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편집부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그 회사에서 출판하는 책들은 일반 대중 서적이 아니라
학술 관련 서적이었기 때문에
교정을 보거나 편집을 하는 데 있어서 지루함을 쉽게 느끼곤 했다.
대부분의 책 제목이 ○○론이나 ××학이어서
업무가 쉽게 따분해지기도 하고
또한 많은 한자의 잦은 등장은 업무의 집중력을 자주 떨어지게 했다.
책의 편집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자의 머리말이 도착했다.
평소에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머리말이라는 것을 잘 읽지 않은 채
본문부터 읽어 가는데,
편집을 하다보면 저자의 마지막 원고가 바로 이 머리말이어서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의 머리말이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술 서적답게 그 머리말 또한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이어서
그리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한 군데, 마지막 부분을 가끔 눈여겨 보는데…….
마지막 문장을 마치고 날짜를 쓰고 그 뒤에 이어서 ‘著 者 識’이라고
한자로 표기를 하는 부분이 있다.
그저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다 으레히 그렇게 하는 것이려니 하며
무심히 지나가 버리는 부분이었는데 한 번 소리내어 발음해 보니
꽤나 우스운 것이었다.
“저 자 식이라……. 저 자 식, 저 자식, 저 자식……. 하하하.”
혼자서 낄낄대며 웃고 있으니 동갑내기 여직원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 묻는다.
신중한 표정을 한 채 내 설명을 들은 그 여직원은
분명 웃어야 할 상황임에도 웃지 않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글쎄……. 한자는 워낙 뜻도 많고 어려워서…….
근데 말이지 혹시 이거 다른 발음으로 읽혀지는 거 아닐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럴듯한 얘기였다.
한자라는 게 조금 어려운 건 사실이고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도 한자는 여러 가지로 발음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은 상당히 근거 있는 추측이라는 공통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단 방정맞게 웃던 그 웃음을 멈추고 그 여직원과
머리를 맞대고 가장 커다란 옥편을 펼치고 그 글자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識자가…… 어디 있나……. 음…… 여기 있다!”
“……!”
부지런히 그 글자를 찾던 우리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길을 피한 채 슬그머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옥편에는 ‘지’로도 발음된다고 나와 있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