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그때가 1991년 무렵이었다.
들국화는 이미 아듀 콘서트를 한 뒤 해산했고,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개인 음악활동을 할 때였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 있는 현대백화점 콘서트홀에서 전인권 콘서트가 열렸다.
들국화 향수를 품고 공연장에 갔다.
그때 같이 갔던 여자는 아직도 아픈데 한군데 없이 우리집에서 살고 있다.
당연히 공연 내내 전인권은 히트곡을 열창했고 어느 덧 공연이 끝날 시간.
앵콜이 쏟아지자 전인권은 <세계로 가는 기차>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침 사회자도 아니고 진행자도 아니고 이야기 손님 정도로
찬조출연한 분이 있었는데,
아마 방송인 <이백천>으로 기억한다.
세계로 가는 기차라는 노래를 들으면
마지막에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노랫말이 나오고
이 노랫말의 반복을 끝으로 노래가 마무리된다.
굳이 설명 안해도 우리끼리는 다 아는 얘기다.
모두가 앵콜송으로 그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인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부분에서 사람들의 합창을 유도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이백천씨가 마이크를 들고 객석으로 내려와(소극장이라 객석이 멀지도 않다)
앞줄에 앉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를 시켰다.
반주하던 밴드는 마치 렉 걸린 인터넷 음악처럼 그 구간을 무한 반복했고,
이백천씨의 손에 들린 마이크는 계속 관객 앞줄을 돌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를 시켰다.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하니까
더 이상 앵콜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의사표현이기도 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긴 했다.
그런데 이백천씩 들고 다니며 관객 중 무작위로 들이 대던 마이크가
어떤 남자에게 도달했을 때 그 남자는 그 노래를 이렇게 불렀다.
“너도 가~고 나~아도 가~아야지~”
이 노래를 잠깐 기억해본다면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부분을 여러번 반복하다가
노래가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너도 가~고 나~아도 가~아야지~” 라고 부르며
노래가 끝나게 되어 있다.
이건 우리끼리니까 쉽게 이해될 것이다.
바로 그 대목에서 그 사람은 그렇게 엔딩처리 되는 멜로디로 노래를 부르니,
밴드는 노래를 멈춰야 하는지 알고 잠시 혼란에 빠지고
무대 위에서 박수치며 관객을 바라보던 전인권은 멘붕에 빠졌고,
마이크를 들고 있던 이백천씨는 황급히 마이크를 뺐어갔고,
멈추려던 연주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겨우 다시 이어졌지만
어째 매우 분위기가 잠시 이어졌다.
그 부분은 마지막에 전인권이 부르며 끝을 내야 하는 멜로디 부분인데
그 눈치없는 관객이 그러게 불러버림으로써 약간의 혼란을 맞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별 것도 아닌 기억이지만
이번에 들국화가 다시 소극장 공연을 한다니
잠시 있었던 소극장 무대에서의 작은 해프닝이 떠올랐다.
이번 소극장 공연은 정말 기대된다.
소극장 공연을 기다리며 옛날 기억 한 가지를 더듬어봤다.
약 20년전 어느 날,
소극장에서 전인권이 불러야 할 멜로디인
“너도 가~고 나~아도 가~아야지~”를 불러대던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혹시나 전인권이 그 사실을 아직도 기억한다면 나는 참 피곤할 것이다.
아하누가
소극장 공연은 그런 맛인 걸 어쩌랴.
'카페, SNS, 밴드에 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북-2014> 성향 (0) | 2024.07.11 |
---|---|
<페북-2014> 타로 (0) | 2024.07.11 |
큰 아들과 들국화 (0) | 2024.06.30 |
밴드의 보컬리스트 (0) | 2024.06.30 |
들국화 분당공연, 그리고 마누라 (0) | 2024.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