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잔다는 것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어서
잠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정신이 멀쩡한 시간에 그런 얘기를 하거나 들으면
얼핏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잠이 쏟아지는 늦은 밤 무렵이나
또는 잠에서 깨어야 할 아침 무렵이면 잠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잔인한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듯 잠이라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욕망의 연속이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그 욕망을 채우기에는
너무도 열악해진 주변환경을 깨닫게 된다.
잠이란 것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에 따라 다르지만 주변환경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주변이 잠자기에 적합하면 잠도 잘 오는 법이고
주변이 산만하거나 불편하면 잠자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현상을 바탕으로
수면에 영향을 주는 주변환경과의 오묘한 관계에 대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이를 실생활에 잘 적응시켜
효과적인 잠의 활용법에 대한 방안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수면연구 사상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대단한 연구였다.
그런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 * *
군에 있을 때 이상한 보직에 있었다.
경비중대였는데 하루종일 보초만 서는 게 일이었다.
밤이나 낮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초소에 나가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가야 했고 한번 나가면 최소한 두시간은
산 속 깊은 곳에 있어야 했다.
두시간 동안 할 일중에 가장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일은
잠을 자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자야하는데 문제는 지나치게 많이 자다가
그 다음 교대자의 눈에 띄고, 그 교대자가 상급자라면
자다가 봉창두드리게 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신이 몹시 고통스러워지는 생기게 된다.
이러한 주변 상황으로 인해 나는 주변 환경을 약간씩 적응하여
잠자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조절한다는, 신체적 본능의
의도적 조절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철모를 바닥에 놓고 둥그런 부분에 앉아서 자면
30분 정도 잘 수 있고 거꾸로 돌려 놓고
머리가 들어가는 움푹 파인 곳에 엉덩이를 쑤셔놓고 자면 1시간은
잘 수 있다. 더 자고 싶어도 다리가 저려서 못 잔다.
1시간 지나면 저절로 깨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벽에 등을 대고 기대어 자면 10분이면 무릎이 풀려
더 이상 잘 수 없게 되는데 머리를 벽에 기대고 자면
20분은 족히 잘 수 있다.
그러한 주변 상황에 따른 수면의 시간적 한계는 남은 근무시간을
고려하여 그 시간에 적합한 수면 방법을 택할 수 있게 하여
보초 교대시에 벌어지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단한 연구였다.
하지만 이에 따른 다양한 응용력과 연구자금의 부족,
그리고 수면시간 조절에 대한 사회의 인식 부족,
침대 회사의 강한 방해공작과 협박으로 아직 사회적으로
그 방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 * *
얼마전에 밤을 새워 일하고 아침 6시가 넘어 사우나에 갔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좀 쉬려는 생각으로 찾은 사우나였다.
대충 샤워를 하고 나니 휴식 공간에 발을 쭉 펼 수 있는 편안한
의자들의 눈에 띄었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고 있었다.
조용하고 불도 꺼져 있고 입구에는 <수면실>이라고 쓰여 있었으니
내가 이곳에서 잠을 자는데 이를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바쁜 일정이 있는데 무턱대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잘 수는 없는 일.
바로 이때 나는 그동안 군대에서 경험하고 또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연구한 '주변환경에 의한 수면시간 조절법(일명 한계수면법)' 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하여
이의 가능 여부를 위한 실사에 들어갔다.
의자의 구조 및 누웠을 때의 자세, 주변 소음 정도 및 조명의 조도,
계절적 특성과 실내온도 및 습도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나니
2시간 수면에 매우 적당할 것이라는 결론이 얻게 되었다.
2시간이면 괜찮다. 그 정도 쉬면 다른 일정에도 차질이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두시간 짜리 자세와 수면의식을 가지고 잠에 빠져들었는데.....
눈을 뜨니 오후 12시 30분이었다.
망했다. 망해도 쫄딱 망했다.
군에 있을 때와 지금의 나이 차이에 따르는
신체적 피로회복 시간 여부를 계산하지 않은 듯 했다.
그 후로 일정은 엉망이 되었고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들을 처리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 컨디션은 개운했다.
아무리 잠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해봐야
잠을 푹 자는 것이 좋다는 사실 보다
더 좋은 결론은 얻지 못할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조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제 아무리 대단한 연구라도
잠을 푹 자면 건강에 좋다는 사실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어쩌면 본능적 욕구를 채운다는 것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 모른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의 해소를 위해 살고 있지 않은가?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