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디자인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았다. 주로 편집디자인이었지만 내 특기는 서체(폰트가 아닌 타잎페이스)에 관한 일이었다. 글자의 구조와 골격, 심미성과 가독성, 그리고 다른 글자와의 조화 등에 관한 기술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생뚱맞은 이름에 더 황당한 로고가 등장했다. 순발력 넘치고 과감하게 진행된 일정으로 기억한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주도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근데 인상적인 것은 저 로고였다. 굳이 나처럼 그 일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이 봐도 뭔가 이상했다. 저 로고는 아마도 대학교 디자인학과 2학년 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작품이었다. 이건 한글의 기본 구조와 특징도 모른채 만들어진 로고다. 닿자와 홀자, 초성과 다른 종성의 자음 모양, 오른 모음과 아랫모음의 차이, 무게중심선, 당시 유행하는 글자의 두께 등등 그 구조적 특징도 모른 채 만들어졌다. 거기에 치아 자국인지 말안장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크가 덧대어지니 더 기가막힌 모양이 만들어졌다. 물론 당시 시간이 촉박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고, 정당이라는 것이 로고디자인의 세련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저 로고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로고는 대학생 수준도 안되는 결과물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로고의 제작자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출신인 당시 홍보기획본부장이라곤 하는데.....
그 로고는 누구도 반대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결정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동시에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하는 과감한 결단 또한 순식간에 벌어졌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까지가 당시 생각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버린 '타블렛PC' 사건에서 나는 유심히 박근혜 취임식에 사용된 '오방낭' 디자인과 시안으로 작성된 '취임기념 우표 디자인'을 보았다. 이것저것 쉴 새 없이 관여한 최순실이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지만 의심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정국에 이런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중요한 관심사다.
더불어 정부부처의 다양하고 의미있는 로고과 심볼마크가 어느 한순간에 촌스럽고 투박한 디자인으로 색깔없이 통일되어버린, 그 민망한 상황을 결부시키니 점점 더 수상해진다. 이 또한 누구의 지시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걸 합리적 의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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