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칼럼

투명인간의 허와 실

아하누가 2024. 1. 11. 16:57

자주 들리는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서 설문조사를 했었다.
설문의 내용은 ‘다음 도술중 당신이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이라는

설문으로,  유머 사이트 다운 발상이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투명인간, 축지법, 둔갑술의 세가지 도술이

보기로 나열되어 있었다.
당연히 축지법에 한 표를 던지고 결과를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투명인간이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사람의 생각이 저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실로 있을 수가 없는 엽기적 발상이며

또한 단순 효과만을 고려한 대중들의 섣부른 선택임이 분명했다.
물론 내가 선택한 것이 반드시 일등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 일등이 아니어서 흥분할 것도 없으며,
비실명 설문조사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추첨을 통해 DVD 플레이어를 상품으로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갖은 수식어를 동원하며 흥분하는 이유는

바로 그 투명인간이라는,
얼핏 생각에 멋드러진 단어가 만드는 대중들의 착각 때문이다.

 

투명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이
여자 목욕탕, 또는 남자 목욕탕에 가서

마음 편하게 구경하겠다는 발상인데

이는 참으로 딱하기 그지 없는 생각이다.

고작 투명인간이 되어서 할 게 그리 없나?
그리고 목욕탕이 아무리 좋아도 3일만 반복하면 지겨워진다.
물론 특정한 일에 집요하게 빠져 즐거움을 오래도록 누리는

일부 끈기 있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도 기껏해야 며칠뿐이며 또한 소득도 없다.
목욕탕에서 알몸 한번 봤다고 그 사람에게 결혼하자고 할건가?

또한 다른 형태나 다른 상황이 다양하게 펼져진다면 그나마 오래가겠지만
아쉽게도 목욕탕은 그런 다양함을 만족시켜줄 만한

화려한 액션은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아마도 이런 단순한 상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투명인간을 선호하는지는 모르지만
앞서 그 이유를 설명했듯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투명인간에 대해 어떤 착각을 하고 또한

그것이 왜 착각인지 속속들이, 낱낱이, 심도있게 알려주려 한다.
이 해설 이후로 이와 흡사한 설문 및 기타 퀴즈나 나왔을 때
정확한 설명이 가능한 대답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1. 부피는 존재한다

투명인간의 가장 골치 아픈 단점은 형태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부피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은 형태는 있으나 부피가 없어
문고리를 잡고 힘들게 문을 열지 않아도 문을 관통하여 실내로 들어갈 수 있지만
투명인간은 반드시 문을 열어야 실내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랑과 영혼 흉내내다가 대가리에 혹만 생긴다.
재수 없으면 피도 나오는데 투명인간이 피를 흘리면 스타일 다 구긴다.

그러니 지가 아무리 남의 눈에 안보여도

어딘가에 가고 싶으면 문을 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남들하고 몸도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지하철도 못타고 버스도 못탄다.
택시는 지붕 위에 엎드려 타고 가야 하는데 그렇게 가다간 목욕탕 가기도 전에
하늘나라부터 관광할 지 모른다. 이건 도술이 아니라 바보다.

 

 

 

 

2. 목숨건 행보

투명인간은 옷을 입지 않는다, 아니 옷을 입지 못한다.
그러니 열대야에 시달리는 한여름이나 활동이 자유롭지

평소에는 엄두도 못낸다.
여름밤에도 모기가 얼마나 괴롭힐 것이며

또한 불안해서 팔다리 뻗고 누워 낮잠이나 잘 수 있나?

뿐만 아니라 평소에 모르고 지나다녀서 그렇지
투명인간이 되어 옷을 홀라당 벗고 다니면 분명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스쳐서
남자인 경우 3일내에 고자가 될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한국 사람들의 사망원인을 조사한 어느 조사기관의 발표를 보자.

 

 

0세~9세의 사망원인 1위 교통사고.
10~19세 사망원인 1위 교통사고.
20~29세 사이의 사망원인 1위 교통사고.
30~39세 사이 사망원인 2위 교통사고.

 

 

이렇듯 교통사고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은 게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따라서 시뻘건 옷을 입고 다니거나 야광으로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다녀도
운전자의 잠깐 실수가 커다란 사고를 일으키는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놈이 어떻게 길을 걸어다니나?

커다란 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골목길을 걸어가도 지나가는 차에 낑기거나
어린이들 킥보트에 부딪혀 다리가 부러지던가 심한 찰과상을 입게 된다.
커다란 차에 치어 죽기라도 한다면 아주 비참하고 더럽게 죽는다.
어디 그뿐인가?

공사장 밑으로 지나가다 위에서 떨어지는 망치나 벽돌에 맞을 확률도
일반의 경우보다 1000배는 넘고

지나가던 차로부터 흙탕물 세례를 받을 확률도 무지막지하다.

도대체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겨우 여자, 또는 남자 목욕탕에 가겠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목욕탕 가는 일 말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좋아하는 이성친구 집에 몰래 들어가 똥 싸는 거 쳐다보거나

인터넷 유료 사이트 비밀번호 알아내는 게 고작인데
도술의 활용치고는 너무도 치졸하다.

 

돈을 벌어서 돈을 펑펑 쓰며 살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투명인간 하겠다고?
좋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순간이 무엇인가?
투명인간 상태로 맞이할 좋은 순간이 없잖은가?

많을 것 같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별로 없다.

 

 

그럼 투명인간의 특성을 이용해서 돈을 번 다음 편하게 살겠다고?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알고 다음 글을 준비했다.

 

 

 

 

3. 소득없는 헛고생

투명인간의 특성을 이용하여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선 간단히 생각해서 은행에서 돈다발을 집어 들고 나오는 방법인데
그 상황은 아무도 없는 곳에 돈만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일이 생기게 된다.
돈다발이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는데 못본 척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다.
다행히도 투명 가방이라던가 투명 보자기가 있다면 좋겠지만
인체생리학적이며 화학적이며 또한 물리학적이며

생물학적인 투명인간의 기술적 특성상 불행히도

투명 보자기나 투명 가방의 생산은 불가능하다(그게 가능하다면 굳이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러니 기껏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란 돈 있는 곳에 가서

만원짜리 한장 정도 돌돌 말아 똥꼬에 끼워 도망오는 건데,
도둑치고도 아주 비참한 도둑이다. 열번만 반복하면 치료비가 더 든다.

물론 그런 방법말고도 산업스파이라던가

사설탐정 등의 역할로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신분이 드러나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으며
또한 앞서 제안한 내용과는 별개의 경우다.

즉 그것은 불로소득이 아니라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해야 하는

정식 경제행위로, 그렇게 돈 벌려면 부지런히 일해야지

언제 놀 수 있겠냐는 말이다.

 

 


따라서 투명인간은 돈을 벌기도 힘들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 유괴범이나 인질극 등

죄질 나쁜 반사회적인 범죄말고는 어렵다.
말이 쉽지 인질극이나 유괴범도 쉬운 건 아니다.
일단 복면을 쓰고 행동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투명인간이 되어야 하니
그전에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투명인간은 돈을 벌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 쓸모가 없다.

 

 

 

                  *          *          *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투명인간은 얼핏 듣기에 이름만 화려했지 실속이 없다.
도술치고는 쓸모가 없고 또한 가만히 있으면 될 걸
괜한 투명인간 해보려다 생명의 기간만 단축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이에 비해 축지법은 무척 단순하지만 실속이 있다.
일례로 축지법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한다.
지금까지 투명인간의 허실을 말하느라 몹시 힘드니
<넘버 3>의 배우 송강호씨에게 부탁한다.

국내 유머 사상 최초로 유명 배우를 등장시켜
색다른 웃음과 비굴한 동정심의 발생을 유도한다.

 

 

“어.... 그러니까.... 은행에 가, 그냥 가는 거야 이렇게 툴툴 거리며 그냥 가는 거야 어? 어?
그리고 돈을 쑥! 집어. 어? 어? 이렇게 그냥 집어. 그럼 경비원이 오게 돼 있어. 어?
그럼 그러면 돼. ‘헤이! 유 경비? 나 축지법이야!’ 그리고 돈을 들고 뛰어!
존나게 뛰는거야. 어? 어? 지들이 어디까지 따라오겠어? 어?
나? 충무로에서 시작했는데 잠깐 뛰었는데 대전이야 어? 지들이 어떻게 따라와?
대전 경찰이 또 쫓아 온다구?  그럼 오라 그래. 얼른 오라구. 그리고 또 뛰는 거야.
금방 부산이야 어? 뛰기만 하니까 심심해? 그럼 잡혀. 어? 그냥 잡히는거야.
지들이 잡으면 뭐해 어? 그냥 담배  한대 피고 또 뛰는 거야 어? 어?
바로 이거! 이 축지법 정신... 그게.... 필요한 거다”

 

 

 

     *          *          *

 

 

 

이렇듯 축지법과 투명인간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어이없는 설문을 제시한 사이트 임직원들은 즉각 공개 사과를 하고
책임자를 구속해야 한다.
또한 생각없이 투명인간에 표를 던진 사람들도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투명인간은 해봐야 쓸모 없는 것이니

목욕탕이나 몰래 훔쳐보려는 쓸데없는 상상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우리 선조들이 실제로 활용했다는

축지법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나 또는 역사 공부 측면에서 훨씬 더 바람직하다.

 

 

오늘 우리는 중요한 공부를 했다.

역사가 가지는 위대함과 현대문명과의 접목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이 재산증식에도 유리하고 생명의 보전에도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좋은 사실을 알았으니 얼른 집에 가서 문헌을 뒤져보던가
아니면 인터넷에 축지법 동호회나 하나 만들어야겠다.

나도 돈 좀 벌어보자.

 

 

 

 

 

 

 

 

 

 

 

 

 

 

아하누가

인터넷 세상 어딘가에는 축지법 동호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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