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29일 (일요일)
예전에 007이란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제임스본드섬이 있는 팡아만에 가는 날이다.
하지만 왠지 좋은 경치라고 말하는 것들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일정을 포기하고 푸켓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푸켓타운으로 나갔다.
하지만 일요일이어서 대부분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호객 행위하는 툭툭 운전수들만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곳 푸켓에는 대중 교통수단이라고는 툭툭이라 불리우는 일종의 택시 밖에 없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렌트카를 이용하거나 또는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다니기도 하는데
좌측통행이 익숙치 않은 내게는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아 툭툭만 이용했다.
이 툭툭이라는 것은 태국을 오기전에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3륜차가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의 다마스나 타우너 같은 소형 승합차에
뒷좌석 부분은 지붕 골조만 있다고 생각하면 딱 알맞는 구조를 한 것으로,
요금도 정해진 것이 없고
그저 타기전에 흥정하는 것이 요금 산정 방식의 전부다.
차체는 주로 일본 스즈끼사의 차를 이용하지만 얼마전부터 이를 씌우는
철제 부분을 태국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며
그걸 가지고 자기들도 자동차 생산국이라며 우쭐댄다니 참.....
일요일이 아니었다면 제법 생동감있는 거리였겠지만 한산했던 관계로
다시 숙소로 돌아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에 있었다.
잠도 자고 수영도 하고 책도 보고...... 꿈같은 시간이다.
저녁이 되어 팡아만에 다녀온 일행들과 합류하여
근사한 SEE FOOD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나 봄직한 근사한 곳이다.
식사비는 대략 일인당 30불 정도.
평소 생활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게 호화판이었지만
마음은 그리 개운치가 않았다.
태국에 온지 벌써 3일째. 과연 이들은 내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는 이들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푸켓에서 가장 유명한 비치라는 파통비치로 나갔다. 여긴 완전히 딴 세상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상점도 많고 술집도 많고.
대부분이 거리에 오픈된 선술집 형태의 술집이었고
각 술집의 한가운데는 TV를 켜놓았는데 모두가 다 축구만 하는 방송이었다.
얼마나 유럽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오픈되지 않은 곳은 남자 관광객을 위한 농도 짙은 쇼를 하는,
매춘과도 관계있는 술집이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느 업소나 매춘과는 관계가 있었다).
적당한 집을 찾아 들어가 보았다. 손님이 앉는 곳이나 댄서들이 춤추는 곳이나
그리 멀잖은 곳일 수 밖에 없는 조그만 공간에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미모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여자가 나와서
쇼를 하는데, 말이 쇼지 사실은 무슨 윤락업소 선전하는 것만 같은
선정적이다 못해 해괴망측한 행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번에 방문한 필리핀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쳐다보기가 민망해서 테이블로 눈길을 돌리니 많은 유럽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그 유럽인들중에는 일행과 함께 온 적잖은 여자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뭘까? 이 기분은....
그렇다.
여기서 나는 풀리지 않은 몇가지 의문을 풀게 되었다.
둘쨋날 피피섬으로 향하는 배안에서는 많은 유럽인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곳 파통비치의 술집가에서는 전혀 대화가 되지 못했다.
그 지저분한 쇼가 벌어지고 있는 술집안에는 유럽 여자들도 있었고
무대위에서 망측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태국인이긴 하지만 여자였을 텐데
그것을 바라보는 같은 여자인 유럽 관광객의 눈에는
그들이 어떻게 비춰졌을까를 생각하니 이것은 뻔한 일이다.
아마도 여자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다른 것이라....... 동물원에 와있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남의 나라 일이니 그러려니 하다가 문득 나는 그 수많은 유럽인들이
동양인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리고는 나 역시 동양인의 한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몹시도 불쾌하게 생각들었다.
그 불쾌함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분한 것이어서 당장이라도 태국 정부에 항의해서
그 저질스러운 관광 문화를 없애라고 건의하고 싶었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관광객을 위한 환락가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그 나라의 관광 문화에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아니다.
그저 사회의 필요악처럼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그 느낌과는 다르다.
같은 동양권 사람들을 한 통속으로 묶어버릴 수도 있는
추한 잘못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여기는 이런 곳이려니...하기엔 내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 저질 문화가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서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시각이 말이다.
기분만 버렸다.
아마도 한국에 돌아가서도 나는 이 기분을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아하누가
1998년.... 당시 나이 35세.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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