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인저리타임

사리체프와 신의손

아하누가 2024. 6. 29. 22:30


 


1990년대 초반 서울을 연고로 하던 프로축구팀 일화천마(지금의 성남일화)에
새로운 외국인 골키퍼가 등장한다.
골문이 약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일화에는 그전까지 루마니아 출신 골키퍼
마르셀이 골문을 지키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한 가닥도 없는 시원한 헤어스타일에 당당한 체격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지금 생각에 프랑스의 골키퍼 바흐테즈와 얼핏 인상이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기량은 바흐테즈와 상당한 차이가 있어
당시 일화 구단의 취약한 골문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서 한국땅을 밟은 사리체프라는 골키퍼는

골키퍼가 가지는 교과서적인 플레이로 골문을 든든히 지켜

일화구단이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를 3연패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데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한다.
사리체프의 뛰어난 활약은

이후 많은 용병 골키퍼를 그라운드에 등장시키는 효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용병 골키퍼의 범람은 국내 골키퍼를 보호하는 규정이 생겨나게 했고,
용병 골키퍼는 총 리그일정의 2/3에서 1/3로,

그리고 급기야 출장할 수 없는 상황을 맞는다.
이 규정에 따라 이미 은퇴 시기를 고려할 나이가 되었던 사리체프는
제 2의 고향같은 한국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선수로서의 축구 인생이 마무리 될 것 같은 시기에
사리체프는 또 한번 커다란 인생의 전환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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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한국인으로 귀화를 한 것이다.
한국인이 되면 선수로서 활동이 가능하지만 나이로 볼 때
그의 귀화는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고 경제적인 여건 등
여러 이유로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 유리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리체프는 구리 신(申)씨의 시조가 되어 돌아왔다.
신의손이라는 별명에서 신의손이라는 한국이름으로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예전의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소속팀인 안양을 정규리그 1위 및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하는데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도 사리체프가 아닌 신의손은 우리 곁에 축구선수로,
그리고 한국인으로 남아 있다.
성실함과 축구에 대한 애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훈훈한 감동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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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신의손에 이어 또 한 사람의 귀화 선수가 생길 것 같아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수원 삼성에서 맹활약하다 올해부터 소속팀을 성남일화로 옮긴
유고 출신 샤샤 선수로,

뛰어난 신체조건과 기량으로 한창 전성기를 맞고 있는 선수다.
그런 선수가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면 두손 들고 환영하지만
어쩐지 여기에는 신의손과 다른 무언가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다.

 

샤샤는 귀화와 관련된 인터뷰 때마다 항상 2002년 월드컵 출전을 희망해왔고
최근 들어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월드컵 출전을 강력히 희망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월드컵에서 뛸 수 있다면
귀화하겠다’며 그 귀화의 취지를 슬며시 바꾸었다.
굳이 신의손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신의손은 축구를 하기 위해서 귀화해야 했다면
샤샤는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귀화를 하는 셈이다.

 

단일 민족으로 이어온 우리 정서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그것이 발전적인 정서이든 또는 발전을 가로막는 부질없는 정서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서임에 분명하다.
그런 정서 아래 파란눈의 이방인이 태극마크를 다는 것도

한국인들은 익숙치 않을텐데
한국인이 되는 것보다 월드컵 출전을 먼저 요구했다니
이 사실은 우리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눈앞의 성적이 급하고 눈앞의 스트라이커가 아쉬워도 이 문제는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가 좁아지는 국제화 시대에 창고속에서나 쳐박혀 있을 ‘순혈주의’를
고집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의 현실로는 넘기 힘든 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축구라는 스포츠는 우리의 전통과 정서와 함께
오랫동안 같은 호흡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 같은 현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샤샤 선수가 한국인이 되기엔 이해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는데
아직 몇가지 중요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귀화는 그 나라의 국민이 되고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므로
좀더 신중해야 하고 또한 그 의도가 순수해야 한다.
혹시라도 월드컵이 전제가 되는 귀화라면 이른 시기에 생각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샤샤 선수가 이 곳까지 와서 이 글을 읽을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그때는 가능할 지 모르지만.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