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다양한 망년회

아하누가 2024. 6. 23. 00:36


 


한해가 지나간다는 방송사의 특집방송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망년회 시즌이라 할 수 있다.
이 때쯤이면 사회가 온통 망년회 분위기다.

도대체 뭘 잊자는 건지 아니면 왜 망년회를 해야 하는지,
이미 그 의미와 목적은 한잔술 속에 사라져버리고

대부분 부어라 마셔라의 처절한 반복이 진행된다.
망년회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과 의미도 다양하다.

단지 무언가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이벤트가 없으면

한해를 헛살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하면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술자리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이벤트를 즐기는 사람에겐

드물게 찾아오는, 정당함으로 포장된 자리다.

 


어느덧 망년회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모이는 장소가 어디든, 모여서 무엇을 먹든 관계없이

그저 망년회라는 이름 하나로 훌륭한 핑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이 땅에는 어떤 망년회들이 다양하게 벌어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망년회(望年會)

이런 자리는 비교적 건전하다. 그래도 뭔가 '바랄' 게 있다.

하지만 바랄 게 뭐가 있겠나. 다 똑같지.
내년에는 로또 하나쯤 당첨되기를 바라고,

결혼 하지 않은 선남선녀들은 좋은 짝 만나길 바라고,
수험생들은 좋은 대학가길 바라고, 대학생 졸업반은 좋은 직장 얻길 바라고,

직장인들은 안 짤리기 바라고,
군인들은 제대하는 날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


아주 보편적인 예만 들었으니 얘기가 진지하게 보이지

만약 도둑놈, 사기꾼, 국회의원 등에 대한 예를 들었다면
그 바람 또한 볼만 했을 게다.
아무튼 이런 망년회는 내년에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는 자리다.
내년에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바라는 것도 좋지만 이런 것을 바라기 전에
약간 부족한 지난 한해를 먼저 반성하는 것은 어떨까.

 

 

 

2. 망년회(忘年會)


가장 전통적인 자리다.
망년회의 스탠다드를 제시하고 있는 이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망년회를 통해

지난 한해의 안 좋은 사건들을 잊으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안 좋은 일들을 잊으려고 자리를 만드니

힘들게 잊었던 일들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는 점이다.
힘들게 잊은 일 다시 꺼내놓고 잊으려 하니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술 먹으며 잊으려 한다.
술 먹는다. 한가지 잊으니 다른 한가지가 생각난다. 또 술 먹는다.
겨우 잊으니 옆에 앉은 사람하고 말다툼이 생긴다.

적당히 화해하고 잔 부딪히며 술 먹는다.
집에 어떻게 갔는지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집은 제대로 왔는데 뒷골이 땡긴다.
간밤에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이 대목이 망년회의 진정한 의미를 잘 나타내고 있는 전형적 장면이다. 
 

 


3. 망년회(亡年會)


술자리를 통해 누가 먼저 망가지는지,

마치 대장금에 나오는 최고상궁 경합을 재연하는 자리다.

상궁이 아니라 궁상이다.


온갖 형태의 제조방법이 동원되어 제작된 특수주를 마신다.
각자 알고 있는 특수주 제조법을 장황한 설명과 함께 제조 하여

조지 부시가 폭탄 날리듯 한방에 날려버리는 자리다.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이런 자리를 만드나
연말에는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가짐으로 허락받은 술자리를 즐기고 있다.
망년회란 단어가 없었어도 모였을 사람들이다.

 

 

 

4. 망년회(網年會)


다양한 모임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망년회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수첩에 빼곡히 적힌 망년회 일정에

모두 빠짐없이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마치 망년회에 참여하는 것을 일생의 커다란 목표로 생각하여
각 출신교 동창 모임, 참여하고 있는 인터넷 동호회 모임, 직장 모임, 동네 친구 모임,

각 종교 단체 모임 등 망년회라 불리우는 모든 자리에 참석한다.

이들의 스케줄이 마치 거미줄이나 그물처럼 촘촘하다 하여

일명 스파이더 맨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루에 서너군데 참여하는 날도 있으며 대부분 돈 내기 직전에 사라지는 일이 잦다.

 

 

 

5. 망년회(妄年會)


뭔가 조금 특이한 걸 해보겠다고 자신의 처지나 푼수를 모른 채 폼만 잔뜩 잡는 자리다.
10년째 노총각들의 모임이면서 쌍쌍파티를 연다거나

폼 한번 잡겠다고 어울리지 않는 비싼 장소를 빌려
망년회 이후 3개월간 허리가 휜 채로 다니는 식이다. 가끔 외국행을 선호하는 해외파도 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망년회도 적당히 해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생색이나 내고 폼이나 잡으려 한다면 이것도 참 딱한 일이다.

 

 

             *          *          *

 

 

 

이제부터 본격적인 망년회 시즌이다. 나는 과연 어떤 망년회를 하고 있을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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