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렇게 된다면 우선 제일 하고 싶은 일이 토크 프로그램 같은데 출연하는 일이다.
아마도 진행자는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 였느냐?’고 물으며
힘들고 슬픈 표정을 억지로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난 너무도 덤덤하게 남들과 그리 다를 것 없이 살아왔다고 말할 것이다.
슬프고 힘든 일이야 있었지만 남들도 다 겪는 일일뿐이었다고 말이다.
지난번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떤 최정상급 가수는
연예계 생활중 가장 힘든 일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포장마차 같은데서도 술먹고 또 그러다가 화장실이 멀면
근방 골목길에 그냥 ‘실례’를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얼핏 생각하면 측은하기도 했지만 그게 제일 하고 싶은 일이라니
정말 소가 웃다가 자빠져서 뇌진탕이 걸리고도 남을 일이다.
나는 가끔씩 연예인이 되고 싶다.
내가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그런 질문에
좋은 음악, 좋은 연기를 계속 보여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할텐데.....
2.
언젠가 인기 정상의 탈렌트 C모양이 CF촬영 한번에 2~3억씩 받으면서
나름대로 그것이 절대 쉬운일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쉬운 일이야 아니지. 그 자리까지 서려고 얼마나 고생했겄냐.
허나! 방송에 나와서 그럼 안되지.
그래서 난 가끔 연예인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수억원씩 받는 CF에 출연하고 싶다.
남이 물어보면 무척 쪽팔리는 얼굴로
‘너무 많이 받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련다.
혹시라도 좋은 일에 쓰겠다고 말하면 나중에 배아플지 모르니까
그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더라도 굉장히 미안한 표정이라도 지을 거다.
하긴... 대한민국의 근로자들을 생각하면 정말 미안할 것 같다.
3.
연예인이 된다면 가수가 되야겠다.
물론 솔로 가수지만 이름은 그룹이름 같이 짓는다.
예를 들면 ‘UNR’이라던가 ‘DDT’, ‘나날이 자라는 생각없는 나무’ 또는
‘노래를 참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무슨 그룹 같지만 혼자다.
그리고 혼자라는데 어쩔거냐. 일단 개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개성이 통하려면 노래를 엄청 잘해야 한다.
아니 노래를 엄청 잘하기보다는 못하더라도 생음악으로 노래하련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예계의 ‘또라이’가 되겠다.
누가 인터뷰라도 하면 엄청나게 잘난척하려 한다.
다리를 달달 떨면서 가소로운듯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아무개? 흥! 판틀어 놓고 입만 벙긋거리는 시키들이 가수야?’
또는 ‘아무개? 아예 일본말까지 번역해서
가사 붙이지, 왜 곡만 베끼남?’라고 말할 거다.
4.
그리고 그 긴 기행은 계속된다. 토크 프로그램에 나가서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어이구, 이 아까운 시간에 나같은 연예인 나오라고 해서 시시콜콜한 얘기만
주절주절 늘어놔도 방속국 욕 안먹어요?’
‘아~ 이런 얘기만 해야지 광고들이 팍팍 몰려온다구요? 사장놈이 그러던가요?’
‘하긴 ... 뭐 그놈이 그놈이죠’
‘앞으로 쓰잘떼기 없는 연예인 놈들은 부르지 맙시다!’
오락프로그램에 나가면 이렇게 말한다.
‘대본대로 읽으려니 쪽 팔리네요’
‘억지로 짜맞추지 맙시다! 시청자들도 이젠 다 안다구’
‘미리 연습했으면서 마치 무리한 부탁처럼 시키더라’
‘야! 그거 이제 고만하자! 유치하더라’
* *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정말 쓸데없는 연예인이 많다.
그리고 쓸데없는 프로그램도 엄청 많다.
그래서 난 가끔씩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하누가
그 당시 나는 무엇에 저렇게 배알이 꼴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