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왜 울어?”
“풍선을 불어주다가 그만 터져 버렸어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더니 아기가 무척 놀란 듯한 얼굴로 울고 있다.
엄마가 불어주는 풍선을 보고 깔깔대며 재미있어 했을 텐데
이것이 그만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터져 버렸으니
황당과 당황과 놀람, 그리고 심한 배신감이 한 번에 몰려왔던 모양이다.
아내는 아기를 달래려고 번쩍 안는데 그 폼이 자연스러우면서 너무도 당당했다.
하긴, 아내가 무엇인가를 들을 때 한 번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요즘 풍선은 질이 안 좋은가 봐요?”
아내가 불쑥 내게 말을 건넨다.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단순한 불량품일 수도 있겠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아내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계속 풍선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는 혼잣말하듯 조심스레 말했다.
“이거 원~ 힘 주어 세 번 불었는데 터져버리니…….”
세 번?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아기 때문에 풍선을 가끔 불어주는데 그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 번만 불어서 터뜨리다니…….
이 일은 내게 있어 힘이라는 것의 평가를 위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 * *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그때의 힘에 대한 나의 개념은
누가 더 철봉에 오래 매달려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나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한 학년이라도 많은 사람이
더 오래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으로만 믿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중학생이 되었을 때
힘의 개념이라는 것은 누가 더 싸움을 잘 하는가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금 더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누가 더 많은 경험과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부 잘하는 사람이
힘이 세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이것은 성인이 되면 될수록 점점 더 확신되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 힘에 대한 개념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목소리 큰 사람이 힘이 더 세다는 사실을
잠시 알았을 뿐이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나의 힘에 대한 개념은 결혼을 하면서 다양하게 변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엄청난 혼돈 또한 함께 겪게 된다.
도저히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치약을
자그마치 이틀 동안이나 계속 사용하는 아내를 보면서 어려서부터 가져온
힘의 개념이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 동안 아내가 사은품이라며 잔뜩 받아온 치약 더미에서
몰래 새 치약을 꺼내 사용하던 내가
새로운 힘의 개념 앞에 더 부끄럽게 느껴져야만 했다.
하루는 방 청소를 하다가 하기 싫은 걸레질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난 방바닥을 걸레로 닦을 때는 물기만 조금 보일 정도로
슬쩍쓸쩍 대충 지나쳐 버린다.
구석구석까지 닦을 만한 꼼꼼함을 지니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불결은 불결로 이긴다는 남 다른 위생적 개념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었을 뿐이다.
그날도 예외없이 대충 걸레질을 하는데 아내가 한 곳을 가리키며
그곳에 얼룩이 있다며 박박 문지르라고 한다.
하지만 방바닥의 얼룩이라는 게 물걸레질을 한다고 지워지는가?
내 상식으로는 길거리에 좌판을 늘어 놓고
옷가지에 싸인펜으로 칠하고 지우며
선전하는, 옷에 묻은 잉크가 잘 지워진다는 약이 굳이 아니더라도
휘발성이 있고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성질의 다른 액체를 이용해야
지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바닥의 얼룩은 걸레질로는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아내에게 말하는 순간 아내는 빠른 동작으로
내가 들고 있던 걸레를 뺐더니 방바닥을 힘껏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걸레로는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방바닥의 얼룩이 거짓말처럼
지워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도대체 어떤 개념으로 힘이라는 것을 규정해야 하는지
또 한 번의 혼돈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방바닥 장판의 재질과
걸레로 쓰인 그 섬유 성분과의 마찰 관계를 정밀 조사하여
그 운동력을 마찰력으로 전환한 다음,
여기에 들어간 힘의 정도를 다시 수직운동으로 바꾸어
역기를 드는 것으로 환산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듯 힘에 대한 개념은 결혼 생활중에 수시로 바뀌게 되었고,
그것은 새로운 개념이 생길 때마다 많은 혼란을 동반하곤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잊혀지지 않는 커다란 힘이 하나 있다.
* * *
몇 년 전, 꽤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일이 있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무언가 확신 없는 다른 일을 하려니
그 또한 결정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많은 고민을 했고 결정을 내리기는 더욱 힘들었다.
직장이라는 것은 처음에 들어가기보다 그만두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의 일이다.
그때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병이 된다는 특유의 논리로
흔쾌히 내 해답을 찾아 주었다.
결국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그것은 살면서
내가 아내에게서 느낀 가장 커다란 힘이 되었다.
아기는 아내의 품에서 이내 잠이 든다.
이 녀석은 아마도 물리학자가 되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 다음에 나와 같은 힘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다면 말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