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남자들이 사는 집

아하누가 2024. 6. 25. 00:14


 

사내아이만 두 녀석을 키우니 집안엔 항상 남자만 득실대는 것 같다.
여기저기를 살펴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 남자들만의 장난감뿐이고,
TV시청 프로그램도 다분히 남성 취향이며

만화책 또한 싸우고 까부수는 얘기들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사내아이들이 자라는 자연스러운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문제는 집안에 남자가 많다보니

아이들에게 있어 아빠이자 남자로서의 선배인
내 할 일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경우가 아이들이 기저귀를 뗄 무렵
화장실에서 오줌 싸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는 임무다.

 

 

“아이들 오줌 누는 것 좀 알려줘요”

 

 

큰 녀석이 기저귀를 뗄 무렵 아내가 내게 말을 건넸다.

 

 

“그거 그냥 당신이 하지.”

 

 

그러자 아내는 외양간의 황소가

조류독감에 걸려 골골대는 닭을 쳐다보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문장을 찾아낸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뀌며 회심의 응답을 날렸다.

 

 

“나중에 애들이 앉아서 오줌 싸면 어쩌려구?”
“....!”

 

 

마치 고전문학에나 나올 듯한 수도승들의 짤막한 선문답 같은 얘기가 오간 뒤
큰 녀석을 데리고 화장실로 데려가

실제 시범과 어우러진 현장 교육을 해야 했다.
아내의 이러한 대응은 그동안 아내가 대화에 사용한 문장 중에
신체적 특징을 정확히 구별하여 대화에 응용시킨

몇 안 되는 중요한 문장이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작은 녀석도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제 형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한 배설교육 과정을 통해 작은 배설 및 그에 따른 뒤처리 수업을 받았다.
다만 작은 녀석은 큰 녀석에 비해 호기심이 많고 수줍음도 현격히 부족하여
강의를 하는 진지한 수업 중에도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질문을 자주 던지곤 했다.
교육의 현장에서 항상 등장하는 녀석의 대표적인 질문은 이러했다.

 

 

“아빠 고추 대빵 크다!”

 

 

그럴 때마다 나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너만 그렇게 얘기 해!”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오줌 쌀 때마다 계속 그 말을 했고
나도 나름대로 그 황당한 질문에 면역이 생겨
밥을 많이 먹고 잠을 잘 자야 고추가 커진다는,
비교적 교과서적이면서 학구적인 대답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녀석은 나와 함께 오줌 싸는 게 재미가 들렸는지
이미 교육생의 수준은 넘어섰으면서도
자기가 오줌 마려울 때면 항상 내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서로 변기 앞에 비스듬히 서서 오줌을 싸면 오줌 줄기가 엇갈리게 되고,
녀석은 항상 그것을 보며 X자 모양이라며 즐거워했다.
따라서 아이들 오줌 한번 잘 싸게 하려고

평소에 오줌 마려울 때도 꾹 참았다가
나중에 녀석이 필요할 때 동반하여

X자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 일조해야만 했다.

 

 

하지만 오줌 싸는 일은 똥 누이는 일에 비하면 매우 간단한 일이다.
그거야 말로 달리 시범 보이는 방법도 없고

특별히 가르칠 일도 없는 본능적인 일이라
정상적인 교육은 별로 의미가 없으며 또한 가르치기도 힘들다.
다만 녀석들이 자꾸 안 싸려고 하기에 ‘잘 싸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는
오묘한 인생철학을 심어줘야만 했다.
그래서 녀석이 변기에 꽤 큰 덩어리를 남겨두는 날이면

그때마다 ‘왕똥’을 잘 쌌다며 호들갑을 떨며 칭찬을 해주었다.
변기 남겨진 똥을 보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녀석들은 제법 똥 싸는 일에도 재미가 들었는지,
아니면 ‘왕똥’이란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화장실 가는 일을 나름대로 즐거워했다.
다만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던 이러한 배설 교육에 문제가 생긴 것은
두 녀석이 서로 경쟁이 붙어

서로 더 큰 왕똥을 싸겠다며 마려운 똥을 참는 바람에
교육 효과가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사실 뿐이다.

 

 

 

 * * *

 

 

 

아내가 핸드폰을 새로 구입했다. 카메라가 달린 신형 제품이다.
전화기에 카메라가 있고 사진 찍을 때마다 재미있는 소리가 나니
핸드폰은 핸드폰으로서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고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자리 잡았다.
두 녀석이 번갈아 가며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어 대는지,
내가 처음 디지털 카메라 사고 필름 값이 들지 않는다며 신이 나서 찍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집착과 끈기로 사진을 찍어 댔다.
책, TV, 장난감, 주방, 그릇....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찍어댔다.

 

그 노력과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신비로운 개척정신에 계속 감동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녀석들이 모두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있다.
바지를 내리고 서로 배를 앞으로 쑥 내미는 자세로
서로의 고추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주고 있다.
그것도 잠시. 어라? 이 녀석들 보게?
조금 있으니 이번엔 뒤로 돌아 서로 엉덩이를 찍어준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남자들이 사는 집에는 이런 일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내는 점점 공주가 되어간다.

이게 다 업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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