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에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다

1997 일본(동경) - 혼네 속의 개선행진곡 (1)

아하누가 2024. 6. 26. 00:36


 

1997년 9월 28일에 있는 ’98월드컵 최종예선 대일본전을 보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기도 했고 또 그동안 다닌 여행과는 달리

가장 확연한 목적으로 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붉은 악마 일행은 모두 55명이었는데
나는 선발대 4명의 일원으로 다른 일행보다 하루 먼저 동경으로 가게 되었다.
하루를 더 머물 수 있음이 행운이라면 행운이랄까?
그 덕분에 한국에서의 마지막 미팅을 마치고 일행들과 헤어지면서

나는 일생일대의 명대사를 하나 남기게 되었다.

 

 

“내일 모레, 동경에서 만나자구!”

 

 

 

 


1997년 9월 26일(금)

 

오후 1시 40분, 기내에 올랐다.
처음 타보는 JAL이어서 기장의 일본어 인사말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는 항상 영어만 들었는데 말이다.
어찌된 일인지 일행 4명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앉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나 혼자 앞 뒤 옆자리가 모두 일본인인 외딴 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것도 일종의 머피의 법칙으로 해석해야 할까?
어찌하여 나는 모든 여행의 옆자리를 아리따운 아가씨는커녕
항상 할아버지와 함께 해야만 하는가? 이는 앞으로도 두고볼 일이다.

 

 

창밖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린다.

그런데도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활주로에서 퍼지는 물보라는 마치 수상스키의 모습을 보는 듯 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다니던

소독약 뿌리는 자동차를 기억나게도 한다.
이륙은 했지만 시계는 ‘0’에 가깝고 심한 에어포킷 현상까지 있어
최근에 있었던 많은 비행기 사고들을 자꾸만 생각났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하늘은 조금전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맑아졌고
눈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구름들은 곱디고운 솜처럼 펼쳐 있다.
마치 그대로 뛰어내리면 포근하게 나를 바쳐줄 것 같은.....

 

 

나리타 공항에 내리니 역시 날씨는 잔뜩 흐려 있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던 모양이다.
일인당 약 2,600엔 정도 하는 ‘스카이라인’이라는 철도편을 이용하여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는 타바타(田端)라는 곳으로,

아마도 동경의 한 변두리쯤 되는 모양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시내의 주요 지명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나름대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대충 해결하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지만 낯설은 곳이어서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몇군데를 돌아다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그저 만만한 맥도널드를 찾았다.
다국적 기업답게 그곳은 매우 자연스럽고 눈에 익은 모습을 하고 있어
그나마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는데 생각외로 음식 맛이 좋았다.
우리나라의 그곳보다는 조금 더 음식에 성의가 있다고 할까?
그 문제는 재료비에 투자되는 양국의 물가 차이도 있으므로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고.....

 

한가지 다른 점을 찾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패스트푸드점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곳은 흡연이 가능한 곳이었다.
문득 오기전에 미리 공부해 두었던 일본의 문화 하나가 떠올랐다.
일본은 흡연자의 천국으로 불리우며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부모와 자식간에도
흡연이 가능한 나라라는 설명이 피부에 와닿고 있었던 것이다.
흡연자의 천국이라는 이곳 일본.

하지만 머지 않은 시간에 이들도 일부 선진국과 같이
금연에 열을 올리게 될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전철을 이용해 신주꾸로 향했다.
울트라니뽄이라는,

우리로 말하면 붉은 악마같은 단체의 회장단과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이나 한 것 처럼 그들도 우리처럼 4명이 나왔다.
그 단체의 대표라는 우에다 아사히(植田朝日)라는 사람과

마에가와 요시노부(前川義信)라는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장소는 이상한 술집이었는데 신발을 벗고 비닐 봉투에 담아 가지고 들어가면
방안에 커다란 상이 놓여 있고 그밑은 뚫려 있어서

발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집이었다.

참으로 특이했지만 그리 좋은 구조는 아닌 것 같아
일행에게 그 불편하고 미련한 이들 문화의 감상을 말했더니 이게 웬일,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는 ‘로바다야끼’라는 구조라는 것이다.
글쎄...... 좀 씁쓸했다.
내가 느끼기엔 굳이 받아들일 것까지는 없을 것처럼 불편했는데 말이다.
이것도 선진 문화라서 받아들인 것인가? 아니면 일본 것이라면 인기를 끈다는
소비자의 심리와 상술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이유일까?
이 문제는 일본인의 근성이라는 대주제와 함께 여행 기간 내내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일이 된다.

 

그러는 동안에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다행히 우리 일행 중에 일본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어서 그로 인해
크게 오해없는 얘기가 진행되었고,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하는 사람끼리,
그것도 안되는 사람들은 종이를 꺼내어 필담으로,
그것도 안될 때는 만국공용어라 할 수 있는 몸짓으로 대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제가 이틀뒤에 열릴

한일 양국간의 축구에 대한 것이어서
대화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이들은 몹시 조심스럽다.

손님을 맞아하려는 그들의 예절인지,
아니면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들의 본성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화에 있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나는 늘 생각하던 ‘일본인의 겉모습’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빠지게 되었다.

 

이들은 그렇다.

모든 말도 모든 행동도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하는 듯하다.
술자리가 조금 깊어져서 제법 취할듯한 분위기인데도
그들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다만 시간이 조금 흘러서 이제는 좀 더 친해진 것 뿐이었는데

어쩌면 그것도 그때의 내 생각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일 모레 있을 축구 결과가 어찌될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도
이들은 그 신중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결론은 자신들 즉 일본이 이긴다는 말이었는데도 왜 이렇게 돌려서
완곡하게 설명을 하는지 내가 더 답답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도 한술 더 떴다. 확고한 말투로 너희들이 이길 것이라 했다.
못 믿겠다는 듯하기도 하고 반가운 것 같기도 한 표정들이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나도 그들의 습성 한가지를 익힌 모양이다.

 

 

술집에서 나와 경기가 벌어지는 요요기 경기장(동경 국립경기장)으로 갔다.
입구부터 줄지어 있는 텐트의 행렬이 자못 비장하기까지 했다.
내려서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우에다라는 친구가 몇번 들락날락하더니
조심하라는 말로 승인을 대신한다.

사실 조금 겁이 나기도 했었지만
선발진이 가지는 의무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묘한 용기도 생겨서 차에서
내려 텐트에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모두들 비장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비행기안에서 일본 방송의 뉴스를 통해 접하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 열기가 대단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 물었다.
누가 이길 것 같냐고.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이긴다고 말하긴 했지만
호들갑을 떨거나 들떠 있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말할 뿐이었는데 아마도 듣고 있는 사람의 입장을
최대한으로 고려하고 있는 듯 했다.
대화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해서
나를 더 긴장시켰는데(어딘지 알 수 없는 방송국 카메라까지 한 대 쫓아왔다)
생각했던 것 보다 그들의 모습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얌전하다고 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을 가리켜 겁도 많고 폭력을 싫어하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무라이’나 ‘닌자’같은 얘기를 화제로 만들어
그러한 약한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 그 생각이 나는 것은 왜일까?
혹시 내가 너무 이들을 얕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자리를 옮겨 후지TV방송국을 찾았다.
이곳은 동경의 신시가지가 형성중인 동경만 부근에 위치한 곳으로

경관이 몹시 화려했다.
우리를 안내한  우에다라는 이 친구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방송국에도 나름대로의 명성이 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개의 건물이 나란히 있었고 우리가 들어간 곳은 라디오 방송국이었는데
깔끔하게 정돈된 건물의 내외부와 주변 사람들의 친절함에
이곳이 일본이라는 것을 어렵잖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동경에서 가장 멋진 야경을 보여주겠다며

우리 일행을 스카이라운지로 안내했다.
이미 폐장을 한 상태였음에도 우리를 위해 특별히 오픈하는
제법 세심한 그들의 성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새벽 2시가 되어간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마도 우리가 먼저 가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끝까지 자리를
함께 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많은 생각을 하다

일단은 그들의 친절을 좋은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속마음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축구는 절대로 질 수 없다.

 

 

 

 

 

 

 

아하누가

1997년 월드컵 예선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