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연이가 아무래도 천재 같아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를 던진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아무래도 아들 녀석에게 천재성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아내는 무언가 보여주겠다며
서둘러 아기 장난감이 잔뜩 어지렵혀져 있는 방으로 갔다.
“당근 집어 봐라아~ 당근 ~”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 녀석은 어지럽게 널브러진 그림 카드 중에서
정확하게 당근을 집어왔다. 제법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제 돌 지난 지 4개월 정도 되었으니 생후 16개월밖에 안 된,
말도 할 줄 모르는 갓난 아기가 말귀를 알아 듣고 있으니
꽤 대단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내는 뭔가 엄청난 것이라도 발견한 듯이
유난히 호들갑을 떨면서 계속 흥분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한 번 해 볼게.”
넉 장의 그림 카드를 늘어 놓고 당근을 집어 오라고 시키니
이 녀석은 당당하게 당근을 집어와서 잘하지 않았냐는 듯한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또한 못 미덥기도 해서 이번에는
넉 장의 카드를 이리저리 섞어 놓고는 마찬가지로 당근을 가져오라 했다.
아들 녀석은 조금의 당황도 없이 늠름하게 당근을 또 집어 와서는
조금 전의 모습과 별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번에는 당근을 빼고 넉 장의 카드중 ‘무’라고 써 있는 그림카드를 골라
아들 녀석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이게 ‘무’라는 거야……. 이게 무란다. 이게 무야…….”
그리고는 넉 장을 섞어 놓고 무를 집어오라고 시켰다.
나는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정말 이 녀석이 그만큼 커버린 것이어도 좋고, 또 정말 천재성이 있다고 해도
그건 얼마든지 유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심 이 녀석에게 천재성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재임이 확인만 되면 얼른 하던 일 때려 치우고 매니저로 나설 계획도
그 짧은 순간에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 했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무’를 집어 올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 내게 전혀 다른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기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도 몸부림에 가까운 말도 안 되는 춤을. 그러면 그렇지…….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내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계속 긴장된 얼굴로 아기를 바라보더니 곧 내게 말을 건넨다.
“얘가 진짜 천잰가 봐요.”
“뭘……. 무 집어 오라니까 춤만 추고 있는데…….”
“그러니까 천재죠.”
“……?”
아내의 해석은 무를 집어오라고 외친 ‘무’ 소리를 아기가 ‘舞’로 해석했다는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었다.
이것을 대단한 상상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치밀한 분석에 의한
천재의 엄마다운 해석인지 잠시 혼돈이 생겼으나
곧 생각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되어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건너편 방에서는 계속 아내의 천재 교육을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가관이다.
‘DANCING’이 나오고, 구구단이 나오고……. 아마 조금 더 있으면
인수분해나 삼각함수 등 수학적인 공식은 물론
모라토리엄이나 DNA 같은 시사 용어 등
아내가 가진 지적 수준의 한계에 있는 단어까지 등장할 게다.
하지만 난 천재 아들보다는 엄마를 닮은 엄청난 장사였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보는 천재란 그 인생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것보다도 건강한 몸에 악하지 않은 사고를 가진
어른이 되어주길 바란다.
아무래도 건강한게 최고일 테니 말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