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들이가 잦으니 차안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많게 된다.
길이 막힐 때는 갑갑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가족과 함께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대화뿐이니까.
다행히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어서
차안에서 음악을 듣고 얘기를 나누기에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내 얘기를 잘 듣는 큰 아들은 어디 놀러가는 것보다 이 시간을 더 즐기는 듯싶다.
오갈 때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번갈아 앞자리 조수석에 타니까
큰 녀석은 자신이 조수석에 탈 차례가 오면 내 옆에서 떠드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마누라는? 당연히 뒤에서 잔다.
잘려면 곱게 잘 것이지 음악소리 줄이라는 말을 잠꼬대처럼 하면서 잔다.
차안에서는 주로 큰 녀석이 듣는 음악을 들었다.
어디서 받았는지 비트가 강하고 보컬의 샤우팅이 강한, 전형적인 하우스 음악이다.
이런 음악을 도대체 어디서 알고 찾아 듣느냐니까
게임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음악들이라고 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녀석은 아마도 주변 친구들과 오가는 정보가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듣는 빠른 템포의 음악은 순간적으로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흥분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음악적인 완성도가 그리 높은 음악은 아닌 듯 들렸다.
녀석에게는 아직까지 이성으로 듣는 음악보다는 감성으로 듣는 음악을,
아니 감성으로 듣는 음악보다는
자극과 충동에 직접적으로 연관있는 음악이 더 흥미로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중학생이면 음악의 본질적 접근에 대해서도 알 때가 됐다.
녀석의 흥미를 유발해서 다른 형식의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박자가 빠르고 선율이 자극적인 음악이면 듣는 사람도 신나겠지?”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않겠어요?”
“그럼 혹시 아주 느린 템포의 음악과 잔잔한 멜로디를 들으면서도
마치 빠른 박자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이 청중들이 열광에 빠진다면?”
“에이,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그렇다. 녀석은 아직 그런 상황은 모른다.
음악의 본질이란 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있다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은 의도적인 자극보다는
음악적 완성도와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감성과 호소력에 있는 것이다.
이걸 설명하려니 약간 힘이 들 테고
또한 그런 교과서적 강의는 중학생 아들의 반감만 살 뿐이다.
“세상에는 당연히 그런 음악도 있지.
천천히, 그리고 잔잔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마치 엄청난 것을 만나기라도 한 듯
환호와 열광을 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냥 그런 음악도 있다는 거지 실제로 있는 건 아니라는 말씀?”
“당장 들려주랴?”
“지금 있어요?”
마침 차 안의 CD 중 전인권의 노래 ‘사랑한 후에’가 절묘한 라이브로 된 음원이 있었다.
나도 어지간한 들국화 팬인데 이 음원의 정체를 모르겠다.
음악만으로 볼 때 상당히 큰 체육관 규모의 공연장인 듯 예상되며,
전인권의 목소리 상태로 보면 대략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의 공연으로 보인다.
어디서 생겼는지 이 음원은 간혹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할 수 있고
이후 계속 내 컴퓨터에, 내 차안에서 자주 듣게 된다.
보통의 라이브 실황을 누군가 녹음했다면 이러한 음향은 나오지 않을 테니
어디선가 제대로 녹음한 음원인 듯싶다.
이 음원은 그동안 들은 ‘사랑한 후에’ 중에 가장 현장감이 넘치게 녹음되었고,
특히 드럼의 엄청난 바운스는 현장감을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었으며,
또한 한편의 영화 같은 절묘한 편곡은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아쉬움으로 마무리하는 드라마틱한 음악이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이럴 때 들국화식 용어로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큰 녀석에게 음악을 들려줬다.
부분 부분 노래하는 사람의 간단한 특징과 역사에 대해서도 작은 코멘트도 있지 않았다.
녀석은 나름 감동했다.
빠르고 격정적인 음악만이 박수를 유도하고 어깨를 들썩일 수 있다는
녀석만의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진 상황인 셈이다.
잔잔한 음악에서도 무게감을 찾을 수 있고,
그 무게감은 그동안 자신이 그동안 들어오던 음악을 싸구려 음악으로 만들기에 충분했고,
그러한 음악에도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했다.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것은 무언가에 감동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감동할 수 있는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후 녀석은 매번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내게 들국화에 대해 물었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했지만
들국화라는 인물, 그룹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다.
이러한 설명은 녀석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요 특징만 잘 이해시켰다.
마침 녀석은 TV가요프로그램을 즐겨보면서 그다지 내공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일부 가수들의 어줍잖은 무대에서의 퍼포멘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이러한 녀석은 들국화를 쉽게 이해하고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남자 중학생이면 세상의 관심이 ‘남자’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재벌 2세 아들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평범한 여자를 찾아간다는
신데렐라식 스토리보다,
17:1로 주먹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칼을 들고 덤비는 일본 경찰을
맨손으로 싸워 이긴 야인시대 김두한 스타일의 소재가 더 관심이 갈 것이다.
그러니까 녀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화제를 한 단어로 축약하면
그것은 ‘포스’다.
‘포스’라는 단어가 국적도 어원도 없는 요즘 인터넷 은어이긴 하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다.
그런데 다행인 것이 ‘포스‘ 하면 바로 들국화 아닌가 싶다.
항상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하는 듯 안하는 듯 객석과의 묘한 소통,
거기에 걸맞는 뛰어난 연주와 노래.....
이런 얘기들은 마치 큰 아들의 생각엔
‘그토록 찾아다니던 고수’를 발견한 셈이다.
녀석이 생각하는 은둔세계의 고수,
아마 그 나이 때라면 한번씩 상상하던 바로 그 무림의 숨은 고수가
녀석의 세계에 현실로 등장한 셈이다.
당시 중학생인 녀석이 생각하는 고수라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뒷짐진 자세로 눈빛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
가벼운 조크 한방으로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는 포스,
신선 같은 선문답 몇 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 등이다.
이러한 상황을 빗대어 들국화를 설명했는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러한 고수의 풍모가
정말 들국화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사실 아닌가 싶다.
녀석은 이후에도 들국화를 무척 좋아한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들국화를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녀석은 이후 고등학생이 되었고
하늘이 도왔는지, 녀석과 나의 바람의 이루어졌는지
들국화가 재결성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됐고 둘이서 서울공연을 예매했다.
마누라는 여전히 자고 있다.
들팬 카페를 통해 소중한 공연실황을 늘 함께 보면서 다가올 공연을 기대하고 있다.
들팬 카페에 있는 동영상 중
2005년 전후하여 전인권의 상태가 가장 안좋았을 때의 동영상을 보며
큰 아들은 내게 동의를 구하듯 넋두리처럼 묻곤 했다.
“아버지, 왠지 애잔해요.......”
“그렇지?”
지난번 시청앞 MBC파업콘서트에는 데려가지 않았다.
자기 의지와는 아무 관계없이 들국화의 팬이 되어버린 작은 아들만 데려갔다.
아쉽긴 하지만 콘서트 티켓 있는 놈이 아쉬울 건 없다.
나중에 콘서트 현장에서 보는 게 더 멋있을 테니까.
* * *
얼마 전 들국화 세 분이 라디오 프로그램인 컬투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아마 나는 그것을 10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거기서 잠깐 ‘그것만이 내 세상’이 흐르자 전인권은 말했다.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이죠.....”
그렇다.
나도 들국화를 통해 아들과 세대를 넘나들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녀석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던 음악들을 들으며 감동한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이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나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비틀즈가 활동을 시작하고 히트곡을 냈지만
비틀즈를 듣고 자라며 아직도 좋아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같은 음악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공감대를 만들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게다.
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나그네 설움’을 나는 이해하지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조용필의 ‘허공’쯤에 와서야 아버지와 나의 세대벽이 무너지는 듯했으나
취향까지 맞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들에게 같은 취향으로 같은 감동을 나누고 있으니
세대차를 가볍게 넘나드는 아버지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들국화가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2012년 7월.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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