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작품

꿈, 소망, 그리고 현실

아하누가 2024. 6. 30. 01:02


 

 

1970년대와 80년대에 사춘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가지의 소망이 있었을 겁니다.

그 소망은 내방, 나만의 방이 있었으면 하는, 정말 소박한 바람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만 살펴보더라도

식구들은 많았고 집은 좁았던 시절이었으니

간혹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친구들 집에 가면 부럽기만 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좁은 집에서 많은 형제 자매 틈에서 자랐습니다.

좁은 집에서 아등바등 살다보니 가족 및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해져서 좋긴 했지만,

그것은 넉넉한 공간을 현실로 이루지 못한 자위의 수준이었고,

누가 뭐래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어린 시절에 떠오르던 집에 대한 갈등은 대부분 비슷할 겁니다.

 

 

 

* * *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서울 변두리의 작은 다세대주택입니다.

이 근방에서 태어나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우리 아이들도 다녔습니다.

전형적인 변두리 모습이고 정형적인 서민적 스타일입니다.

 

 

결혼해서 내외만 살아갈 때는 그리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지만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점점 자라니 그 집은 점점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열 살이 되어갈 무렵, 이제 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그게 9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뿐만 아니라 그때도 마찬가지여서

서울에서 집을 크게 늘린다는 것이 상당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약 10평의 공간을 더 필요로 하고, 이에 어울리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그 비용은 감당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현재의 집 크기는 더 이상 한계에 다다랐고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마 여기까지는 누구나 비슷하게 공감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당시 나는 일생일대의 과감하고도 획기적인 결정을 하게 됩니다.

좁은 집에서는 아등바등 살면서 가족애를 유지하는 동시에,

어딘가에 나름대로 넓고 시원한 공간이 있어

자라나는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찾기 위해 강원도 산골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골이긴 하나 생각보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

충분한 자연환경이 갖춰져 있고 남들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아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고, 근처에 아직 아내의 인척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나름 좋은 곳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샀습니다.

앞 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샀습니다. 시골이라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생각이 많아서 못샀을 겁니다.

 

 

집 앞의 땅들은 모두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아무도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엄청난 공간이 마치 내 땅인 듯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이라 그리 비싸진 않았습니다. 단지 땅만 샀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카메라로 비교해서 말하면 바디만 달랑 구입한 셈입니다.

바디는 나름대로 좋은 놈으로 구했다고 생각했지만 렌즈가 없으니

이야 말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최소한의, 매우 경제적인 방법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렌즈를 구입하기로 한 셈이죠. 가장 만만한 번들렌즈로 정했습니다.

건물 외벽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빨간 벽돌을 선택했고,

돈이 없으니 집구조와 설계는 내가 직접 했습니다.

건축설계사무실에서는 식당 냅킨에 그려온 내 디자인을 보고 뒤로 쓰러졌습니다.

건축의 건자도 모르는 내가 뭘 알고 했겠습니까?

그냥 인터넷보고 연구하다가 나름대로 꾸민 것에 불과했습니다.

원망 안하고 나중에라도 내가 책임질테니 그냥 지으라고 했습니다.

 

약 4개월에 걸쳐 집은 서서히 모습을 찾아갑니다.

 

 

 

 

 

 

* * *

 

 

 

 

 

이렇게 새 보금자리는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밤이면 식구들과 이곳을 찾습니다.

작은 마을도 있어 이젠 마을 사람들과도 친해졌고,

서울에서만 자란 녀석들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칼싸움도 할 줄 압니다.

벌레라고는 손도 못 대던 녀석들이 메뚜기도 잡을 줄 알고

날아가는 잠자리도 맨손으로 잡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말 꺼낸 김에 집과 주변 구경 한번 하고 가겠습니다.

 

 

밤의 모습은 또 다릅니다.

 

 

바로 집 앞에는 두 아이만을 위한 전용 수영장이 있습니다.

 

 

집안에도 수영장이 있습니다. 그것도 두개나 있습니다.

 

 

겨울엔 이런 모습입니다.

 

  

 

   

여름용 수영장도 모자라 겨울엔 눈썰매장도 만들었습니다.

집안에 수영장 있는 집은 봤어도 눈썰매장까지 있는 집은 보기 드물 겁니다.

 

  

 

 

실내 사진입니다.

방은 작은 방 하나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입니다.

2층 다락방은 문이 없는 개방형입니다.

 

 

 

 



 

 



 

실내 사진 한 장 더

기타가 6대, 피아노 하나, 마이크만 5개 있습니다.

언젠가 들국화가 놀러와서 여기서 노래를 할 지도 모르죠.

 

 

  

 

 

여름엔 항상 강가에서 물고기 잡고^^

 

  


 

집이 완성되고 현재 약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10년 전의 결정에 대해서는 조금의 후회도 없는 큰 만족이었습니다.

물론 주변에서는 재산증식에 도움이 안되는 투자라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 가격이 두 배 오르려면 서울 근교의 아파트값이 10배 오른 뒷일 겁니다.

 

 

* * *

 

 

 

가끔씩 나는 강원도의 한 쉼터에서 글을 씁니다.

아내는 이장님 댁에서 수다떨면서 시간 보내고

갈대를 꺾어서 칼싸움을 하는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이제 머리 좀 컸다고 티비보며 빈둥거립니다.

 

 

아이들도 강원도와 함께 자랐네요.

이렇게 컸습니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꿈꿔왔던 나만의 작은 공간,

휴양지의 콘도와 아파트의 번잡함을 피한 내 조용한 휴식처에서 길게 누워봅니다.

그리고 내 선택이 옳았다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입니다.

글 내용에 염장과 지름신이 다소 들어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형태의 모습 중 한가지의 모습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나보다 인생의 후배님들께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작은 소망 3가지-

 

버터플라이라고 선명하게 찍혀있는 탁구라켓,

맨 끝에 파란색 염색이 있는 클래식 기타줄,

그리고 빨간 벽돌집이었는데

내 나이 41살에 다 이룬 셈입니다.

 

 

 

그리고 나는 3만평짜리 앞마당을 가진 집에서

10년째 주말을 지내고 있습니다.

 

 


 


 

아하누가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시골 얘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