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야설

아하누가 2024. 6. 20. 00:18


      
      
       얼마 전 친구 한 녀석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친한 친구라 주변 눈치볼 것도 없이 성큼성큼 들어와 한자리 차지하고 앉는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녀석답지 않게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참이나 참고 있었던 듯한 말문을 연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녀석의 얘기는 이렇다. 
      
       녀석은 성경험과 관련된 진솔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트에 가입했다고 한다.
       일단 거기까지 얘기를 들은 나는 조금의 틈도 없이 대꾸했다.
 
            "주소 불러!" 
        


       녀석이 불러준 주소로 간 뒤 로그인을 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비교적 민망스러운 듯한 내용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과감성, 도덕적 관념을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파격성 등 흥미로운 '거리'들이 나타났다.
       물론 그 중에는 보기에도 민망스러운 얘기들도 있었고
       나름대로 격식을 차리고자 한 얘기들도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런 곳을 가르쳐 주다니 너는 정말 좋은
       친구야....'라는 말을 하려는데 그 보다 녀석은 먼저 한 술 더 뜬다.   
       


       "저기 말이야......" 
       ".........!" 
         


       녀석의 얘기인 즉, 그 사이트에서 정회원이 되려면
       경험담을 잘 써서 올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왕 쓰는 거 잘 써보려고 그나마 주변에서
       반성문을 제일 많이 써봤다는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쁜 시키.
       그래서 무슨 내용을 어떻게 쓰냐 물으니 대충 알아서 쓰란다.
       이왕이면 자극적이고 충동적이며 원초적인 내용으로 분위기를
       잡아 달라는 부탁도 아울러 했다. 원초적이며 자극적이라?       
       말은 쉽다만 아쉽게도 그런 글은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생각 한가지는 그나마 내가 쓰는 게
       그 친구가 쓰는 것보다는 조금 나을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냥 대충 쓰면 돼?" 
       "그럼!"  
 


       녀석은 나이는 나랑 동갑이지만 아직 총각이다.
       그러니 뭔 얘기를 쓰던 뭔 얘기를 지어서 떠들던
       구속받을 가정도 마누라도 없으니 못할 일도 없다.              
       나 역시 뻐젓이 내 이름 걸고 쓰는 얘기도 아닌데 뭐가 두려우랴.
       좋아, 그래. 화끈하게 써주지 음하하하하.  
       


       나름대로 남들이 쓴 글들을 정밀 분석하고 장점과 단점을 가린 후
       주요 대목에 들어가는 상투적 표현 몇 가지와

       표현 가능한 적정수위를 관찰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방식을 탈피하고
       이미 인기작가 반열에 오른 사람들과는 다른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또한 독자적인 노선을 정립하되 야한 정도는 매우 짙게,
       추한 정도는 매우 엷게 내용을 다듬어 조금 더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야설 문화의 개척이라는 컨셉을 잡았다.
       그리고 대충 한편을 써 내려갔다.
 
       사이트와 글의 특성상 남녀의 은밀한 신체부위의 생물학적 명칭은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사용하여 과감성을 강조했고,
       스토리의 연결중 인륜과 도덕에 대한 비난이 있을 만한 부분은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의 결론은 항상 교훈적이며 권선징악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상대적인 대상자인 여성인구의 반감을 줄이고
       자라나는 청소년이 혹시 보더라도

       매우 교훈적인 이미지를 담으려 했다.
       여관에서 사용하는 화장지도 아끼려고 했다는 내용으로
       물자절약의 교훈을 남기려 했던 것이 그 좋은 사례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을 프린터 하여 천천히 훑어본 친구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으며 녀석의 오케이 사인과 동시에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갔으며
       이로서 우리나라 야설 문화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만의 애교 넘치는 생각인 줄 알았는데
       불행히도, 매우 불행히도 게시판에 올라간 그 글은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며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후속편을 기다리게 되는 끔찍한 상황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나는 후속편을 쓰라는 친구의 압력과 권유를 피해

       항상 긴장한 채 하루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     *     *
 


       하지만 오늘도 나는 야설을 썼다. 벌써 다섯 번째 얘기다.
       그동안 집요하게 쫓아다닌 녀석의 열의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지겨운 생활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만
       친구라는 게 그리고 우정이라는 게 그것도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늘 다섯 번째 글을 쓰며 느낀 건데 내가 참으로 그 일에
       소질이 있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봐도 자극적이며 또한 추하지 않은 사실의 묘사가
       거의 예술이다.

       여기서 나는 외설과 예술이 가지는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느끼며,
       그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데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이 자리에 그 망측하고도 또한 화려한 얘기를 옮겼으면 좋겠다만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치명적 흠집을 남기게 될 까봐
       옮기지는 못하고 다만 난 아무래도 이쪽이 아니라
       그쪽이 더 체질에 맞는 모양이다. 이 일을 어쩜 좋으냐.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하며 낄낄 웃고 있으니 녀석은
       아주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간다.  
 


       "응...안 그래도 운영자가 내 게시판 따로 만들어 준다네?
         너 앞으로 고생하겠다....." 
       ".....?" 
 


             *     *     *

 

 

 

       야한 것을 추하지 않게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고 또한 힘든 일이다.
       성과 관련된 문제야 우리네 삶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니
       대화 자체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없다.
       차라리 그런 주제로 얘기를 함에 있어 추하지 않음이 훨씬 중요하다.
       둘 사이에 있었으면 그저 아름다울 얘기가 남의 귀로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부터 모든 아름다움은 추함으로 변질된다.
       그러니 야한 것을 추하지 않게 말하는 것은 어렵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어렵게 생각되는 그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하는 사람이든 듣는 사람이든

       건전하고 건강한 성문제를 운운할 상황은 아니다.
       지금은 건전하고 아니고 보다 추하고 추하지 않고를 가늠하는게
       우선되어야 할 게다.
       설령 내가 썼던 그 야설들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추하지 않게
       느껴졌다면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해야겠다.  
       


       더 이상 성을 다루는 시선이 호기심과 탐욕의 대상이
       아니었으면 하는, 평소의 나답지 않은 근엄한 생각을 해본다.
       역시 공개적으로 쓰는 글은 정치적인 부분이 많다. 
 
 

 

 

 


       덧말 :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사이트 주소는 말할 수 없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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