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영화를 보면 눈을 지긋이 감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슬픈 장면이라든가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려고 감는 경우가 그 순간이다.
그런가 하면 보기 민망하거나 잔혹한 장면 때문에도 눈을 감게 된다.
이 경우 우리 영화라면 오가는 말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또
잠시 눈을 감음으로써 영화를 더 아름답게 하지만
미국영화나 외국영화는 그놈의 자막 때문에 눈감을 틈이 없다.
칼로 목을 뎅겅 뎅겅 베는 순간도 봐야하고
총 맞아서 몸에 피가 퍽퍽 튀는 순간도 봐야한다.
할 수 없이 봐야한다. 보기 싫어도 봐야한다.
가끔씩 영화를 보는 건지 자막을 보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물론 미국영화 보면서 영어 공부한다는 사람을 보긴 했지만
그 이유로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는 사람은 아직 본적이 없다.
2.
우리 영화는 우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고 출연하기 때문에
가끔씩 아는 사람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얼마전 오랜 친구 한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신인감독치고는 비교적 흥행도 성공했고 특히 그 작품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았기에 마치 내 일처럼 좋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스티븐 스필버그가 뭐하던 놈인지,
제임스 카메론이 뭘 잘 먹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난 그들과 친할 수 없다.
역시 영화는 <조용한 가족>이 최고다. 김지운 감독 화이팅!
3.
우리 영화는 ‘욕’의 생생함을 맛볼 수 있다.
욕이 뭐가 좋다고 그것을 장점이라고 말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욕의 참 맛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스토리의 진행이 무르익을 때 우리는 욕이 나와야 하는 부분을 알고 있다.
이럴 땐 적나라하게 나와야 한다.
또한 듣기엔 조금 민망해도 그 상황을 이해시키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영화를 보면 그들도 욕은 엄청 많이 하는 모양이지만
난 그들이 말하는 ‘쉿’이니 ‘퍽’이니 하는 용어들을 ‘욕’으로
인식하진 않는다. 그저 영어 한마디로만 들린다.
내가 무식해서 그런다고?
물론 무식하긴 하지만 영화 보는데 있어서는 충분하다.
4.
우리 영화에 나오는 좋아하는 인기스타는 TV에서 또 볼 수 있다.
이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어서
그 인기스타가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많은 매력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 영화의 스타를 TV에서 보기가 쉬운가?
가끔 볼 수도 있지만 연예프로에 인터뷰 형식으로 나오는
싸가지 없는 지랄 염병하는 모습이나,
지저분한 스캔들 일으켜 해외토픽으로 보는 것이 고작이다.
5.
우리 영화를 보면 우리의 역사, 지리, 문화 등 환경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알게 된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단체로 보던 영화 [성웅 이순신]
[멸공일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등을 통해 우리가 가진
역사적 환경을 인식했으며 그 사고의 경향은 바뀔 수 있어도
그에 처한 상황만큼은 오랫동안 기억해왔다.
하지만 외국영화 보면서 우리의 지리적이고 역사적 환경을
느낄 수가 있는가?
어린이들은 이제 우리나라의 역사를 서부시대부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6.
최소한 우리 영화는 우리 자신을 비하시키진 않는다.
아무리 자기 비하식의 표현이 나와도 다 앞으로 발전하자고 하는
것이지 망하자고 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미국영화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가난한 한국사람, 무식한 한국사람, 엑스트라로 출연해도
얻어맞는 역할 아니면 사기치는 일.....
심지어 나쁜 놈이 주인공에게 얻어터지는 장면 배경에
한국 간판이 나오는 걸 본 적도 있다.
그럴 땐 극장간판 부수던가, 비디오 깨버리고 싶다.
7.
우리나라 영화는 제작 현장을 볼 수도 있다.
재수 좋으면 길을 걷다가 영화에 나올 수도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그 현장을 지켜본다는 것은 실지로 영화를
봤을 때 그 감동을 배가시키는 것으로 매우 다양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외국영화는 제작을 마친 다음에나 보게 되므로
쓸데없는 상상력만 키워진다.
그 상상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차라리 그 시간에
구구단 외고 있는 편이 더 낫다.
8.
우리 영화를 보고 나서는 같은 영화를 본 사람끼리
즐겁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영화보고 나서
그 영화 얘기를 하려면 꼭 잘난척 하는 놈이 하나씩 나온다.
특히 무슨 장면에서 주인공이 영어로 이렇게 말했는데
자막에 번역이 이상하게 되었다는둥,
그 장소가 어디 어딘데 가본 적이 있다는 둥.....
물론 한국영화를 보고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은 아직 본 일이 없다.
9.
미국영화를 보면 짜증나는 일이 있다.
다 지들 잘났다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사람만 나타나면 천사요, 성자요, 구세주다.
‘시티오브조이’라는 영화를 누군가 내게 권해줬지만
내가 본 느낌은 다 미국놈들 잘난척한 내용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인디펜던스 데이’를 미국에 사는 막내 동생이 추천했지만
영어를 무식하게 못하는 막내가 미국에서 자막없는 ‘장면’만
본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미국은 못하는 일이 없다.
세계를 구하고 악을 응징한다.
첨단 과학의 선두주자요 옛 문화를 지키는 파수꾼이며
환경을 엄청나게 보호하고 인명을 중요시 한다.
물론 우리 영화에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그런 장면은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우리가 환경을 소홀히 하고 첨단 과학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며, 세계를 구하려 하지 않는가?
참 씁쓸한 일이다.
10.
우리는 외국문화에 대한 컴플렉스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스케일에 대한 컴플렉스였다.
국보급으로 지정하고 또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놓은 것들도
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 규모에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큰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며
또한 우리 선조들이 크게 만들줄 몰라서 크게 만들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의 조화 때문이다.
궁궐의 대문, 절 마당의 탑, 오래된 불상.....
이것들은 지금의 크기에서 조금만 더 커도 무척 어색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옛부터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루는 크기를
알고 있었고 또 그것에 어긋나지 않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곤 했다.
나는 확신한다.
영화에 있어서도 스케일만 크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영화, 감동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난 아직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심오함과
<서편제>의 깊숙한 감동, 그리고 <초록물고기>의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 * *
미국은 영화 산업을 첨단우주항공산업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세계를 미국의 문화식민지로 만들 수 있는 것 때문이지요.
스크린 쿼터제를 지키려는 영화인들의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스크린 쿼터제, 이것만은 지켜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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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제를 지키기 위해 많은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선적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무언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쓴 글이다.
설마 이 글의 영향이었을 리는 없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헐리우드 영화에
가장 잘 대적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 영화 잘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영화 많이 봐야 한다.
외국에게 감성마저 지배당할 수는 없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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