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28일 (토요일)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호텔 부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마치고 나니
선착장으로 향하는 버스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일정은 피피섬에 가기로 되어 있다.
피피섬은 푸켓 주변에 자리잡은 많은 섬들 중에서
그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어 푸켓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관광객은 모두 외국인이다.
동양인들은 대부분이 중국계 사람들이었고
서양인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유럽에서는 이곳 푸켓을 무척이나 선호하는 관광지라고 한다.
특히 지형적인 영향으로 유럽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외선이
이곳에서는 얼마든지 풍부하게 비춰주고 있으니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배는 약 20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규모였는데 이미 선실의 앞자리는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뒷좌석은 엔진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와 소음,
그리고 갑판과 선실을 오가는 사람들로
몹시 혼잡하여 편히 앉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갑판 위로 올라가니 무섭게 내리쬐는 태양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지
많은 유럽인들은 윗옷을 벗어가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배는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고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갑판의 시원함도 잠시,
나는 금방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래층 선실도 다시 한번 둘러보고 그것도 지루하여 갑판의 앞쪽으로 다가가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한 장면을 흉내라도 내볼까 했지만
아쉽게도 그 곳까지는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갑판 앞쪽에 자리잡고 앉아서 쓰던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열심히 쳐다보는 눈길을 느껴졌다.
유럽인으로 보이는 한 관광객이
내가 어깨에 두르고 있던 작은 가방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자기나라 상표라며 반가와 한다.
내 가방엔 [FILLA]라는 상표가 적혀 있었고
당연히 그 사람은 이태리 사람이었다.
이태리 사람하고 얘기를 해본 것은 나도 처음이다.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눠 본 이태리 사람이었지만 듣던 그대로
웃음 많고 표정 변화 많고,
또 많은 제스처를 쓰며 말을 하고 있어 다른 외국 사람하고 얘기하는 것 보다
훨씬 대화가 쉽게 느껴졌다.
이름이 스테파노라는데 나보다 조금 어리거나 또는 비슷할 것으로 보인 그는
아내와 둘이서 2주간의 휴가를 즐기는 중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이태리의 패션 브랜드를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구찌 핸드백 얘길 하길래 우리 마누라는 루이비똥 핸드백을 좋아 한다니까
그 친구는 펄쩍 뛰면서 구찌 핸드백이 훨씬 좋은 거라며
이태리 사람 특유의 제스처가 섞인 열변을 토한다.
하긴 구찌나 루이비똥이나 내가 보긴 그게 그거지만......
그는 한국이란 나라를 이태리 브랜드가 많이 소개된 나라로, 또 OEM방식으로
많은 이태리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가 1966년 런던에서 있었던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북한이 이태리를 1:0을 이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당시 북한 팀의 스트라이커였던 [박두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남북한을 구별하지 못했고 그저 하나의 코리아로만 알고 있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려다가 그냥 참았다.
다만 빨리 통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화제가 축구로 바뀌니 역시 대화가 잘 된다.
우리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웃고 떠들게 되었다.
이번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벨기에, 네덜란드, 멕시코와 같은 조라니까
아마도 16강 진출은 힘들지 않겠냐며 내 눈치를 조심스레 살핀다.
뭐 그리 엉뚱한 말도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정말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약 1시간 30분의 항해 끝에 피피섬에 도착, 어느 이름모를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보니 한국의 유원지에서도 자주보던 내용의 간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의자 하나에 30바트’ 물론 영어로 쓰여져 있었고
우리 돈으로 약 1,000원 정도니까
비싸고 싸고를 떠나 어쨋든 이곳은 관광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주로 이곳에서는 스노클링을 비롯하여 패러세일링, 제트스키 등
해양스포츠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한번 이용하는데 대충 한 가지 종목에 30불 정도.
그냥 참기로 했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리 썩 좋은 곳도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왔다.
그런데 뭐가 그리 매력적이어서 유럽인들은 무려 12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이들 찾아 오는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이곳 피피섬으로 오가는 배는 오전 8시 30분에 푸켓을 출발하고
오후 2시 30분에 다시 푸켓을 향해 출발한다.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스테파노가 보이질 않는다. 어디 갔나? 이 친구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한 오스트리아인과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직업이 축구 선수란다.
오늘은 왜 축구 얘기만 하는지.....
이 친구는 아까 만난 이태리인 스테파노하고는 전혀 딴판이다.
말도 또박또박 표정 변화 없이 하고 웃는 것도 그리 호들갑 떨며 웃지 않는다.
이렇게 확연히 다를까? 마침 독일의 분데스리가 축구를 좋아한다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분데스리가 출신 선수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의 이름은 ‘차붐’ 이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네가 잘못 알고 있단다.
무슨 말이냐 물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차붐’이 아니라 ‘차붐근’이란다.
‘차’는 라스트 네임이라나? 녀석......자세히도 알고 있군.
그러고 보니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는 운동 선수나 예술가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외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교과서적인 얘기가 다시 한번 생각이 났다.
배에 타지 않은 줄 알았던 스테파노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42살이란다. 이런.....
보이기는 그렇게 안보였는데 큰형뻘인 셈이다.
내가 몇살이나 될 것 같냐고 물으니 다행히 내 나이보다 10살이나 적게 불러줘
그럭저럭 좋은 기분으로 배안에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게이쇼로 유명한 SIMON SHOW를 보러갔다.
요금은 1인당 약 25불.
1시간 30분 정도의 공연인데 나름대로 제법 스케일이 큰 편이다.
특히 쇼의 주제가 동양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듯한 구성이었고,
출연자들이 모두 게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중국과 일본 문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에 대한 부분도 조금 나오는데
시간도 짧고 그 구성도 어째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저 온김에 한번 본 것이었고 또 그럭저럭 볼만한 쇼긴 했지만
다시 돈내고 보라면 아마 안 볼 게다.
쇼가 끝나면 행사장 밖에서 출연했던 게이들이 직접 나와서 인사도 나누고
관광객과 사진도 찍곤 한다.
물론 사진 한장 같이 찍는데 1달라 주어야 한다.
조금 개운치 못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 한장을 찍었다. 물론 1달러 주고.
태국에 도착해서 처음 지출하는 돈이다.
이 사진을 아내에세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계속 웃음이 나온다.
언제부턴가 게이라는 존재가 알려지면서
나는 상당한 혼란과 잘못된 인식 몇가지를 가지게 되었다.
혼란이라는 것은 게이 자체에 대한 것으로,
아마도 그것은 평생 이해가 가지 않은 채로 살아야 할 것 같은
정답없는 막연한 생각이고,
잘못된 인식에 대한 부분은 ‘게이들은 다 예쁘다’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의 결론부터 말하면
게이는 절대로 예쁘지 않은 여자 아닌 여자다.
태국에는 많은 게이들이 살고 있다.
또한 게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관대한 편이어서
나름대로 먹고 살만한 직업들을 찾아서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이들의 최고 직업이란 내가 본 [SIMON SHOW] 같은
게이쇼에 출연하는 배우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 내가 본 쇼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게이중에서도 선발된 사람일테고
그러니 미모(?)로는 많은 게이들 중에서는 앞서 있는 게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 예쁘거나 아름다와 보이진 않는다.
화장만 진하게 했고 조명의 덕을 많이 받았을 뿐이지
아직은 넓은 어깨와 변성되지 않은
굵은 목소리는 사람의 기분을 그리 밝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제일 뿐이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조금 붐비는 거리에 내렸다.
아마 카론비치하고 카타비치 사이쯤 되는 곳 같은데 제법 관광지 같은 분위기다.
길거리 구경도 하고 이것 저것 상점을 기웃거리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하누가
1998년. 당시 나이 35세.
'여행 속에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7 일본(동경) - 혼네 속의 개선행진곡 (2) (0) | 2024.06.26 |
---|---|
1997 일본(동경) - 혼네 속의 개선행진곡 (1) (0) | 2024.06.26 |
1998 태국 - 씁쓸한 미소의 나라 (4-끝) (0) | 2024.06.26 |
1998 태국 - 씁쓸한 미소의 나라 (3) (0) | 2024.06.26 |
1998 태국 - 씁쓸한 미소의 나라 (1) (0) | 2024.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