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쥐를 잡자!

아하누가 2024. 2. 21. 19:59

 

 “여보~ 이걸 어떻게 하지?”

 


한쪽 손을 꼭 쥔 채 아내는 황급히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호들갑을 떠냐고 반문하니
아내는 날아가는 파리를 손으로 잡았는데 아직 손 안에서 살아 있다며
자신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말투로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고 있었다.

 


“그냥 날려줘~”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지만 아내의 표정이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아마도 뛰어난 무예 실력을 무시당했다는 느낌도 있었을 것이고
또는 힘들게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잡은 놈을 다시 살려준다는 것도
소득 없이 무슨 일을 했다는 본전 심리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절대로 그냥 놔줄 수는 없다는 표정이었다.

 

손으로 꼭 쥔 채 뜨거운 물에 푹 담그면 화상으로 죽거나
최소한 익사할 것이라고 말하려다가

정말로 행동에 옮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 뒤에 벌어질 흉칙한 몇 가지 일들을 예상하고는 제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파리를 잡고 있는 손을 공중으로 빙글빙글 돌리다가 방바닥을 향해서
힘껏 내팽개치듯이 던지라고.

곧 아내는 알려준 대로 팔을 몇 번 허공에 휘젓더니 손 안의 파리를
방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앗!”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은 파리를 보게 되었다.
파리가 가진 무게와 공기 저항과의 역학 관계로 보아
방바닥에서 튄 파리는 잠시 기절을 하거나

뇌진탕, 또는 심한 찰과상과 타박상 등의 사인으로 사망해야 극히 정상인데
이 경우는 파리가 그러한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벽에 붙어 있다가 파리채로 맞아 죽은 파리의 시체처럼

완전히 떡이 되어버렸다.
파리를 방바닥에 던지면서 손바닥으로 ‘장풍’을 뿜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런 형태의 시체가 나올 수 없다. 말 그대로 떡이다 떡.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파리 한 마리 잡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예전 일 하나가 떠올랐다.

 

 

 


                  *         *          *

 

 

 


결혼 전 일이다.
지금의 아내를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집 앞 골목 모퉁이로
쥐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흔히 생각하는 쥐보다 조금 컸고 그 움직임이 눈에 띄도록 둔했다.
그냥 지나쳐 버리려다 그 동작이 부자연스러워 조금 자세히 보니
새끼를 배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마리라면 그냥 지나쳐 버리려 했는데
막상 새끼를 배고 있는 쥐를 보니 그 측은함과 동시에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사명감이 머리를 힘껏 강타했다.

 

일단 가까이 접근하면 도망갈 것 같아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한 뒤
돌멩이를 던져 맞춰잡기로 작전을 세우고 제1구를 신중하게 던졌다.
돌멩이는 쥐를 피해 갔지만

쥐는 도망갈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못 하는 건지
그 자리에서 몸만 피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독 안에 든 쥐였던 셈이다.

 

하지만 몇번이나 던진 돌멩이는 한 번도 쥐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 쥐는 상당히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어서
꽤 고난도의 던지기를 시도해야 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맞추는 데 급급하여 돌멩이의 속도를 늦춘다면
커다란 상처를 입히지도 못 할 뿐 아니라

쥐에게 만만한 놈으로 보여질까봐
속도에 의한 돌맹이의 위력에 신경을 쓰다보니 적중도는 점점 낮아졌다.

어느덧 근처의 돌멩이를 다 던졌다.
쥐는 아직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계속 몸만 움츠리고 있다.
더 가까이 접근한다 해도

발로 밟거나 차버리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이는 무척이나 꺼림직한 방법이었으므로
적당한 거리에서 돌멩이로 맞출 수밖에 없었는데

돌멩이가 이미 다 없어져 버린 것이다.

 


갑자기 어린 시절 막내 동생 녀석이 죽은 쥐의 꼬리를 끈으로 묶어
동네방네 끌고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걸 끌고 다닌 막내 동생이나

그렇다고 그걸 묶어준 어머니나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에게 섣불리 얘기할 수 없는 집안 망신이라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안 보이던 아내가 나타났다. 티셔츠에 돌멩이 한아름을 안고서.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에 했던 막내 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에서 있었던

아낙네들의 돌멩이 나르는 장면이 생각났다.

한편으로는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났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 또한
확인하고 싶었지만, 눈에 보인 더럽혀진 아내의 티셔츠를 보고는
우선 저 놈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전의만 불태우기로 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확률 때문인지 돌멩이 하나가 정통으로 맞았다.
쥐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그 전과 달리 빠른 움직임으로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곳은 거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쥐는 우리 곁을 통과해야 도망갈 수 있었다.
쥐는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취할 방법이 없었다.
가만히 있는 놈도 30번 만에 맞췄는데

움직이는 놈을 돌멩이를 던져서 맞춘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객관식 문제의 시험에 만점을 받거나
동전으로 박박 긁는 500원짜리 복권을 사서 2000만 원에 당첨되는 확률보다
낮을 것이다. 그러니 그 순간에 딱히 취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아내가 아침부터 들고만 다니던 우산으로 지나가는 쥐를 내려쳤다.
한 방으로 모든 게 끝이었다. 쥐는 어디를 맞았는지 ‘찍’소리만 한 번 하더니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 소리도 마지막으로 ‘찍’소리도 못하고 죽었다는 소문이
쥐들 세상에서 나도는 게 두려워서 형식상 내본 소리였을 게다.
급소를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급소가 아니라 어디를 맞아도 못 버틸
빠르기와 강력한 파워였다.


시장에서 생선 파는 아주머니가 커다란 통나무판에 얼린 생선을 올려 놓고
한 방으로 두 동강을 내던 그 칼솜씨와도 비슷해서

현재 직업을 의심해보기도 했다.

 

 

또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식빵이 한 조각 들어 있는 봉투에 새끼 쥐가 들어 왔다가

내게 생포된 적이 있었다.
봉투 입구를 꽉 잡고 쥐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 방법은 없었다. 굶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는데
남아 있는 식빵 한 조각이 마음에 걸렸다.
곧 어머니께서 무참하게 봉투째 밟으셨고 그 쥐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만큼
비참하게 죽었다. 한쪽 뺨에 슬리퍼 밑창 무늬를 선명하게 새긴 채…….

 


쥐는 한쪽 벽으로 죽은 채 누워 있었고

내 손에는 아내가 선물이라며 건네 준
바로 그 커다란 우산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보니 파리 한 마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 동안에 아내가 손으로 때려 잡은 바퀴벌레만도 벌써 얼마나 많은데…….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파리 두 마리가 빙글빙글 돌며 어지럽게 날고 있다.
저들끼리 서로 연락을 취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아마 이런 정보가 오갔을 게다.

 

 


“저 뚱뚱한 아줌마한테 걸리면 우리는 뼈도 못 추린다고 모두에게 전해!”

 

 

 

 

 

                           - 나쁜 병균을 옮기는 쥐를 잡읍시다! -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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