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병장 김병장의 군대이야기

내무반의 TV

아하누가 2024. 6. 30. 01:19


 

군대라고 해서 늘 훈련만 있고 기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 또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요, 그러니 만큼 웃음도 눈물도 모두
함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때로는 엄청나게 슬픈 일임에도
그만 웃음을 터져 나오게도 되는 곳이 또한 군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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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가 몰아치는 한 겨울. 김병장은 초소에 앉아서 옛생각에 잠긴다.
날씨가 춥다보니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있었던 집안의 따뜻한 방이 절실하게
그리워지고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덮고 TV를 보고 있으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물론 군대에도 TV는 있다.
일과 시간 이후에는 봐도 되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일단 TV를 볼만한 서열이 되어야 하고

또 그나마 앞에 앉아서 볼 서열이 되려면 한참이나 멀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보는 TV에서 김병장은 늘 옛 추억에 빠지곤 했다.
군대에서 그나마 예전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이 TV였으니 말이다.
요즘은 ‘김완선’이 완전히 전국의 군부대를 장악했다.
그 전에는 ‘민해경’이나 ‘정수라’가 캡이었다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세대차를 가늠하는 구분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그전까지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당시

춤출 때 듣던 음악이 어떤 음악이었는가로
세대를 구분하곤 했었는데 군생활하다 보니 또 하나의 기준이 생긴 것이다.

 

김병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상상하기 시작했다.
우리 뒷세대들은 어떤 TV스타를 보며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릴까?
우리가 김완선보며 침을 흘려가며 TV를 보았다면 후배들은 믿을까?

아니면 웃고 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그나마 추위를 조금 잊을 것만 같았다.

 

 

                   *          *          *

 

 

보초 근무 교대자가 왔다.
김병장은 빨리 내려가서 저녁밥이나 먹어야겠다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또한 차갑다.
두터운 방한모와 안경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자꾸만 고개를 움추려 든다.

어느덧 내무반에 다왔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내무반 지붕 위에 후배사병 한명이
올라가서 덜덜 떨고 있다.

 

“이봐! 거기서 뭐하는 거야?”

 

김병장은 무슨 일인지 구태여 알고 싶진 않았지만
혹시 입술이 얼어 붙었는지 확인도 할 겸 큰 소리로 외쳤다.

 

“예! 고병장님이 여기 있으랍니다!”

 

 

뭐? 지붕위에 있으라고?
아마도 말투로 봐서는 뭔가 밉보였는지 아니면 다른 잘못을 했는지
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후배사병은 몹시 추운 모양인지 스스로 팔짱을 꼭 끼고
누가 빼기라도 할듯이 힘을 잔뜩 주고 있는듯 했다.
그리 군인답지 않은 체벌이지만 체벌치고는 비교적 효과적인 체벌일 것 같다는
별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한던 김병장은 내무반으로 들어섰다.

 

총을 제자리에 놓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려는데 여전히 TV앞에는
일부 고참들이 몰려서 TV보는데 정신을 팔고 있다.
참 행복한 군인들이다.

TV앞에서 주루룩 앉아서 TV웃고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얼핏 보니 김완선이 나온 모양이다. 고참들은 광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쫄따구 여러명이 걸레들고 다니며 침흘린 거 닦아야만 할 것만 같다.

혹시나 옆에 서있다가 괜한 잔소리 듣기 싫어

황급히 식당을 향해 내무반을 나서는데 한 고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이런! TV가 또 안나오네?”

 

 

김병장은 속으로 몹시도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니들만 TV보냐? 쫄따구들도 같이 봐야지. 어쨋든 고것 참 잘된 일이구만’

 

 

이제 고참들이 김완선 본다고 주책떠는 모습을 안봐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고참은 김병장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마침 옆으로 지나가던 김병장에게
심한 욕설이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야! 너! 지붕 위에 있는 놈 내려보내고 니가 올라가 있어!”
“예? 그게 무슨…….”
“나가 보면 알아! 임마!”

 

 

무슨 일인가 밖으로 나가보니 지붕위에 아까 추위에 떨고 있던 후배 사병이
김병장의 눈에 들어왔다.
그 후배사병은 TV안테나가 흔들리지 않게 두팔로 꼭 잡고 있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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