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기억에 있어서는 얄미우리만큼 모든 일을 쉽게 망각하곤 한다.
성격이 단순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게 마련이어서
가장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곳인 군대에서는 웃을 수도 없는 일들이
가끔 발생하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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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장은 화장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앉은 자세로 보아 장기적인 휴식에 들어가기 위함이 분명했다.
그러던중 화장실 밖에서 두 사병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김병장의 귀에
아련히 들어왔다.
얘기의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이제 막 부대배치를 받은 신병들인 것 같은데
첫 보초근무에 나갔던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담배를 한모금 힘껏 빨던 김병장은
지나간 시절을 타오르는 담배연기처럼 떠올린다.
* * *
논산훈련소의 훈련을 마치고 앞으로 근무하게 될 부대로 배치받은 김병장.
그 부대에서 경비를 담당하는 경비중대로 편성되어
앞으로 남은 군 복무 기간을 그 지긋지긋한 보초근무와 함께 보내게 된다.
그 부대의 보초근무는 고참사병과 졸병사병이 한조를 이루어
나란히 초소에서 근무를 하는 것으로 그리 특별히 할 일은 없고
특별한 사고만 없으면 되는 것이었다.
김병장은 처음으로 나간 근무지의 아찔한 기억을 떠올렸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간 근무지에서 무려 7시간짜리 보초근무를 서 있어야 했다.
7시간이라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그럼 고참은 뭐하는가? 계속 잔다.
쫄따구는 뭐하는가? 부대내의 순찰자가 오나 안오나 감시한다.
부대내의 순찰자에게 고참이 자는 것이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고참은 쫄따구가 순찰자를 잘 감시하도록 교육을 시키는데…….
참고로 군복무중인 가족이 있거나 또는 나라의 국방을 걱정하시는 분들을 위해
순화된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보초 근무시간 초반에 고참은 보초를 잘 세우기 위해 쫄따구를 교육시킨다.
가슴도 주먹으로 쓰다듬어 주고, 근무 잘 서라며 엉덩이도 몇번 차준다.
졸릴까봐 머리통도 땅바닥에 잘 비벼서 정신이 번쩍들게 하며,
토끼뜀과 오리걸음으로 동물의 입장을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동물보호도 교육시킨다.
주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게 되어있는 것이 상례화되어 있다시피한 곳이었는데
김병장이 처음 나간 근무지에서는
이 과정을 마치고 또 한가지의 교육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 여기서 나가면 죽~~어!”
고참은 직경이 약 1m쯤 되는 원을 그리고는 그 안에서 나오면 재미없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다.
나무조각 하나를 들고 엉성한 자세로 그린 동그라미의 모습이
정확한 원의 형태를 띄는 것으로 미루어 원을 그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고,
또한 이는 많은 경험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라 생각하니
여러명이 이 원안에서 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김병장의 머리를 재빨리 지나갔다.
원안에 있는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서있어야 하니 여기저기 조금이나마 걷기도 하도 움직이기도 해야 하는데
그 작은 공간은 움직임을 너무나 구속하고 있었고
또한 조그맣게만 느껴지는 원이란 사람의 마음을 너무도 불안하게만 하는 것이어서
마치 7시간이 오랜 세월처럼 느껴져야 했다.
7시간 동안 원안에 있으면서 3번 정도 발을 원바깥으로 내보내기만 했을 뿐
혹시나 들킬까 두려워 결국 원안에서 7시간을 꼬박 서있어야 했다.
정말 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하고 혹독한 일이었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김병장은 결심했다.
절대로, 절대로
자신이 고참이 되었을 땐 쫄따구에게 이런 무식한 짓을 하지 않겠노라고.
* * *
어느덧 화장실에서의 볼 일은 다 끝나간다.
아직도 화장실 밖에서는 두 신입 사병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만히 목소리를 들어보니
한 녀석은 조금전에 오후 근무에 김병장과 처음 보초근무를 했던 신병이었다.
“야! 임마! 뭘 그걸 가지구 그래?”
“뭐? 그럼 동그라미 그려놓고 그 안에서 7시간동안 서 있으라는 게
대수롭지 않단 말이야?”
그러자 김병장과 오후근무를 나간 오후 근무를 나간 신병이
가소롭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 갔다.
“너 임마! 동그라미 하나 그려줬다고 그러는 거냐?”
“그래 임마!”
“너… 말이야…… 내가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그 다음 대화를 듣던 김병장은 화장실 안에서 또 하나의 담배를 부시럭거리며 찾아
불을 붙일 수 밖에 없었다.
김병장과 함께 오후 근무를 마친 신참사병이 큰 소리로 동료에게 말했다.
“동그라미면 다행이지. 발바닥만 두개 그려주는 사람 봤어?”
아하누가
이 글을 쓴 시절이 1990년말이니 오래전 글이다, 어째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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