

전군대의 병력이 부대별로,
각기 자신이 근무하는 지명을 삽입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출신이 다른 예비역 50명이 이 노래를 합창하면
이 부분에서는 마치 체육대회에서 선서하는 참가자들이

선서 끝에 자신의 이름을 외치듯 제각각의 가사를 불러제끼게 된다.

 

 

그렇다.
이 노래는 단지 회식시간을 즐겁게 해주고 애환을 달래주는
구전군가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해서도 자신이 근무했던 지명과
주위환경을 명확히 기억해낼 수 있는 훌륭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래를 통해 노래가 가진 사회적 기능의 놀라운 효과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멜로디의 높은 완성도와 가사의 심오함, 그리고 활용성이라는
구전군가의 3대요소를 두루 갖춘 이 노래를 들으면
누구라도 군대 시절의 생사고락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진정한 노래의 가치가 일부 철없는 가수들의 선정적인 몸동작에 의해
점점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이러한 구전군가는
노래가 노래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이 진지한 얘기인지 유머인지 판독이 불가능하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모든 사람들의 망각 본능에 의해 지금까지 철저히 외면당하고 무시당했던
이러한 노래들이 강력하고 노련한 내공에 의해 오페라 아리아급으로 격상되는
이 엄청난 역사는

이 보다 또 한 등급 공력이 업그레이드된 대망의 1위로 이어진다.

 

 

 

1위 : 여군 미스리

아무리 노래에 담긴 애절함과 함축적 의미를 호소해도
민간인들에게 씨알도 안 먹히는 구전군가의 1위는

제목도 당당한 여군 미스리다.

다른 경우처럼 지루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다 글의 끝 부분에 가서야 발표하는
1위가 아니라 아직 1위에 대한 얘기가 5%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발표하는 것으로 보아도 이 노래가 가진 음악적 완성도와
구전군가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소령 중령 대령은 짚차 도둑놈>이나 <영자송>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애환의 진수를 보여줬다면 이 노래 <여군 미스리>는
한 여성을 통해 활기찬 병영의 모습을 신비롭게 그려낸 구전군가의 걸작이다.

‘연지 찍고 분 바르고 예쁘게 하고서’로 시작하는 가사의 첫구절에서
우리는 군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가 어떤 것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때 등장하는 여군 미스리는 정식으로 국방부에 소속된 여군이 아니라
군인들의 영원한 동지요 애인을 상징한다.

<영자송>에 등장하는 영자가 가족 같은 느낌의 친밀함을 의미했다면
여군 미스리는 오로지 군인들의 이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파우더나 볼터치 같은 현대식 메이크업 용어를 대신하여
연지와 분을 등장시켜

사라져가는 전통을 보존하려는 힘겨운 노력 또한 찾을 수 있다.
이후 가사에서는 여성의 생리적 특성을 여과없이 표현함으로써
상세히 소개하지 못함이 매우 아쉽다.
어쩌면 이러한 명곡을 낱낱이 까뒤집어 구차한 설명을 나열하는 것이
오히려 명곡에 대한 결례일 수 있다.

군대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래를 가리켜
여성을 비하하고 저급한 가사로 성적 충동을 부채질했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진정한 의미는
군대 생활에 적합한 단어를 등장시켜 군기를 확립하고

사기를 높이고자 함에 있다.
군가를 연상하는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는 매일 실시하는 구보는 물론
장거리 행군에 적용해도 전혀 부족함을 발견할 수 없으며,
각종 회식시간에서도 그 기능을 완벽하게 발휘함으로써
구전군가를 예술의 경지에 끌어올린 것이다.

 

<여군 미스리>가 가지는 군대적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몸을 내던지는 훈련의 고통과 그러한 틈에서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낭만적 정취를 노래를 통해 고스란히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3곡을 대표로 재조명한 이러한 구전군가가

연말 가요대상을 받아도 시원치 않는데
오직 군인들의 장단만 맞추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단지 겉멋과 잔재주에 의존하는 설익은 가요가 아니라
진정한 노래로서의 가치를 보듬은 여군미스리는 지금도 끈끈한 생명력으로
군대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에게

흐뭇한 추억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노래들이 오페라 아리아급으로 격상되는 날을 기대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은 채
여군 미스리를 목 놓아 부르고 있을 대한민국 군인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표한다.

 

 

 

 

 

 

 

아하누가

2002년경 스포츠서울 칼럼리스트로 활동할 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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