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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그 추억의 패션

아하누가 2024. 5. 6. 21:14

 

 

1983년 2월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끝으로 일본 식민지의 잔재인 검정색 교복은
추억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영화 속에서나, 아니면 TV의 의도된 연출 속에 등장하는
추억의 장면에서나 볼 수 있다.

그 당시에 그 교복을 입고 다닌 사람들은 그런 장면이 얼핏 보일 때면
알듯모를 추억에 잠기곤 한다. 정말 오랜만에 추억도 더듬을 겸
이번엔 옛날에 입었던 바로 그 교복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

 

 

 

 

 

 

 

* * *

 

 

 

교복은 검은 색이다.
물론 겨울에 입는 남학생 동복의 경우이며

여학교의 경우에는 학교별로 많은 차이가 있어서
교복만으로도 학교의 구별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남학생의 경우는 전국의 학생들이 모두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있어서
구별이 불가능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사회물을 먹고 경제원리를 나름대로 터득하고 난 지금 생각해보니
전국의 학생이 교복을 입었으니 만큼

그 시장도 꽤 커다란 시장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쩐지 그 당시 TV만 켜면 제일모직의 엘리트나 선경합섭의
스마트 광고가 항상 나왔었다. 그때 주식투자를 했어야 하는건데.....

 

그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입던 학생복이 바로 이 두 회사의 것으로,
제일합섭의 엘리트는 무광택의 차분한 색감이었고

선경합섭의 스마트는 약간 푸른 빛의 광택을 띠는 것으로

제법 개성이 있었다.
특히 선경합섭의 스마트는 광고에 많은 투자를 했다.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스마트 광고가 독점으로 싹쓸이 광고를 했었다.

 

그런 옷감으로 만들어진 교복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옷깃 부분이
둥그렇게 모아져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카톨릭 성직자들의 ‘로만 칼라’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중국 무술영화에서 흔히 보는 ‘차이나칼라’ 하고도 비슷했다.
하지만 생긴 것은 앞의 두 가지 예와 비슷했는데 빳빳이 서있는 모양이
여간 행동하는 데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가만히 있어도 턱을 찌르는데 움직이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또한 양쪽이 모아지는 가운데 부분에는 철사처럼 삐져나온 두개의 고리가 있어
그것을 반드시 연결하고 다녀야 했다.

그걸 소홀히 했다가는 각 학교별로 존재하던
[지도부] 또는 [선도부]라는 간판의 조폭들이 귀신같이 잡아가곤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옷깃의 안쪽에는 비닐로 만들어진 하얀 칼라를 또 끼워 넣어야
정확한 복장이 된다.
밖에서 볼 때 흰 부분이 언뜻언뜻 보여야 액센트가 있다는 발상이었던 모양인데
그것이야 말로 보는 사람 시각이지 입고 다니는 사람은
하얀색 칼라를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옷깃에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 있다.
옷깃의 양쪽에 뺏찌를 부착하는 기능이 그것으로 한쪽에는 학교 뺏지를
다른 한쪽에는 학년을 표시하는 뺏지를 달았는데
중학생은 아라비아 숫자로 1,2,3학년 표시를, 고등학생은 로마자로 표기했었다.
그때의 학년이란 군대의 계급과도 같아 로마자 3자만 목에 달면
거의 그 세계에서는 왕으로 군림하여 목에 힘주는 일이 일년 내내 지속되곤 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단추가 시작된다.
금빛 찬란한 단추가 자그마치 5개, 또 소매에 각 2개씩....
맨 윗 단추는 하나쯤 풀고 다녀야 ‘잘 나가는’ 학생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 단추도 학교마다 고유의 무늬가 양각되어 있어 색깔은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학교마다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만약 한 개쯤 떨어졌다고 대충 비슷한 걸 달면 또 조폭들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다행이 그 부분까지는 단속의 손길이 뜸하여
각자 개성들 부린다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서로 바꿔서

갖가지 모양의 단추를 달고 다닌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이 또한 고등학생들만의 특권으로

그나마 중학생들은 교표와 마찬가지로 가운데 中자가 양각으로 새겨진

단추를 전국의 중학생들이 함께 달고 다녀야 했다.

 

 

조금 내려와 보면 왼쪽 가슴 부분에 있는 주머니 위에는
이름과 학년 학급이 새겨진 명찰이 있다. 학교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대표적인 모양은 하얀 부직포에

일명 오바로크로 이름을 한자로 박아 넣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 명찰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이름을 한자로 새기다보니
친구 이름 알려고 외운 한자 실력이 어느 덧 실력으로 남아
그 당시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한문을 잘 읽는다.

잘 읽을 수 밖에 없다.

 


내 친구 한 녀석은 이름이 김용모였는데 한자로는 金龍模라고 썼다.
김자랑 용자는 많이 본 글이라 다들 쉽게 알았는데

마지막 ‘모’자는 꽤 어려웠는지
항상 그 친구의 명찰을 읽을 때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야, 네 이름이 김....용......마지막 글자가 모냐?”

 

 

바지도 규정이 다양하여 주머니가 아라비아 숫자의 일자로 생겨야지
한자의 한일자 모양으로 생기면 규정 위반이라 했다(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왜 그런 규정이 있었고 왜 그것이 규정이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신발도 규정이 있어

검은색 운동화나 끝이 뭉뚝한 구두가 전부였다.

 

지금까지 설명한 교복은 남학생들의 동복이었고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각 학교마다 복장이 달랐다.
따라서 학업보다는 여학생에 관심이 더 많은 일부 남학생들은
교복으로 학생들의 학교를 귀신같이 구별해 내곤 했으며,
심지어 어느 학교 교복이 제일 예쁘다는 소재로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사실 남자 고등학생 나이면 호기심이 많을 때니

당연히 여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든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교복이야말로

가장 알기 쉽게 여학생들을 볼 수 있는 첫번째 모습이었으며
이에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 까만 치마가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가 제법 드러나는 교복을 입었던
서울 시내의 D여고는 남학생들의 관심을 독차지 했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 주변의 한 여학교는
교복이 야쿠르트 배달하시는 아주머니 복장과 비슷하다 하여
그 여학교 학생들은 3년 내내 야쿠르트 아줌마 소릴 듣곤 했으나
그나마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교복에 대해선

선택이란 혜택을 받은 셈이지 않나?

 


그것도 여고생이나 그랬지

여중생들은 귀밑으로 1센티미터만 허용되는 단발머리와
언니 옷 빌려입은 듯한 까만 교복 하얀 옷깃, 까만 치마로 통일 시켰으니
창의력 키우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환경이었을게다.

날씨가 더워지면 하복으로 갈아 입는데 하복이 되면 그 나마

각 학교별로 개성이 발휘된다.

 

중학교 때는 전국의 고등학생이 하늘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입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학교별로 하복의 생김새가 달라
그 나마 개성을 뽐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학생들은 춘추복이라 하여

긴팔 브라우스 형식에 쪼끼가 포함된 교복이 있었지만
무대뽀 남학생들은 그저 추운 거 아니면 더운 것 딱 두가지만 존재했으므로
계절별로 다양함을 챙긴다는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다만 교련복이라는 게 하나 생겨 비상용 여벌 교복으로 활용을 하긴 했다.
물론 하복에도 모자는 있고 계급장 역할을 하는 학년 표식 뺏지도 당연히 있었다.

 

 

교복이 가지는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획일화된 편리함이다.
이 획일이란 말이 어찌나 편리한 말인지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그 획일이 가지는 드러나지 않은 불편함이란 또한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여벌로 한두벌의 교복이 더 있는 집이 거의 없었던
사회적 현실을 감안할 때

김치 국물 한번 교복에 흘리게 되면 후각의 기능이 마비될 때까지
인내력으로 버텨야 했었다. 그러니 창의력에 대해선 무슨 할말이 필요할까?

 

 

 

* * *

 

 

 

요즘은 N세대니 I세대니 하는 많은 신세대들을 보게 된다.
그들이 표현하는 자신의 개성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나 역시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일을 보곤 한다.
그 놀라운 표현들 중에 한가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주장이 몹시도 강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기성 세대의 시각으로는 그것이 맹랑하다거나 또는 건방져 보일지는 몰라도
일단 그런 강한 주장과 패기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그런 모습에 놀라는 이유를
교복에 의해 좁아진 상상력의 폭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제국주의와 관료주의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제복을 떠올리면서
자꾸만 좁아질 수밖에 없었던 상상력의 세계를 늘 아쉬워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뒷세대들은 획일화된 사고를 갖는 것을 원치 않는다.
조금 더 창의적이고 또한 발전적일 수 있는 사고를 기대한다.
하지만 한가지 몹시도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런 생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검정색 교복이 자꾸만 그리워지기만 한다는 것이다.

 

 

 

 

 

 

 

 

아하누가