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전자수첩이란 걸 산적이 있다. 한참 유행일 때였으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란 전화번호는 모두 입력해 두기로 했다.
많은 사람의 이름을 입력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겠지만
그 재미 또한 상대적으로 대단한 것이라 얼른 작업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그 달콤한 유혹을 꾹 참아 두었다가
국가에서 실시하는 민방위훈련 시간을 이용했으니
그러한 재미를 그 때까지 참을 줄 아는 나의 절제된 인내력에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전자수첩에는 또 하나의 기능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영어와 일어에 대한 회화였다.
하필이면 그 당시에 일본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어서
전자수첩에 일어회화까지 있다는 사실을 보며 현대과학의 혜택을 누리게 됨을
비로소 실감하는 중이었다.
회화기능은 전자수첩에 이미 등록된 문장이 보턴을 누를 때마다
일어와 영어로 나오게 되어있었다. 고맙게도 일어나 영어 모두 한글로도 읽을 수 있게 되어
무척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기능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려고 마음 먹고 얼른 첫 문장을 눌렀다. 한글 문장이 먼저 나왔다.
<오늘은 무슨 요일입니까?>
그리고 일어라고 쓰여진 보턴을 누르니 일본어가 나온다.
이러한 현대과학의 놀라운 발전에 심취하여 흐뭇한 감동에 젖고 있는데
옆에서 일하는 후배 사원의 모습이 보였다.
"어이, 자네. 일본말로 '오늘은 무슨 요일입니까?'를 뭐라 하는지 알아?"
교만이 잔뜩 섞여 있는 질문에 후배 사원은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투로
나지막히, 아주 나지막히, 그러나 질문을 던진 나의 교만함 보다 더 교만함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교와 냐뇨비 데스까?"
".......!"
나는 경악했다.
어쩌면 별것도 아닐 수 있는 이 단순한 대화에 내가 입을 한뼘이나 벌리며
경악할 수밖에 없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저 말이 누구나 아는 상식에 해당하는 문장은 결코 아니라 생각했으며
그보다 더 충격을 가져다 준 것은 그 후배사원보다 지적으로 보나 교양으로 보나
인생경험으로보나 세계화에 근접한 정도로 보나
모든 면에서 앞서 있다고 생각했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 생소한 문장을 일갈에 일본어로 말했으니
그에 따르는 나의 지적열등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다.
"어. 일본말 잘 아네....."
자신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혹시나 후배사원이 눈치 챌까
얼른 말꼬리를 내리고 하던 공부에 더욱 열을 올리는 시늉을 하며 애꿎은 전자수첩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심한 지적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일본어 문장 몇 개라도 외워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무척 가슴 아픈 사연이다.
그 사연이 왜 가슴이 아파야 하는지는 그 다음 스토리 때문이다.
일본에 다녀오고 시간이 얼마 지나 그 후배사원과 밥을 먹던중
일본어 얘기가 나와 그때의 화제로 돌려 대화를 나누는데 그 친구 말이 걸작이라.
"그게 말이에요. 참 우스운 일이더라구요...."
"왜, 일본어가 우습냐?"
"그게 아니라......"
후배 사원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는데 그 내용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예전에 우리 옆집에 어떤 형이 세들어 살았는데 일본어 공부를 한데요.
그때가 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죠?
근데 나보고 일본어 가르쳐준다며 한마디 배워준게 바로 그 말인데
마침 그말을 내게 물으시더라구요. 얼른 대답했죠.
아직 안잊어버리고 기억하고 있는 말이거든요.
그리고 그 형은 매일 한문장씩 가르쳐준다고 하곤 그때 이후로
한마디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그러니 내가 아는 일본어는 유일하게 그 문장 하나인 셈이지요.
한마디 더 물어보셨으면 큰일날 뻔했지 뭐예요. 히히"
".......!"
나는 진노했다.
단 한문장에 지적열등감을 느낀 것도 그랬고
하필이면 그 문장이 바로 그 문장일 게 뭐냐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어와 전자수첩이 가져다준 아주 가슴 아픈 옛 추억이다.
* * *
이렇게 예전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는 것은
내가 일본어를 아직도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세상의 일이란 참으로 이해 못할 일들이 생기는 모양이다.
불과 얼마전에 어느 일어회화 서적에 내 이름 석자가
저자 이름으로 번듯하게 찍혀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그 표지를 넘기면 뻔뻔하게도 내 사진이 저자 소개 자리에 선명하게 나와 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물론 내가 전유성도 아니니 "일본어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류의 책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일본어를 유창하게 마스터했느냐? 물론 그것도 아니다.
아직도 나는 일본어 문장을 단 한문장 밖에 알고 있지 못한다.
물론 '교와 냐뇨비 데스까' 뿐이다.
세상 얘기를 들을 때 가끔 '불가사의'란 말을 듣곤 하는데
그런 것이 내 경우에도 빈틈없이 적용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거짓말처럼 생겼다.
살다보면 이해못할 일들이 주변에서 생기기도 하고 또한 그러면서
한해 한해 경험이 쌓이고 또한 그러면서 나는 하나하나 세상을 경험해간다.
가끔 스스로 이해 못할 일들이 생긴 다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왕성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