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에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다

1997 필리핀(마닐라) - 세번째 감상 (2)

아하누가 2024. 6. 26. 00:40



1997년 3월 29일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도착한 곳은 마닐라의 유명한 휴양지 ‘푸에르토아줄’.
스페인 말로 ‘푸른 섬’이라는 이곳은 스페니쉬 계통의 한 부자가 소유한 땅에
만들어진 리조트라는데 그 정취와 아름다움이 굉장하다.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방문이어서

새로운 발견보다는 나름대로의 추억에 젖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많은 관광객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보통 유원지나 관광지에 비하면야

사람이 없다고 표현해야 하겠지만
이곳의 평소 상태로 보면 꽤 많은 관광객이 온 셈이다.
사람이 많고 적음에 따라 느끼는 감상은 너무도 다르다.
지난번에 찾았던 이 곳은 너무도 한가로운 여유의 만끽이었는데….

 

오늘은 일정이 이곳 뿐이니 일찍 돌아가서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사우나를 찾았다.
온수 목욕을 즐기지 않는다는 이 곳에서 몇 안되는 온수 목욕탕이라고 하지만
시설이며 환경이 시원치 않다. 요금은 약 15,000원~20,000원 정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둘러 나와 로비에서 잠깐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동양 사람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건넨다.
홍콩에서 왔다는 그 남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무역 때문에 잠시 이곳에 들렀다는데
아마도 말동무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왔다니 새삼 반가운 표정이다. 업무 때문에 몇 번 가보았다며
서투른 한국말 몇 마디를 섞어가며 자못 흥분된 말투로 얘기한다.
한국에 대한 느낌이 어떠냐고 물으니

사람도 차도 많아서 복잡했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뭐가 좋은지 계속 신이 나는 모습이다.

그러다가 내가 7월 1일에 있을
홍콩의 중국 반환 문제로 화제를 돌리니 금방 얼굴이 어두어진다.
그러면서도 덤덤하게 지금의 홍콩은 지금의 홍콩대로 별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내게 반문한다.

나보다 더 민감한 문제일텐데 내게 묻는 걸 보니
나름대로의 걱정거리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일행과 함께 찾은 곳은 이곳에서 제일 좋다는 -요즘 젊은 사람들 표현으로

물이 좋다는 - 샹그리라 호텔의 나이트 클럽.

일행이 있다는 사실이 장점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혼자 오거나 한두명의 일행이었다면 굳이 나이트 클럽을 찾았을까?

각국에서 온 여러 인종으로 가득차 있는 이곳은

시설이나 분위기가 꽤 좋은 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많은 우리나라의 호텔바에서는 필리핀 뮤지션이 연주하는데
이곳은 예상외로 흑인 락밴드가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법 뛰어난 그들의 실력이 잘 갖추어진 시설과 어우러져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간간이 음악이 ajacns 틈을 이용해서 준비한 이벤트를 하는데

그 또한 이국적이다.
330년간의 스페인 영향 탓일까? 플라밍고풍의 음악과 춤을 보여준다.
2인이 1조가 되기도 하고 때론 3인이 또는 5인이 1조가 되기도 하는데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스타일의 춤을 직접 보는 것도
마치 내가 여행에서 얻은 하나의 소득인 것처럼 작은 포만감에 젖는다.
가격은 8명이 2,600페소(1페소는 약 33원 정도)였으니 1인당 300페소 정도?
나머지는 세금과 봉사료인 듯하다.

 

입장권처럼 생긴 티킷을 주는데
가운데를 쉽게 자를 수 있는 점선으로 되어 있고 두개로 나뉘어진 티킷은
한개당 맥주 1명으로 바꿀 수 있다. 1병의 용량은 320ml.

자세히 주위를 둘러보니 몇가지 사실을 알 것 같다.

호텔 주인이 일본인인 듯하다.
수많은 일본 관광객과 일본 음식을 파는 코너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밴드 또한 일본에서 활동하는 밴드인 것 같다.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는 너무도 뚜렷한 일본 인상의 젊은 여성이 그렇고,
연주자들의 옷입은 스타일이 또한 그렇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좋은 시장을 일본이 가만히 놔두었을 리가 없다. 

이곳에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마닐라의 도로를

일본이 모두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공짜로.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동안 일본차만을 수입해야 한다는 그런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이 공짜로 만들어 준 그 도로는 일본차들로 빽빽히 채워지고,
더불어 부품상 등 자동차 관련 업종 물품들은 모두 일본제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런 규제가 풀린 것이 1991년-
처음으로 우리나라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 30대가

택시의 용도로 이곳에 진출했다.
프라이드를 택시로 이용한다니 꽤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이 곳의 택시 중 약 5% 정도는 프라이드다.
처음에는 이 프라이드가 꽤 인기있는 자동차였다고 한다.
한 때는 이 곳의 국민차 역할까지도 했었다는 프라이드가 3년만에 위기를 맞는다.
이곳의 강한 태양열과 부실한 도로 사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아쉽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흑인 밴드의 음악이 귀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하누가

2013년. 프라이드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