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문화매거진 [인서울매거진]의 청탁으로 1999년 9월호 특집
[새벽2시의 사람들]의 한 부분으로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오래전 글인데 이제야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과는 또 다를 것이니 시차를 잘 적용하시면
사회적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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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 새벽 2시.
속칭 588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 청량리 윤락가 한복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며 어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을까?
또한 그들은 누구이고 또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새벽 2시를 오후 2시처럼 분주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 * *
모두들 내일을 기약하며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새벽 1시 45분 무렵.
몸담고 있는 택시가 굴다리 같은 곳을 지나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다소 흥분된 목소리들이 한곳에 모인듯한 분주한 웅성거림,
오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줄지어 있는 택시의 행렬,
그리고 반라의 모습과 짙은 화장으로 서있는 수많은 여인들....
택시에서 내려 거리를 둘러보니 무언가 새벽의 현실과는 다른
알듯모를 활기를 느낀다.
마치 시계가 거꾸로 도는 것처럼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촘촘히 늘어선 각 업소마다 요란한 몸짓의 늘씬한 여인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고 힘껏 손짓을 하며 연신 ‘오빠’ 소리를 외쳐댄다.
하지만 잘 훈련된 어떤 조직같이 이들의 행동은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 보였다.
자신의 업소 앞에서만 손님을 부르고 또한 지나가는 손님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려는 그 어떤 시도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산만한 분위기에 조금 압도되었을 뿐
실제로 거리를 걷는데는 비교적 순탄한 길로 여겨졌다.
골목길에서는 무조건 붙들고 늘어질 것이라는
당초 예상에 따른 단단한 각오가 무참히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업소들끼리, 또는 업주들끼리의 약속이 있었던 듯했고
이것은 손님의 입장으로 봤을 때나 업소의 입장으로 봤을 때나
매우 효과적일 수도 있는 마케팅처럼 느껴졌다.
하긴 그렇다.
요즘 같은 시대에 비록 윤락가라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서는 도저히 안될 것이다.
* * *
서울에서 유명한 윤락가가 몇곳 있다.
지금은 많은 곳들이 정부의 폐쇄 조치에 의해 문을 닫았지만
속칭 텍사스라고 불리는 미아리와 천호동,
그리고 이곳 청량리 일대가 그곳이다.
이곳 청량리는 미아리류와는 달리 술을 팔지 않는다.
예전에 미국의 텍사스 일대에 많았다던 술집(아래층은 바, 위층은
호텔. 그래서 술도 팔고 잠도 잘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집을
속칭 텍사스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비교적 근거가 있는 것 같다)과 비슷하다 하여 명명된
‘텍사스’가 아니라 이곳은 단순히 매춘만 행해지는 지역이다.
따라서 어디선가 거나하게 한잔씩 걸친 사람들이
손님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혼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지만
대부분이 친구들과 또는 다른 일행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돌아다닌다.
또한 이곳은 다른 윤락가와는 달리 골목마다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 차량 한대가 한 방향으로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온통 차들의 행렬로 늘어서 있다.
천천히 달리는 차량들 틈에서 가끔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농담을 주고 받는 사람들도 보이며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호객을 하는 여자들의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아마 차안에서 보여지는 밖의 모습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만 같다.
얼핏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그렇게 차안에서 구경만하고
지나가는 일련의 행동을 ‘사파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프리카 자연동물원에나 있을듯한 ‘사파리’란 단어를 들으니
얄궂은 웃음도 잠깐 입가를 스쳤지만 어쨌든 틀린 표현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덧 새벽 2시. 이곳의 여인들이 가장 바빠지는 시간이다.
해가 지면서 근무(?)에 들어간 이들이 그날의 소득을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면 이 시간에 가장 바빠야 한다는게 이 동네의 생리다.
이미 어디선가 한두잔씩 마시고 마지막 코스라는 생각으로 찾아온 손님들.
이들이 한번에 몰리는 시간 또한 새벽 2시경이어서
유리창문으로 되어 있는 문에 서 있어야 할 아가씨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업소도 눈에 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안쪽에서 손님들과 나타나 손을 흔들며
헤어짐을 뜻하는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한참 업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시간이 맞긴 맞는 것 같았다.
한 업소의 공간은 약 2~3미터의 거리에 1미터의 정도의 폭을 가진 작은 공간.
주로 욕실용으로 쓰이는 흰색의 커다란 타일들로 벽면이
장식되어 있고 유리문으로 되어 있는 입구 위에는
조잡하지만 다양한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흰색 타일 벽면의 한부분은 짙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무언가 또 다른 세계가 커튼 안쪽에 펼쳐져 있음을 충분히 암시하게 한다.
이 거리에 있는 여자들은 대략 몇명이나 될까?
어디선가 조사를 했다지만 대충 눈으로 훑어보니 약 500여명?
아니 더 많을까?
나이는 대부분 20세를 약간 상회하는 나이때로 보이지만
짙은 화장과 이상한 조명 때문에 이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하나같은 모습으로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한때 인신매매의 공포속에서 사회의 커다란 불안을 야기했던
이곳 윤락가.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인가? 아니면 그저 시대의 순리일 뿐일까?
이곳에서 일한지 1년 가량 되었다는 한 아가씨.
나이는 대충 21~3세 가량 보이는데 짙은 화장으로 가리워져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나이를 물어보면 무조건 21살이라고
말한다. 아마 최근에 강화된 청소년 보호법의 영향일게다.
그 아가씨는 주로 오후 8시경 자신의 아반테 승용차로 출근하여
근처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하고 새벽 4시경에 퇴근한다고 한다.
더 자세히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파트타임일 수도 있는
그녀의 얘기가 변화된 윤락가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명의 손님 받는데 일하는 시간은 대충 15분.
정확하게 시간을 체크하는지 안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보는 말에 아주 짧막한 목소리로 답한다.
아마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하루에도 기십명은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려주려는 듯한 표정이다.
손님이 지급해야 하는 돈은 일인당 현금은 6만원.
신용카드를 이용하려면 7만8천원을 내야 한다.
15분에 6만원이면 5분에 2만원을 버는 고소득자가 분명할텐데 실상은 어떨까?
하지만 이들이 얻는 소득은 대부분 자신의 방을 빌리는데 들었던
전세값, 그리고 다달이 들어가는 화장품값
그리고 미리부터 안고 있었던 빚 청산 등으로
많은 돈이 나가기 때문에 실제 소득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곳의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윤락과 관련된 사회현상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사회의 경제적 생산성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필요악적 역할 또한 등외시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산업사회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커가는 윤락산업.
도시의 빌딩이 높게 올라갈수록 그림자가 더 길게 드리워지는
사회현상. 비단 이곳 청량리 일대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회구조에서의 윤락산업은 결코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낯선 이방인 2명의 모습도 눈에 띄였다.
미국의 아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미국 청년들.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으로 손짓발짓을 이용하여
그곳의 여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불쾌감이 앞섰다.
이들의 눈에 비친 이곳 거리의 새벽 2시는 어떠한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청량리 588의 풍경은 분명하게 밤낮이 거꾸로 바뀐 별천지의
진풍경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곳 풍경에서 느껴지는 보다 확실한 감상은
새로운 세계의 경이적인 놀라움이라기 보다
정녕 그들이 새벽 2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은 분명히
아니라는 사실 또한 틀림없다는 것이다.
새벽 두시를 분주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새벽 두시를 분주하게 맞는 사람들.
이곳 청량리의 하루는 오늘의 해가 질 무렵 또 다시 시작될 것이다.
아하누가
별 일이 다 있었고, 별 글을 다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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