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니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짐을 옮길 일이 있어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차안에 약간의 짐을 둔 채 사무실 앞 주차장에 주차하곤
사무실에 올라가 일단 급한 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나서야 차에 둔 짐이 생각나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조금 전에 주차할 때와 다른 직원이 주차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차 키는 안에 꽂아 두었으니
성큼성큼 걸어가 짐을 꺼내는데 바뀐 큰 목소리로 직원이 소리친다.
"그거 아저씨 차 맞아요?"
"그럼 내차 맞지. 그리고 나 아저씨 아냐"
그럼 내 차니까 짐 꺼내지 다른 사람 차인데 내가 왜 짐을 꺼내나.
한눈에 보고 차 주인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그 직원도 주차장 직원으로 성공하긴 틀렸다.
그러나 자칫 주차장 직원으로 성공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에 애써 그 생각은 잊어버리려 했다.
"정말 아저씨 차 맞아요?"
직원은 계속 의심 섞인 눈으로 내게 묻는다.
이렇게 답답할 일이 있나.
그럼 내차니까 내차라고 하지 남의 차를 내차라고 하리?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거야말로 행복한 나의 생각이고
주차장을 관리하는 직원에게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아까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려던 일을 다시 기억해 냈다.
'그래, 너 평생 주차장 관리직원으로 살아라'
가만히 생각하니 이 차가 내 차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내 차인데 내가 증명해야 할 일이 생기리라곤 생각한 적이 없어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어이~ 여기 옆에 긁힌 자국 보이지.
그거 내가 술 먹고 운전하다 그런 거야 우헤헤헤"
"........"
그 정도면 확실한 증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별 반응이 없다.
마치 소 닭 보듯 쳐다보고 있다.
"안에 있는 방석 있지?
그거 마누라가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만오천원에 산거야"
"......."
이번에는 좀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코끼리가 오리새끼
쳐다보듯 바라본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차안에 자동차 등록증이 있던가?
그건 잘 모르겠고 지갑의 운전 면허증을 보여줄까?
그래봐야 말도 안되는 얘기고.....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일을 생각하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차가 내 차일 수밖에 없는 절묘한 증거를 찾은 것이다.
"자, 이것 보라구. 여기 창문에 핸드폰 번호 적혀있지?
이 번호로 전화해서 내가 받으면 내차가 맞는거지? 그렇지?"
그리고 얼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01X-395-55XX.....
분명히 내 전화 번호가 맞는데 여자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앗! 마누라가 내 전화를 가져갔나? 아닌데?
상대방 여자의 말이 들려왔다.
"사서함 비밀번호 4자리를........"
나 이렇게 살다가 주차장 관리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