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남자가 여자에게 안기고 싶을 때

아하누가 2024. 6. 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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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느 여성포탈사이트의 의뢰를 받아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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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들은 몇번의 백수시절을 보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들이 더 허영심이 많고 겉멋을 강조하는 것 같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실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남자들에게 있어 허영심과 체면은 몹시도 중요한 일이어서

왠만한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저 백수로 남으면서 자신의 가치가 무척이나 높은 줄 착각하며 산다.

주로 군대가기 전이나 또는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기 전 등의 기간이

백수 시절을 맞는 대부분의 시간들이며

물론 이중에는 그것이 조금 지나쳐 백수가 평생 직장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 시기는 일반적 생활에 있어서

자금의 조달 및 유통 능력이 몹시 취약한 시기여서
돈에 대한 욕구와 원망이 한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백수시절을 보내던 어느날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후배가 이상한 제안을 했다.

 

“형 우리 말이야, 사람들 많은데서 돈 없다는 말 하면 쪽팔리잖아.
그러니 이렇게 얘기하자구”

 

 

그 후배의 제안은 참으로 깜찍하다 못해 앙증스러운 것으로,
남들이 들을만한 장소에서는

가지고 있는 돈을 100배로 튀겨서 말하자는 제안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 주머니에 2천원이 있으면 20만원으로,
5백40원이 있으며 5만 4천원으로 말하자는 것이었다.
얼핏 몹시 부질없고 쓸모 없는 제안이라 생각했지만 가만히 생각하고 나니
현실적 상황에 있어 체면과 사회적 지위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몹시도 적절한 제안이라는 수긍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연습도 했다.

 

 

“형, 지금 얼마 있어?”
“응, 나? 한 60만원 정도?”
“에이 별로 없구나?”

 

 

이 규칙의 절묘함은

지하철이라던가 또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적절히 활용되어
적어도 남들이 듣는데서는 꽤나 있는 집 자식 처럼 행동하는
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강한 자신감은 괴로운 백수생활을 견딜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으며 또한 향후 경제사회로 진출함에 있어
돈의 위력과 가치가 주는 많은 의미를 알게 해주는 매우 교훈적인 것이라
애써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이 녀석과 나는

우리끼리 사용하는 암호에 몇가지 다양성을 추가하여
‘시간 = 돈’으로 자동 환산하는 자동암호전환 방식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형, 오늘 영화나 한편 볼까?’라는 질문에 ‘아니, 시간 없어’ 라고 대답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이었다.


정말 시간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겠냐는 의문도 나왔지만

백수들이 시간이 없다는 것은
백수의 길을 떠나겠다는 나약한 의지를 보이는 것 밖에는 안되므로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그 경우에는
‘시간 = 타임’이라는 치밀한 암호로 이를 극복하기로 했다.

 

‘응.... 어쩌냐, 나 타임이 없는데’

 

 

저 말 한마디면 모든 상황이 가늠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로 했던 그 암호는 아쉽게도

한번도 써본 일이 없었다.

 

 

 

그 무렵 동네 친구들로부터 미팅을 하자는 제안이 왔다.
어디어디에 산다는 삼삼하고 잘 빠진 여자들이라는 장황한 설명과 함께.
백수로 지내는 날 중에 가끔씩 색다른 일이 생긴다는 반가움과

‘여자’라는 새 문화와의 만남이 야릇한 설레임으로 바짝 다가왔지만
그 후배와 나는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단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해 못할 표정으로 돌아서 가던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체면이라는 것이
몹시도 중요한 삶의 배경이었던 그 상황에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남자는 돈이 있을 땐 여자를 안아주고 싶겠지만

돈이 없을 땐 여자에게 안기고 싶다는.

 

 

 

2.
군복무 시절,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휴가를 나왔던 때니까 꽤 오래전 이야기다.
당시 첫 휴가를 기다리던 나는

길고 긴 시간 동안 휴가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돈 없고 빽 없어 정상적으로
군대생활을 해야 했던 모든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군대의 환경은 잔인하게도

그 기다림을 행복으로 여길 수 없게 만들었고
따라서 휴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하루하루 또한

길고 긴 암흑의 터널저럼 잔인하게도 더디게만 흘러갔다.

얼마나 휴가를 기다렸으면 불과 10일을 남기고는

심한 오한으로 실신 상태에 이르렀으니
그 기다림이 가지는 잔인함이야말로

그 어떤 괴로움과 고통에 비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 잔인함도 시간의 흐름에는 어떤 방법도 없었던지
휴가날짜는 결국 오고야 말았으며

꿈에도 그리던 서울 땅을 밟게 되었다.
내가 살던 홍제동 지하철역에 내려

자주 가던 사거리에 이르렀을 무렵 나는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엉뚱한, 그리나 그 상황에선 너무도 적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군에 가기전에 모든 생활이 이루어 졌으며

또한 군대에서 그토록 오고 싶어하던 땅에
지금 서 있으니 누군가 아는 사람이 반드시 스쳐 지나갈 것이고,
그토록 기다리던 만남이니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힘껏 끌어 안아 주겠다는 다부진 각오였다.

그 각오는 전쟁에서 이기고야 말겠다는 군바리적 정신력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었으며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운동 선수들의 결심 또한
비교할 것이 못 되는,

한마디로 처절과 비장으로 똘똘 뭉쳐진 다부진 결의였다.

내 생활의 80%가 넘게 차지하던 홍은동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한 선배를 만났다.


동네 선배인 그는 어른들이 귀엽다는 인상으로 표현하곤 했으나

그건 단순히 그 사람의 미래를 생각한 예의 차원에서의 평가였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보기에 그의 외모는 한사람의,

아니 한마리의 산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홍은동 사거리가 아마 인왕산 중턱이었다면 그는 영락없는 산적이었을 것이고

통통배를 타던중에 만난 다른 뱃사람이었다면
그는 영락없는 해적이었을 것이다.


하늘의 선택이란 참으로 무심하기 마련이어서

혼자 긴 시간을 여행하게 되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탈 때 언제나 내 옆 자리엔 늘씬하고 아름다운 아가씨 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보내주셨다.

거기까지만 해도 나는
여행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 한다는

신의 배려로 이해했거나
또는 이 기회에 경로사상에 대해 몸소 실천해보라는 고귀한 뜻으로
애써 받아들이고 있었다.


혹은 한 일도 없이 뭘 바라냐는,

일종의 자업자득 또는 인과응보에 대한 교훈을
가르켜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때의 일이고 지금의 이 경우는
분명 누군가 아름다운 여인을 안아줄 수도 있는

당연한 환경이이라고 생각했건만
실제 상황은 아쉽게도 산적같은 선배 한 사람이 눈앞에 서있을 뿐이었다.

나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짓는 선배를 보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나는 조금 전의 결의를 두번째의 사람부터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정치적 의도가 짙은 잔머리를 굴려보았지만

휴가의 기쁨과 즐거움이 어째 퇴색될 것만 같은 찜찜한 생각이 들어
예정했던 대로, 굳게 다짐했던 대로 산적같은 선배를 힘껏 끌어 안았다.
나의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는 한술 더 떠서 그 커다란 덩치로 나를 힘껏 들어 올렸으며

그것도 아쉬웠는지 볼에 뽀뽀까지 하고 말았다.
정말 기분이 더럽게 나쁜 날이었다.

하늘을 원망해봐야 해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 애써 참기로 하는 동시에
무리한 다짐은 잔인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일견 평범한 진리를 교훈으로 남기기로 하며
상한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그전에 다짐하던 내용중 ‘남녀노소 신분고하’라는 단서는
몹시도 정직하지 못한 단서였음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앞으로는 안아줘야 하는 당사자에 대한 규정도

‘처음 만나는 여자’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결의를 다졌다.

정말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내 스스로의 반가움에 대한 표현을 하고 싶을 때는

여자를 안아주고 싶지만
내 반가움에 대한 희열을 느끼게 해주고 싶을 때

남자들은 여자에게 안기고 싶다.

 

 

 

3.
세월은 몹시도 흘러 어느덧 나이 30대 중반. 사무실에서 커다란 일을 마치고
모두들 외국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을 떠남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장 어려운 일은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이유도 아니었다.
다만 가족 동반도 아닌 남자들끼리의 여행이라 각자 집에다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 오는 일이 가장 커다란 난관이었다.
저마다들 각자의 가정에서 통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고 그 방법은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재주껏 완수하자는,
무시무시하고도 다분히 군사문화적인 발상이 유일한 해결방안이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살피다 문득 나는

단순무식이 반복되는 장기전이 내 가정 환경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했고 제법 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밤에 잠을 잘 때마다 아내가 들을 만한 정도의 소리로
여행을 노래 부르듯 외쳤다.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옆에 있는 아내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성질을 버럭 내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은 의미가 담긴 콧방귀를 뀌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왕 벌인 일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다는 강한 의지와
다른 직원들과의 묘한 경쟁 심리가 전의를 불태우게 되어
나는 밤마다 헛소리하는 환자처럼 ‘여행’을 노래 불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기간중에 심한 고열을 동반한 몸살을 앓게 되는 일이 있어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신음에 가까운 노래를 전율이 가도록 불러댔다.

자신의 신체적 극한 상황을

국면의 유리함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나의 잔머리에
스스로도 감동했으며

그 감동으로 인해 감기 몸살이 혹시라도 씻은 듯이 나을까봐
아픈 것을 아픈 상태로 지킬 줄 아는 자제력에

또 한번 스스로 감동하기도 했었다.
며칠 뒤 아내는 내게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남겼다.

 

 

“하고 싶은 것 못 하면 병 된데...”

 

 

나는 그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병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일을 하고 싶어야 하며 또 하나는
그 일을 위한 노력 또한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곤 생각한다.
남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여자는 안아주고 싶지만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에겐 안기고 싶다고.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