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동업자 구함

아하누가 2024. 6. 23. 00:02


간밤엔 신종사업에 대한 구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다.

난데없이 신종사업을 구상하게 된 데에는 떼돈을 벌겠다던가 또는
어느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교과서적인 의식의 발로가 아니라
그저 이런 거 하면 잘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상상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번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다.

 

 

예전에 사무실에서 어느 여행사의 일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껄끄럽게 여겨지던 일 하나가 여행자 가방에 달아주는,
이름표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름표 만드는 일이 뭐가 어렵겠냐만

이름표를 만드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이름표를 납품할 때 이름을 적는 표와 가방에 매다는 끈을 하나하나 끼워
납품해야 한다는 부분이 어렵게 만들었다.
여행가방에 표시하는 이름표의 끈을

기계가 자동으로 척척 끼워줄 수는 없었고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끼워 넣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귀찮고 힘든 일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한번에 몇만개를 납품하는 것은 아니었고

주문이 올 때마다 몇백개 혹은 천여개씩
납품하면 되는 것이어서 그때 그때 작업을 하면 되었고,
또한 그것은 손이 많이 가는 수공작업이어서

의외로 납품 단가가 제법 많이 나가는 일명 '효자' 품목이었다. 그

래서 사무실 직원들은 때가 되면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름표 끈을 끼우는 가내수공업을 하곤 했다.

바로 이 때 느낀 점은 무언가 하면서 둘러앉아 얘기를 하니

분위기가 무척 좋더라는 사실이었다.

특히 단순 반복 작업일 경우에는 그 분위기가 더욱 좋아
대화도 술술 잘되고 웃음이 끊이질 않으니

이 또한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좋은 분위기가 연출되더라는 것이다.
그 작업을 사무실 직원들은 일명 '도라지 까기'라 하여

귀찮은 듯한 그 일들은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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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설명> 도라지 까기란?

예전에 우리 어머님들이 가내 부업으로 하시던 일중에 도라지를 받아와
집안에서 부지런히 껍질을 벗기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은 이후 구슬 끼우기, 인형 눈박기, 마늘까기 등의 부업으로 다양해졌으며
공통점으로는 오로지 눈과 손만 사용하는 단순한 작업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라지까는 작업이라 함은 엉덩이를 최대한 무겁게 하여 바닥에 붙이고
인내와 집요함으로 일을 마치는 단순반복 작업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혼자 하기도 하지만 주로 동네 아줌마 몇 명이 모여 라디오를 틀어놓고(이때 방송은
AM라디오의 싱글벙글쑈 정도가 제격이다)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때의 대화 분위기가 이후 방송으로 발전되어 요즘의 TV에서 흔히 보는,
할 일 없는 연예인 여럿 나와 수다로 한시간 때워버리는 방송의 시발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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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부분이 내가 구상한 새로운 사업의 모체요 핵심이다.
지금부터 새로운 사업의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한다.

 

 

우선 까페를 차린다.

까페이름은 가칭 <도라지 까페>라 칭한다.
그리고 널직한 테이블엔 일거리들이 잔뜩 놓아 둔다.
구슬 끼우기, 인형 눈 박기 등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일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손님이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고

일행과 얘기를 할 때 그냥 마주 앉아 있기 심심하니
도라지를 까며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커피값에 해당하는 만큼의 도라지를 까면

당연히 커피값은 받지 않는다.
조금 비싼 팥빙수나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사람은
커피를 주문한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은 분량을 소화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면 대화도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지며

좋지 않은 일로 만난 사람들도 자연스레 화해하게 된다.

또한 선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있으면 그 효과는 더욱 좋아

상대의 인내력 및 집중력을
관찰할 수도 있고 커피값도 절약할 수 있으며
좋은 분위기에서 술술 풀리는 대화는 첫 만남에서부터

친근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굳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이유도 얘기를 하며
무언가 손을 움직여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하고 대화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세미나나 강연에 가면 조는 사람도 많이 나오지 않은가.

일거리는 어디선가 단순반복 작업의 일로 받아오면 되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그냥 커피값 내고 나가면 되고,

혹시 모를 전문가를 경계하기 위해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자 해도 커피값에 해당하는 일만 하게끔 하면 된다.
그러면 이 까페는 좋은 분위기로 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장소로
분명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런 뛰어난 계획을 세웠으니 일단 동업자부터 찾아봐야겠다.

어디 좋은 동업자 없을까?

 

 

 

***

 

 

 

이런 사업계획이나 구상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