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증거

아하누가 2024. 6. 26. 00:11


 

 

아침에 출근하고 막 일과를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도

고대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고대리는 일명 고도리라고도 불리우는 동료로

그리 나쁜 업무나 성격의 문제는 없었지만
화투치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단점이 있던 사람이다.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아마도 어제 또 늦은 밤까지 화투판에 끼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부장님 눈초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뭔가 벼락이라도 칠 것만 같은 아침이다.

10시가 넘어서야 고대리가 출근했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것으로 보아 또 밤새 화투판에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곧 부장님께 호출되어 갔고 고대리는 곧 부장님 책상앞에서
호되게 야단맞는 일만 남아 있었다.

 

 

 “이봐, 고대리....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뭐야! 엉?

  또 밤새 화투판에 있었나?”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고대리는 부장님의 호통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큰 소리로 변명을 하고 있었다.
고대리는 끝까지 개인적인 일이어서 지각은 잘못한 일이지만
화투만큼은 손에 만지지도 않았다며
자꾸만 자신을 화투만 하는 사람을 보지 말라며

눈물섞인 호소로 우기고 있었다.
부장님은 조금 심했다는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뚜렷한 물적 증거가 없었기 때문인지 대충 잔소리를 끝냈다.

하지만 나는 고대리가 말과는 다르게

분명 화투 때문에 늦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고자질을 할만한 성질의 것도 아니었고

해봐야 분위기만 시끄러워지는 일이어서 그냥 참기로 했지만

아마도 몇번은 이런 일을 반복하게 될 것 같은
좋지 않은 느낌만 자꾸 들 뿐이었다.

 

 

 

                 *          *          *

 

 

 

아니나 다를까. 고대리는 불과 몇시간을 넘기지도 못하고
간밤에 밤늦게까지 화투판에 있던 사실이 드러나
또 한번 사무실 분위기는 잔뜩 저기압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대리가 자기 입으로만 아무말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심증이 가더라도
확신은 없었을텐데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사실을 부장님이 알게 되었을까?

 

 

잠시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다가 나는 또 다른 동료인
박대리를 통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알게 되고는

혀를 끌끌 차게 되었다.
그러게 세상엔 비밀이 없는 모양이다.
같은 자리에 있던 박대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까 점심식사하러 부장님하고 과장님하고 같이 식당에 갔거든.
물론 고대리도 있었지. 아침에 큰소리 친 사실이 좀 미안했는지
부장님이 같이 점심식사하자고 했던가봐.
근데 식당에서 고대리 이 친구 자리가 숟가락통이 있는 곳이어서
고대리가 숟가락을 나누어 주는데

숟가락을 한명씩 순식간에 순서대로 나누어 주고는
그 다음엔 젓가락을 나누어 주는데....”

 

 

박대리는 잠시 숨을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이 친구가 젓가락을 한짝씩 돌린게 아니라 한개씩 죽~ 돌리고는
그 다음 젓가락을 왼손에 잔뜩 쥐고 또 한번 죽~ 돌리는거야.
그것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사람이 한개씩 정확하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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