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
영국 출신 그룹이면서 영국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그룹 스모키(SMOKIE).
창단 당시 막내로 들어왔지만 뛰어난 음악성과 매력있는 보이스로
팀의 얼굴이 되어버린 멤버가 바로 보컬리스트 크리스 놀만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음에도 한 번도 안 오다가
인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2002년 양심도 없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멤버도 대부분 바뀌었고, 더 결정적인 건 밴드의 보컬이자 얼굴이며,
어쩌면 스모키 그 자체인 크리스 놀만이 없었다는 사실.
요즘말로 멘붕 아닌가? 그럼 스모키는 뭔데?
EPISODE#2
필리핀 여행을 갔을 때.
숙소 근처 라이브 카페를 자주 가는 걸 본 현지 필리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아넬 피네다 알아?”
그게 누군지, 내가 어찌 알겠나.
현지인들 말로는, 이번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그룹 저니(Journey-Open Arms나 Faithfully같은 히트곡이 있는 80년대 미국록그룹)의
리드보컬이 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피네다가 필리핀 사람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영국에 가서 박지성 아느냐고 물어볼 때와 비슷한 느낌일 듯싶다.
원래 보컬인 스티브 페리가 팀을 떠난게 1998년인데,
그럼 피네다가 새로 들어온 2008년까지 보컬이 없었남?
그건 아니겠지. 누군가 있었겠지. 미국의 저니팬들에겐 그런 말이 있다.
No Perry, No Journey
스티브페리가 없다면 그룹 저니도 없다는 말이다.
EPISODE#3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라는 칭호를 듣고 있는 그룹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은
197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전설적 그룹이다.
지미 페이지, 로버트 플랜트, 존폴존스, 존 보냄의 4인으로 구성된 밴드는
많은 곡과 앨범, 그리고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밴드는 1980년 드러머 존보냄의 사망으로 인해 전격 해체되었다.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은 새로운 드러머를 영입하여
계속 음악활동을 해주길 기대했지만 이들의 대답은 완강하게 ‘노!’.
이후 레드제플린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던 레드 제플린이 2007년 드디어 27년만에 무대로 돌아왔다(27년이란 기간이
들국화 팬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드러머 존 보냄 없이 연주하지 않겠다던 그들이 다시 돌아온 이유는......
바로 그 존 보냄의 아들이 성장해서 팀에 합류해 드럼을 치게 되었기 때문.
* * *
밴드의 보컬리스트(이하 보컬)라는 건 음악에서 노래를 담당한다는 표면적 역할 말고도
상당히 많은 의미를 안고 있는 포지션이다.
밴드의 얼굴이기도 하고,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을 직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밴드의 보컬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찬사와 질타를 동시에 받게 되는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축구의 센터포드다.
얼마전 들국화의 최성원이 TV방송 <놀러와>에 출연해서
보컬리스트인 전인권을 보며 말한 것과 똑같다.
더욱이 보컬이 자신만의 색깔이 짙고 개성이 강하다면
밴드의 색깔은 점점 더 보컬에 묻히게 된다.
이렇게 이어가던 밴드의 음악생활은 대부분,
보컬리스트가 자신만의 음악을 원해 팀을 떠남으로써 위기에 빠지게 된다.
보컬은 밴드의 구속력에 의해 펼치지 못했던 자신만의 음악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노래를 중심으로 하는 보컬의 음악에서 밴드는 도움이 아니라
때로는 지장을 주는 경우도 생긴다.
다른 밴드 멤버의 입장에서 본다면 보컬이 밴드의 얼굴이니만큼
밴드의 멤버는 보컬을 돋보이기 위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
이러한 갈등이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솔로 활동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물론 이러한 내면에는 돈 문제도 있겠고, 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른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같이 일반적인 밴드가 아니라
특정 보컬의 노래를 반주하기 위한 ‘백밴드’가 아닌 이상
밴드에서 추구하는 음악과 보컬의 음악적 표현력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들국화 시대를 기준으로 밴드의 유명한 보컬리스트들을 보면,
그룹 시카고의 피트 세테라나, 스틱스의 데니스 드 영이 대표적이다.
앞서 에피소드로 제시한 그룹 저니와 스모키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룹의 입장에서 볼 때
보컬의 팀 이탈은 밴드음악을 지속하는 데 치명적인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보컬이 팀을 이탈한 밴드는 이후 어떤 길을 걸을까.
밴드의 리더는 팀의 새로운 얼굴을 찾게 된다.
재밌는 사실은, 이런 경우 주로 밴드의 리더가 작곡 능력을 갖춘 기타리스트라는 점이다.
그렇게 찾은 새 얼굴이 앞서 제시한 것과 같이 똑같은 솔로 독립을 하게 되면
팀의 리더는 다시 새로운 얼굴을 찾게 된다.
그 이유는, 밴드의 보컬은 솔로로 독립할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밴드의 기타리스트나 드러머 등은 딱히 솔로로 독립할 특징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밴드멤버들은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팀이 유지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팀의 얼굴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
결국 밴드는 새 얼굴을 찾아 기존의 히트곡을 연주해나간다.
팀의 얼굴이 바뀌고 예전의 보컬이 불러 히트한 노래를
새로운 보컬의 목소리로 들어야 한다니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만든 그룹도 있다.
록음악 역사에 존재감이 넘치는 그룹인 Deep Purple은
로드에반스, 이언 길런, 데이빗 커버데일 등
각각 개성이 넘치는 보컬들을 계속 영입하는데 성공하여,
보컬마다 다른 색깔의 음악을 보여주게 되고
또 이것은 보컬을 기준으로 1기 멤버, 2기 멤버 등
밴드의 수명을 오래 유지하게 할 수 있는 모범 사례가 되었다.
그룹 제네시스를 피터 가브리엘 시대와 필 콜린스 시대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팀을 떠난 밴드의 보컬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솔로로 활동하는데 별 재미를 못 보고
밴드도 딱히 새로운 보컬을 찾지 못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을 때 생기는 경우다.
또는 솔로로 성공한 보컬이 팀에 대한 보상 개념으로
단발성 이벤트식 재결합을 하는 경우다.
그런가 하면 <에피소드#3>에서 설명했듯 멤버들의 변화를 크게 겪지 않고
꾸준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현상은 대부분 보컬리스트가 밴드에서 영향력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은 경우다.
우리가 잘 아는 이글스가 그렇다. 오랜 시간 같은 멤버로 활동했다.
특히 재밌는 부분은 돈헨리가 많은 노래의 보컬을 담당했지만,
다른 멤버들도 모두 보컬 능력이 있어 보컬을 나누어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돈헨리는 밴드에서 드러머다.
들국화의 공연에서 이글스의 음악을 자주 듣는데,
아마 들국화와 가장 비슷한 그룹이 이글스 아닌가 싶다.
결국 밴드에 있어서 보컬리스트는 밴드의 얼굴이자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밴드의 음악적 색깔을 나타내고 음악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 *
들국화는 어떨까?
들국화는 이 부분에서 참 흥미로운 점이 있다.
보컬리스트가 누구보다 밴드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팀을 탈퇴하여 팀이 위기를 맞는 것에 비해
들국화는 약간은 다른 이유(?)로 팀이 위기를 맞게 되는 일 있었다.
리드 보컬인 전인권 역시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밴드를 구성하지 못한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음악활동인 듯싶다.
(사실 백날 이렇게 떠들어도 그저 팬의 한사람인 나는 자세한 내막을 알 수가 없다.)
전인권의 밴드 사랑은 들국화 이후의 행보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겨레의 노래>라는 앨범 에 <전인권과 가야>라는 밴드로 등장했고,
‘걱정말아요 그대’를 히트시킨 앨범인 <전인권과 안싸우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밴드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물론 <전인권과 안싸우는 사람들>이
실제로 활동을 하던 밴드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바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전인권은 자신이 솔로로 나서는 것보다는 팀과 함께 음악하는 것을
더 선호했던 것은 사실인 듯 싶다.
여기에 한발 더 나가 밴드의 보컬리스트,
그것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보컬인 전인권의 들국화 사랑은 더욱 간절하다.
들국화 해체 이후 허성욱과 함께 발표한 앨범 타이틀이 <추억 들국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랑한 후에’와 ‘사노라면’이 담겨 있는 앨범이다.
앨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들국화에 대한 애정은 매우 각별한 듯싶다.
그리고 새로운 멤버를 구성해서 다소 뜬금없이 등장한 <들국화 3집>을 봐도
전인권의 들국화 사랑은 잘 드러난다.
보컬리스트가 솔로 활동보다 밴드활동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는 밴드,
이런 밴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보컬리스트의 이름을 앞세운 밴드가 아니라면 참 특별한 일이 아닌가 싶다.
밴드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가끔 공연에서, 또는 팬들끼리 <들국화 포에버>를 외치곤 하는데,
이런 보컬리스트가 있는 한 <들국화 포에버>는 말 그대로 영원할 듯싶다.
보컬리스트가 솔로 활동보다 더 밴드활동을 사랑하는 밴드.
들국화가 다른 밴드와 다른,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다.
아하누가
10일전에 반쯤 쓰다가 다시 쓰려니 내가 뭔 얘기를 하는지 나도 모르겠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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