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엔 누구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이성친구와 데이트할 때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과묵하게만 보이는 직장 상사도 가끔 우스운 얘기 하나쯤은 할 수 있어야
부하 직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유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인터넷과 방송이다.
하지만 워낙 인터넷의 발전과 파급력이 뛰어나
대부분의 유머는 인터넷을 통해 보급된다.
심지어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이 웃기는 얘기랍시고 하는 얘기는
거의 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일 확률이 높다.
이렇듯 인터넷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요 화두로 자리매김하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재미있는 이야기는
생명력을 지닌 채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인구에 회자된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유머를 하나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유인 우주선을 발사했을 시 일어나는 각계 반응>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얘기는 어느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서 시작된 것인데,
제목에서 제시한 주제에 각계의 특징에 맞는 반응을
재기 넘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정 집단을 비꼬는 얘기가 많아 아무데서나 소개할 수는 없는 것처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언급할 수 없는
각 이익집단의 속내를 통쾌하게 풍자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정작 이 유머의 기발한 발상이 돋보였던 이유는
요즘 인터넷 문화에서 새롭게 유행되고 있는 리플 문화 때문이다.
특정한 게시물에 짧은 메모를 남길 수 있는 리플라이 기능은
인터넷 문화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기지에 넘치는 많은 의견들을 한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리플이라는 특성상 앞의 의견에 제동을 걸 수도 있고
또 이에 근거하여 한술 더 뜰 수도 있으니
재치있는 발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과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위의 유머 역시 많은 사람들의 튀는 발상이 모아져
하나의 뛰어난 작품을 만들게 된 경우다.
다만 제시된 주제 자체가 너무 인위적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옥의 티다.
예전에도 이런 유머는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1년전으로 돌아가보자.
2002년 10월. 어느 대학교 사이트에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군 입대를 앞둔 회원이 훈련소에 총을 사가야 한다는 옆집 형의 말을 듣고
총을 어디서 사냐는 질문을 했다.
순식간에 게시판은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글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 질문과 대답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이 또한 인터넷 게시판의 리플 기능을 십분 활용한 유머로,
많은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뛰어난 재치를 뽐내는 글들로 이루어졌다.
인터넷의 특성을 충분히 살린 이런 유머들은
많은 사람들의 재치를 볼 수 있어 매우 신선하다.
이런 리플 문화는 어느 디지털카메라 사이트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어
‘악플’, ‘태클’, ‘감싸버전’ 등 신조어를 탄생시켰으며,
시사와 관련된 보도 사이트에서도 이러한 리플 기능은
주로 여론의 광장 역할을 하며
사이트의 특성과 참여자의 취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쌍방향의 의견 제시와 즉각 반응이라는 인터넷만의 특징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는 문화다.
당분간 재미있는 글이나 이야기들은 이런 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 * *
이러한 리플 기능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유머중
매우 완성도가 높은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미국의 Peter Anspach가 모아 정리했다는 이글 역시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완성되었다(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렇다니까 그렇다고 하는 중이다).
원제는 <내가 악의 군주가 된다면 해야 할 100가지 일 :
The top 100 things I'd do if I ever became an evil over lord>인데
여기서 말하는 악의 군주는 주로 영화에 등장하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악의 군주는 물론 악당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 드물테니
모든 이야기의 기준과 근거는 헐리우드의 액션 영화를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작성된 100가지 중 몇 가지를 발췌하여
우리 현실에 맞게 각색하여 소개한다.
<악당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행동 강령>
- 적을 죽이기 전에 곤경에 빠져있는 적을 보고 득의에 찬 미소를 짓지 말 것.
- 자신이 거처하는 기지의 환기구는 반드시 사람이 기어 다닐 수 없도록 작게 만들 것.
- 배다른 형제의 자리를 강탈했다면 배다른 형제는 으슥한 동굴 감옥에 가두지 말고 즉시 죽일 것.
-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의 병사들에게 얼굴을 가리는 보호헬멧을 쓰게 하지 말고
얼굴이 잘 보이는 강화유리를 씌울 것. (이런 재치는 참으로 대단하다. - 필자 주)
- 자신의 힘의 원천인 중요한 보물은 용이 지키고 있는 불의 강 건너
불가능의 산에 보관하지 말고 은행의 안전금고에 보관할 것.
- 적을 잡고 죽이기 전에 그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라고 물었을 때
‘몰라!’ 라고 말하고 쏴버릴 것.
아니,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일단 쏘고 난 다음 ‘몰라!’라고 말할 것.
- 영웅의 여자친구를 납치했다면 빠르고 간소한 절차로 즉시 결혼식을 올릴 것.
절대 3주에 걸친 호사스러운 결혼식은 금물.
- 적을 은밀한 성전 안에서 심문하지 말 것.
- 적에게 수수께끼로 실마리를 남기지 말 것.
- 적이 마지막 소원이나 마지막 담배를 원할 때 절대 허락하지 말 것.
- 숫자로 카운트 하는 기계는 절대 사용하지 말 것.
- 적을 죽이기 전에 ‘너를 죽이기 전에 꼭 알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라고 묻지 말 것.
- 조언을 해줄 사람을 고용했으면 그의 충고를 들을 것.
- 아들은 주로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정신착란을 일으키니 멀리 할 것.
- 딸은 당연히 아름답겠지만 대부분 적의 무뚝뚝한 외모를 보고 배신하니 또한 멀리 할 것.
- 군대의 군복은 병사들이 곧 죽을 것 같은 싸구려 모조품을 입히지 말고
뛰어난 디자이너를 고용하여 새로 디자인 할 것.
- 장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기를 쓰지 말고 버튼 하나로 작동되는 무기를 쓸 것.
- 적을 둘러싸면 한명씩 공격하지 말고 단체로 덤비라고 가르칠 것.
- 부하들에게 사격 연습을 혹독하게 시킬 것.
10미터 거리에서 사람을 맞출 수 없는 부하는 사격장 연습 표적물로 써버릴 것.
- 중요한 기계를 사용하기전 사용자 매뉴얼을 주의 깊게 읽을 것.
* * *
Peter Anspach의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재치가 모여 만들어졌다.
재치와 협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바로 리플 유머의 매력이다.
톡 쏘는 재치와 기발한 발상이 무릎을 치게 한다.
이러한 리플 유머들을 보며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아주 간단한 상식이다.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이,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방법과 작품이 나온다.
너무도 당연한 것 같지만 이렇게 간단한 상식을 몰라서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한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일부 집단들은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국민이 편안해지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는 집단의 숫자만큼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머리를 맞대면 좋은 방안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모두 한 가지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저마다 손익계산이 따로 있고 속셈이 따로 있다면
절대 좋은 작품과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가끔, 유머는 우리에게 웃음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
아하누가
내 예상대로 2013년 현재, 요즘 유머는 대부분 리플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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