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앞서
그리 자주 하는 여행은 아니지만 여행을 목적으로 외국에 갈 때마다 꼭 다짐하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은 여행을 함께 하는 인원이 3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현지에서는 우리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현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현지 언어를 - 그것이 의사 소통을 위한 몸짓이 될지언정 -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비슷하기도 한 이 두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원래의 목적이라고 생각한 ‘여행’이라는 것이 ‘관광’이나 ‘휴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들만의 문화를 맛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1997년 3월 28일(금)
마닐라로 향하는 아침-
혹시라도 더운 지방 여행에 짐이 될까봐 두꺼운 옷을 피했더니
3월의 이른 아침이 유난히 쌀쌀하게 느껴진다.
이미 세번째의 마닐라 방문이고 이번 여행에 10명의 동료 직원이 함께 한다는
부담 때문에 들뜬 기분은 쉽게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공항이라는 곳은 항상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비록 그것이 여행을 떠나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기내는 어느덧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듯한 필리핀인,
무슨 목적으로 가는지 궁금하기까지 한 아기 2명과 동승한 한국 아주머니,
국적을 예상하기 쉽잖은 벽안의 젊은이들 …….
비행기안은 이미 또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되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작은 설레임으로 보내고 드디어 도착한 마닐라 공항.
출발전 공항에 있었던 사실만큼 사람을 들뜨게 하는 것이 바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작은 공간에서의 오랜 기다림 때문인지
아니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사방이 꽉 막힌 비행기 안에서도
밖의 모습이 환히 그려지는 이 시간을 누리는 것은
여행이 주는 큰 즐거움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서둘러 입국 절차와 세관 통관 절차를 마치고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숙소에 도착,
이 몇가지 재미있을 것 같은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계획도 없이 처음 이곳에 와서의 난감했던 모습을 돌이켜 보니
또 한편으로는 패키지 투어의 장점도 어느 정도 고마움으로 느껴진다.
중국 식당에서 가볍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방문한 「미군묘지」.
굳이 가이드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잘 정리된 곳이라는 느낌이 한번에 와 닿는다.
하긴 이곳 또한 2차대전때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곳이니…….
돌아오는 길에 리잘공원에 들렀다. 마닐라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가던 곳.
똑같은 장소를 세번이나 찾는다는 사실은 너무도 묘한 느낌을 준다.
처음은 처음대로의 느낌으로, 두번째는 또 다시 왔다는 감회로,
세번째는 다시는 이곳에 올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막연한 아쉬움이다.
리잘공원은 필리핀이 스페인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시대에 독립을 위해 활약한
‘호세 리잘’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현재 필리핀 사람들에게 있어서
리잘은 단순한 영웅의 단계를 넘어 숭배의 대상이다.
이 공원은 아시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최대를 자랑으로 삼기에는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특이한 것은 그 곳의 까페테리아인데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모든 주문은 종이에 쓰거나
손가락으로 표시해야 한다.
마닐라 방문이 처음인 사람이라면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해질 무렵이 되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무더운 낮시간을 피한 것일까?
공원을 떠나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니 마치 못보면 아쉬울 것 같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돌아가는 발걸음이 못내 아쉽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동안 느끼지 못하고 있던
커다란 변화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에 차가 없다.
내가 아는 마닐라는, 그 동안 내가 경험한 마닐라의 거리는
끔찍한 교통 체증 뿐이었는데 이렇게 한가롭다니…….
그렇다.
내일 모레가 부활절, 카톨릭 국가인 이 나라에 부활절과 성탄절은
큰 명절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귀향이나 휴업은 가장 큰 변화의 모습일테니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고 거리는 이렇게 한산할 게다.
한산한 마닐라의 거리.
아무도 내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한국 식당에서 - 마닐라에도 적잖은 한국 식당이 있어 저녁 식사는 주로
한국 식당을 이용한다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밤거리 문화를 보고자 하는 몇명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알고 있는 몇군데를 가보았는데 영업을 하지 않는다.
특히 오늘은 부활절 휴일 중의 ‘성 금요일’이라 하여
모두들 경건하게 보내는 날이라고 한다. 호텔 벨보이에게 좋은 생각없느냐고
의견을 구하니 조용히 방에서 기도나 하란다.
농담이었다고 씩 웃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다간 정말 일요일까지
호텔룸에서 기도하면서 보내야 하는게 아닌가 걱정된다.
‘또띠’라는 친구를 찾아 나섰다.
정확한 이름은 따로 있었고 그냥 ‘또띠’라는 호칭으로
통하던 사람인데 직업은 참으로 애매하여 가이드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였고
알기 쉽게 말하자면 호객 행위를 하는 ‘삐끼’가 가장 적당한 표현이다.
마닐라에 처음 방문했을 때 머물던 호텔앞에서 만났는데
숙박객들을 상대으로 자신이 거래하고 있는 몇 곳을 안내하며
간간히 받는 수고비 형식의 팁으로 먹고 사는 친구로,
보여지는 모습은 현지인답지 않게 꽤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 일곱으로 4자녀를 둔 가장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 친구와 친해졌는지도 지금 기억하니 참으로 우습다.
처음 도착한 마닐라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하고 있는데
덩치 큰 녀석이 자꾸만 따라왔다.
안그래도 겁나는 외지인데 이 녀석까지 따라다니니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호텔방에만 들어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우리가 가고 싶은데만 안내한다는 조건으로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무척 귀여운 면도 있다.
같이 갔던 마닐라의 한 술집에서 계산을 하려고 계산서를 받아들고
나가는 나를 붙잡고 계산서를 빼앗듯 보더니 카운터로 달려가
이것저것을 캐묻는 듯한 몸짓을 보이더니
얼마를 깎아왔다고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내 앞에 다가온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마치 자신이 큰 일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다.
고맙다고 했더니 더 당당해진다. 물론 이것도 그들의 수법인지는 모른다.
몇번을 같이 다니다 우리는 제법 친해지게 되었고
또띠는 여행 온 나보다 더 신이 나 있었다.
또띠는 자신의 수입이 관광객에게 받는 팁이
전부라는 사실도 잊었는지 내가 주는 돈도 받지 않았다.
항상 호텔 앞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거래의 전부였을 뿐이었다.
두번째 방문에서도 또띠를 그자리에서 만났다.
기뻐서 펄쩍펄쩍 뛰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새롭다. 그는 가이드의 역할은 물론
보디가드의 역할까지 하며 나를 잘 안내해주었고
나는 그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과 사고를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이제 또띠를 찾으러 나선다.
아마도 이 친구는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예전과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게다.
또띠가 늘 있던 그 호텔앞에 그가 없었다.
이 친구도 부활절 휴일 기간동안 집에서 경건하게 보내는 것이 아닐까?
혹시나 해서 그가 잘 가던 술집을 찾아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술집을 찾아 영업을 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려 하는데
문을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나타난다. 또띠다.
나를 보더니 커다란 눈이 더욱 커지면서
커다란 눈만큼 큰 덩치로 나를 끌어안더니 번쩍 들어 올린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너무도 확연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주변을 보니 외국인이 둘이 서있다.
또띠의 손님(?)이라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나온다.
또띠는 내게 독일 친구들이라며 소개한다. 끝까지 친구란다.
그리고보니 이 곳 사람들은 친구라는 단어를 이용해서 친근감을 강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일종의 유행인가?
이곳 사람들은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쉽게 친해지고 또 화도 잘낸다.
그러다가 또 금방 웃기도 하고.....
술집에서 맥주 한병을 시키고 앉아 있으려니 또 감회가 새로워진다.
이곳은 변두리의 아주 조그마한 술집으로 그전에 묶었던 호텔과 가까워
저녁마다 들리던 곳이었다.
‘욘’이라는 기억에 남는 웨이터를 찾으니 다른 곳으로 갔단다.
한국에 오고 싶어하던 웨이터였는데 어디에 가있는지 모르겠단다.
지난번에 내가 이곳 과일이 먹고 싶다니까 그 자리에서 시장까지 뛰어가
여러 과일을 사다준 친구였는데 .....
아쉽다. 어디서든 잘 살기 바란다.
주문한 맥주보다 또띠가 더 빨리 나타났다.
고객(?)은 어쩌고 이리 빨리 왔느냐고 물으니 다 알지 않느냐는 표정을 짓고는
내가 더 좋다며 옆에 앉아 호들갑을 떤다.
이곳 사람들은 감정을 여과없이 빨리 표현하는 편이며,
또한 원치 않는 말들도 쉽게 해버리는 편이다.
그래서 집에 한번 놀러 오란 말도
세번 반복할 때까지는 가지 말아야 하고 큰소리치는 것도 그리 믿을 것이 못되고
또 거짓말이라고 화낼 것도 못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성격이다.
또띠라는 이 친구도 처음 마닐라를 방문한 내가 다음에 또 온다고 했을 때
그들 특유의 성격으로 흘려보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로 나타났으니 이 얼마나 까무라칠 노릇이었을까.
이 친구의 머리 속엔 내가 어떤 인물로 해석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반갑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밤이 꽤 깊어졌다.
내일 일정이 이른 아침부터 잡혀 있어 자리를 뜨려니
이 친구는 금방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곧 이성을 찾은 표정으로 또 한번 찾아가겠다고 한다.
또띠의 생각은 한국인은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만나면 호들갑을 떨다가도 금방 근엄한 표정을 짖곤 한다.
하여튼 재미있는 친구다.
아하누가
최근 몇년전에 필리핀에 비지니스가 생겨 요즘은 더 자주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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