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몸에 열이 있어 아프다며 끙끙대던 큰아들 후연이가
결국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이 특유의 아픈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 명분은 집에 있으면서 컴퓨터 게임이라든가 또는
기타 오락을 금지당하는 핸디캡으로도 작용하여 불편할 만도 했지만
후연이는 합법적인 근거로 학교에 한번 빠진다는 사실에
그 정도 핸디캡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일단 즐거워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후연이의 얼굴엔 하루 종일 지루했던 기색이 역력하다.
“일기 쓰고 자야지?”
하루 종일 학교 및 학습과 관련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후연이는 단 한번의 투덜거림도 없이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 써요?”
언제나 일기 쓸 때면 그랬듯 내게 묻는다.
“오늘 아팠으니까 아팠던 얘기 써야지.”
“네.....”
후연이는 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할말이 많은 듯
연필을 입으로 빨며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줄줄 잘도 써내려갔다.
다 쓴 일기를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아팠다, 지루했다, 아프지 말아야지’의 구조로 이루어진,
매우 정통적인 일기였다.
그런데 그 일기 중 제법 재미있는 대목이 보였다.
‘.......얼마나 아팠느냐면 열이 3%나 되었다.......’
이 대목이다.
처음에는 단위를 나타내는 %를 숫자 8로 인식하여
열이 38도까지 올라갔다는 뜻으로 해석했으나 일기장에 쓰여진 문자의 모습은
아라비아 숫자 8로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문자였다.
“후연아, 이게 무슨 뜻이니?”
“아버지는 퍼센트도 몰라요?”
“.......?”
이 녀석은 어디선가 퍼센트라는 말과 %라는 기호를 배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단지 그 말을 주워듣고 기억만 했을 뿐이지
아직 구구단 7단을 못 외우는 녀석이
백분율의 오묘한 개념을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인체의 체온은 소수점으로 작용하니
백분율을 적용시키기에 더욱 어려운 일이다.
“퍼센트가 뭔데?”
“아휴~ 그러니까 열이 많이 올랐다는 뜻이잖아요.”
녀석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내가 녀석보다 훨씬 많이 살았지만
아직까지 체온을 퍼센트로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자세히 설명하려다 아직 초등학교 2학년에게
너무 어려운 설명 같아 이내 중단했다.
나중에 조금 더 크면 백분율이라는 걸 알 테지.
그러나 잠시 후 열이 3% 올랐다는 표현을 다시 한번 생각하니
그게 참 재미있는 수치다.
사람의 체온을 대략 36.5도라고 치면
이에 대한 3% 증가한 체온은 37.6도 정도.
그렇다면 대략 어린 아이가 아픈 체온과 흡사해진다.
아, 그렇다면 과연 후연이는
이러한 오묘한 백분율의 세계를 이미 파악하고
자신의 체온을 퍼센트로 표현한 것일까?
어느새 이런 사실을 알았을까?
아이들은 부모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급격히 성장한다는데
내 아들 후연이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일까?
“후연아, 근데 너 퍼센트가 뭔지 아니?”
“아휴~ 아버지는 그것도 몰라요?”
“뭔지 말해봐.”
그러자 후연이는 매우 흥분한 목소리로 퍼센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동그라미 그리고 옆으로 선 긋고 다시 동그라미 그리고....”
“아니, 퍼센트가 어떻게 쓰이는지 말해보라니까?”
“아휴, 그러니까, 동그라미 그리고 옆으로 선 긋고 다시 동그라미 그리고....”
“.......!”
아직 후연이는 백분율을 모른다.
다만 퍼센트라 불리는 기호를 알았을 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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