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자장가

아하누가 2024. 2. 21. 19:55

 

  “아니, 무슨 노래 가사가 그게 뭐야?”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아내에게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 대답한다.

 


  “노래가 반드시 그 가사로 불러야 한다는 법은 없다구요.  
    게다가 아기에게는 반복되는 것보다

    가끔씩 창의력이 동반된 내용이 필요하다구요” 
  

 

  그것이 바로 아내의 논리였다.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잠시 신중하게 생각해보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응용도 좋고 창의도 좋지만 그래도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고 있었다.

  아내가 아기에게 불러준 노래는 이랬다.

 

 

  ‘우리집 강아지는 몹쓸 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깽~깽~깽 ........’

 


  복슬강아지의 ‘복슬’을 ‘몹쓸’로 바꾼 것은
  운율의 동질성을 응용한 것이긴 하나 응용된 단어의 의미가 몹시 부정적이다.
  또한 강아지 소리를 나타내는 ‘멍멍멍’이란 의성어를 ‘깽깽깽’으로 바꾼 것은
  나름대로 현실감이 있어보이나 저런 개소리는 주로
  주인에게 발로 차이거나 보신탕집으로 잡혀갈 때 내는 소리니
  이 또한 부정적이기 그지 없다. 


  따라서 대충 들으면 제대로 하는 것 같기도 한데
  가만히 원래의 가사를 생각해 보니 ‘창의’라는 단어를 응용해서 덮어버리기에는
  말도 안되는 가사였다.
  즉 응용과 창의를 앞세워 노래가사를 현실감있게 재구성하려는 아내의 시도가
  개인적인 네가티브 논리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그래도 좋은지 ‘깽깽깽’ 부분에서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내면서
  따라하는 시늉을 한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기가 좋아하니 더 이상 뭐라 그럴 수도 없고....

   

 

 


                   *           *          *

 

 

 


  아기가 있는 집에는 아기에게 노래 불러주는 일도

  커다란 일거리 중에 하나다.
  어찌된 일인지 아기들은 졸리면 잠을 자야하는

  자연스러운 신체적 반응도 무시하고
  잠이 오면 갖은 투정을 부리며 울어버린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노래를 살살 불러주면 울음도 멈추고

  가만히 듣고 있다가 결국 잠이 든다.
  이것은 아까의 경우보다 더욱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래서 당대의 음악가들인 ‘모짜르트’나 ‘브람스’도 자장가 같은 노래를
  만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경험으로는
  굳이 자장가라고 호칭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효과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가곡이나 동요, 또는 조금 조용한 대중가요를 불러주어도
  효과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랩이나 힙합은 그리 적합하지가 않다.

  자는듯하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추기 때문이다.

  물론 HOT 노래도 전혀 효과가 없다. 그건 따라하기도 힘들다. 
  

 

  어쨌든 아기는 잠을 잘 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나와 아내는 늘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는데 그날의 자장가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머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한번 재워봐욧!” 
  

 

  아내는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아기를 내게 넘긴다. 얼른 아기를 받았다.
  아내는 세곡 이상 노래를 했는데도 아기가 잠을 안자면
  매우 흉폭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          *          *

 

 


  참으로 자장가라는 노래의 역할은 신비롭다.
  잘하는 노래든 전혀 못하는 노래든 그 실력과 관계없이
  조용한 목소리로 흥얼거리기만 하면 아이는 울음도 멈추고

  가만히 쳐다보다가 

  눈꺼풀이 조금씩 조금씩 덮히면서 잠이 든다.
  다만 약간의 인내력과 다양한 레파토리가 필요하지만
  그것도 자식 가진 부모는 저절로 생기는 것들이기에

  그리 큰 문제는 없는 셈이다.
  사르르 잠이 드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왜 그리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이 노래 저 노래 부르다 보니

  아기는 서서히 잠에 빠져 든다.
  또 성공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기 재우는 실력이 나도 보통이 아닌 듯 싶다.
  뛰어난 가창력은 물론 다양한 레파토리와 그날의 시간, 기후 및
  동네 정서까지 감안한 적절한 선곡 능력,
  그리고 아기의 수면상태를 파악하여 목소리의 데쉬빌을 조절하는
  인체공학적 능력 등 스스로 생각해도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뛰어난 실력이다.

 

  언제부터인가 난 이러한 탁월한 능력을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굳이 다른 집 아빠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나의 이 능력이 몹시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이 자그마한 바램은
  아직까지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한번도 아내에게 이러한 나의 자장가 실력을
  자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기에게 자장가를 부르면 항상 아내가 먼저 잠든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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