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아기의 신발

아하누가 2024. 2. 21. 19:58


  “방금 신겼던 신발이 가면 어딜 가겠어?”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 거죠”
  “분명히 신기기는 했어?”
  “그럼요. 두개 다 신겼는데…….” 
   
   
외출을 앞두고 아내는 아이에게 신겼던 신발 하나가 없어졌다며 난리다. 
막 걷기 시작한 아기여서 신발이라는 것이       
단순히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넘어 순수한 본래의 역할을 할만하니까       
이번엔 그 신발이 없어지는 일이 생겨 곤란하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내는 성격도 급한 편이다.       
물론 그 급한 성격 때문에 좋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늘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불편한 일도 있으니 말이다.   
  
아내는 특유의 급한 성격 때문에 몇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우선 ‘매직 아이’라고 불리우는 이상스러운 점박이 그림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쉬운듯하게 생긴, 난이도가 제법 낮은 그림을 한장 펼쳐 보여줘도       
채 3초가 가기전에 안 보인다며 집어던지고 만다.       
눈의 구조가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아내는 자신의 급한 성격은 탓하지 않고       
요상한 것을 만들어 팔아먹는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사기죄 및 서민농락죄를 적용시켜     
고소하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것이 ‘매직아이’였으니 그정도였지 만약에 어린이들이 보는       
‘월리를 찾아서’라는 그림책이었다면 출판사가 폭파될 뻔 했다.       
아무튼 그‘매직아이’라는, 아내의 눈에 요상하게 보이는 그 그림은       
영원한 미스테리로 아내의 머리 속 어딘가에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림질을 잘 못 한다는 것이다.       
다림질을 못 하는 이유를 얼마전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것도 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          *

  

 

 

 


어느 집에나 하나쯤 있음직한 다리미판이라는 것이 있다.       
길쭉한 오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다리가 안쪽에 붙어 있어 다리를 세우고 사용하고   
나중에 보관할 때는 다리를 접어 두는,       
길거리에서 파는 것을 누구나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다리미판이다.       
다림질을 잘 못 하는 아내 때문에 내 옷은 내가 직접 다리는데       
어느날은  그 다리미판의 다리가 고장나 있었다.       
고장났다기보다는 부러져버린 것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게       
약한 재질로 만들어진 다리는 바깥쪽으로 흉하게 휘어져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혼자서 잠시 곰곰히 생각했지만 생각할 걸 생각해야지       
그런 생긱은 에스키모들도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는지 생각하는 것 보다       
부질없고 무의미한 생각이었다.
       
  
아내는 그 특유의 급한 성격 때문에 다리미의 전원 코드를 연결하고       
다리미가 적당히 뜨거워져야 하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전원을 연결하자마자 다림질할 옷에 물을 잔뜩 뿌려두고       
곧바로 다림질을 시작한다. 재미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래도 옷이 펴진다는 것이다.       
그점이 궁금해서 하루는 주의깊게 지켜보니       
아내는 혹시나 하는 나의 섣부른 예상을 실망시키지 않게       
역시 다리미를 힘으로 누르며 옷의 주름을 펴고 있었다.       
잘 펴지지 않을 경우엔

두손으로 다리미를 잡고 상체를 일으켜 체중까지 이용하여       
잔인하게 누르곤 했다. 참으로 대단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원리는 멀리 여행 갔을 때 양복 바지에 주름을 잡기 위해       
이불 밑에 바지를 깔아두고 잠을 자면       
아침에 바지가 잘 다려진다는 것과 같은 원리로 구겨진 모든 것을 펴는데       
일차적으로 동원되는 원리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이상한 관념에 대한 연구에 계속 몰두하게 되었다.       
과연 힘이 세면 성격도 급한 것인가? 하는       
새로운 인간의 체질 구조와 성격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힘이 세면 우선 힘으로 매사를 해결하려 할 것이고,       
더욱이 그것으로 몇 가지의 일이 해결되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힘에 대한 의존은 더욱 커졌으므로 생각없이 힘부터 쓰게 된다는 것이       
바로 내가 힘이 세면 성격도 급해진다는 것이 

연구에 돌입하게 된 이론적 근거였다.       
이것은 똥을 싸고 나면 배가 고파진다는 아내의 평소의 이론과 더불어       
충분한 통계 자료와 의학적 근거만 따라준다면       
연구의 가치가 있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아직도 그것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연구의 범위가 너무도 방대하여 중간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리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서

아직 연구의 시작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          *          *     
   
  


“분명히 신겼다면 어딘가에 벗겨졌을테니 주변에 있을거야”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내는 계속 아기 신발을 찾고 있다.    
  


“아기가 신발을 벗어 봐야 어디 멀리 가겠어? ”

  
  
급한 성격의 아내는 찾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이미 두어번 집안을 이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찾는 속도만큼 포기는 더욱 빨라서 신발찾기를 이내 포기하고       
신발을 신기지 말고 그냥 나가자고 한다.
  
  
“이제는 덩치가 커져서 안고 다니기도 힘들다구”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몸도 커진데다 옷을 많이 입혀 두 손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부피가 너무 커져서 들쳐 업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혹시라도 내가 일방적으로 안고 다니게 되면       
신체적 충격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한다.    
  


“내가 안고 다니면 되잖아요!”
  
  
대답이 조금 신경질적이긴 했지만

아기를 안고 다니겠다는 말에 다행이다 싶어       
더 이상의 대꾸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때 기분이 좋아 잠시 흥분한 나머지 섣불리 마음에도 없는 괜한 말로       
거들어 주겠다는 조금의 의사라도 표현하면

그 말은 나중에 불리한 증거가 되며,       
외출하는 동안만이라는 상식적 효력이 지난 뒤에도 적용되는       
노비문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저 녀석은 좋겠다.       
어른들과 같은 눈 높이로 거리를 흔들흔들 그네타는 기분으로       
하루종일 다닐테니 말이다.       
아마도 나이를 지금보다 더 먹어 세상 일을 많이 알게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면 그때 자신을 들고 있었던 물체(?)가       
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이나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을 나서려고

아기를 번쩍 들어 안다가       
없어진 줄 알았던 아기 신발 한짝을 발견했다.       
늘 그랬듯이 아내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믿고 사는 것일까?         
     
  


신발은 가지런한 모습으로 아기의 한쪽 손에 신겨져(?) 있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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